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의 중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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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의 중대함
  • 이정민 서울대 명예교수·언어학
  • 승인 2020.0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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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침 뱉는 한국인”이라는 기사가 독일 주간지에 독일 도시와 비교해서 한국에서는 길에서 침을 뱉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규제도 받지 않는다고 자세하게 보도됐다. 이를 본 한국 주부가 손이 부들부들 떨리게 분개해서 한국의 다산콜센터와 경찰청에 장거리전화로 문의해 경범죄 처벌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주간지에 정정기사를 요구, 온라인 판에 반영됐으나, 여러 해 만에 귀국해 보니, 실제로 전보다 더 침을 많이 뱉더라고 어처구니없어 국내 일간지 [발언대]에 투고한 일이 있다.

시내 이면도로를 걷다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침과 가래를 뱉어 뒤에서 걷던 내 얼굴에 튀는 경우를 가끔 당한다. 술 취한 이가 토해 놓은 것이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방치되는 것도 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길에서 뱉는 침이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메르스 사태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에서 사람 앞에서 기침할 때 자기 팔뚝으로라도 막지 않고 그냥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진국들의 경험을 통해 알았지만, 습관이 안 돼 계속 마음 놓고 사람들 앞에서 기침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수십 년 전에도 줄에 선 사람들 속에 서 그냥 기침하면 주변 사람이 바이러스 퍼뜨린다면서 기겁을 하고 핀잔을 주는 것을 경험한 동포들의 일화가 있다. 공과대의 유명 교수가 미 대학 채용면접 직전에 복도에서 침을 뱉는 것 이 목격돼 탈락한 일도 있다. 어려서부터 사람 있는 데서 그냥 기침 안 하기, 침 안 뱉기의 감염예방 인과관계를 가르쳐 습관화가 돼야 한다.

어찌 메르스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뿐인가, 우리는 오래 전 어렵게 살던 때에 미국 유학 갈 때면 결핵 검사 합격한 X-선 사진을 안고 가서 입국했다. 그런데, 살기 나아지면서 괜찮은가 했더니,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여전히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위생교육의 부실과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폐결핵을 ‘폐병’이라고 몹쓸 병이라 하면서도 한편으론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정작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사태는 안타깝기만 하다. 사육 쓰레기의 부주의한 이동, 부실 통계에, 백신 접종을 미루는 농가의 이기심도 문제된다고 한다.

한편, 횡단보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의 거의 절반이 횡단보도 사고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일반시민에게 가장 위협적이고 고통을 주는 것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건너기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차들이 건너고 있는 보행자를 보고도 정지하지 않아 대단히 위험하다. 정지해 양보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우리는 법과 규정을 철저히 지키게(reinforce) 집행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고 그래서 어쩌다 걸리면 왜 나만 그러느냐고 한다. 엄청난 세월호 참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위반한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대형 참사였다.

수십 년 전 어느 국제시사주간지에 한국인의 특성 네 가지를 꼽은 기사가 나왔는데, 나쁜 점 두 가지는 undisciplined와 hot-tempered이다(장점은 diligent와 imaginative다). 지금도 누구나 수긍하는 특성이다.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훈련이 쌓여야 한다. 손님들이 있는 상에 아이들이 먼저 달려들어 집어먹는 것은 테이블 매너가 훈련이 안 된 탓이다. 또 아는 이에게는 그렇게 친절해도 모른 이에게는 그리 다를 수가 없다고 외국인들이 말한다. 배려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끗이 하는 위생과 남에게 전염 안 되게 배려하는 보건 훈련이 어려서부터 유치원 교육 과정과 늦어도 1, 2학년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휴지와 손수건을 호주머니에 챙겨 넣고 다니다가 침, 가래가 나오면 휴지에 뱉어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교통질서도 나와 남의 안전을 위해 철저히 지키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게 해야 한다.

교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 같은 곳에서는 잘 교육된 어린이가 횡단보도 아닌 곳에서 건너는 교포 엄마에게 왜 무단횡단 하느냐고 핀잔주는 것을 보게 된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해 걸리는 것은 동포/교포며, 교포가 많은 도시의 명문대 도서관에서 휴대전화 하다가 쫓겨나는 이도 교포라고 한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과거 군사 정권 때의 저항 운동의 여파로 민주주의 하에서도 여전히 법 위에 서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세력이 사회 일각과 학생층 나아가 정치계에도 남아 있다.

어려서부터 남을 생각하는 배려의 슬기로움을 그냥 우격다짐으로가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인과관계와 논리관계를 터득하게 이끌어주어 스스로 깨닫게 해주어야 일생 동안 지침이 된다. 커서도 이러한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바로 지성이 아닌가?


이정민 서울대 명예교수·언어학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인문대학 언어학과 명예교수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며, 국제 화용론학회 자문위원,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언어이론과 현대과학사상>, <의미구조의 표상과 실현>, <형식의미론과 한국어 기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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