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진실, 다시 쓰는 ‘아래로부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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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진실, 다시 쓰는 ‘아래로부터의 역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6.1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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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변명 | 임종권 지음 | 인문서원 | 872쪽

 

역사는 늘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록되었고, 당시의 모든 사건을 통치자 왕과 지배층 시각으로 해석한 기록은 그들만의 역사일 뿐 피지배층의 역사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역사는 진실이 없는 ‘변명의 역사’에 불과하다. 지배층의 관점에서 벗어나 피지배층의 시각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친일과 친북좌파라는 정치적 프레임의 원인을 살피던 중 ‘역사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해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서양사학자로서 서구의 역사 이론을 연구하며 얻은 지식과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에 바탕해 이 책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재해석하고 서술한다. 이 책은 소수의 지배층이 아니라 상민, 노비, 천민 등 피지배층의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 써나갈 것을 제안한다.

조선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공화정과 달리 왕을 중심으로 사대부 양반들이 백성을 지배했던 신분제 국가였다. 특히 사대부 양반들은 모든 지식을 독점해 자신들의 관점으로 역사를 기록해 신분제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끊임없이 권력 독점 체제를 재생산해왔다. 이렇게 소수의 지배층인 사대부 양반들이 절대다수의 피지배층 백성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역사에서 피지배층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역사에는 대부분 지배층과 통치자에 대한 훌륭한 업적들이 나열되어 있고 피지배층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배층은 이렇게 자신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역사를 모든 피지배층에게 기억하도록 하여 순종과 복종을 강요해왔다. 마치 세상 모두가 지배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역사를 꾸며 피지배층에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정당한 것이라고 세뇌해온 것이다. 더 나아가 지배층은 피지배층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림으로써 이들의 세상을 어둠으로 만들어버렸다.

해방 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은 조선시대의 신분 갈등과 적대감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항일투쟁 과정에서부터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해 해방 후 이념의 이름으로 폭발한 것이다. 조선의 일제 식민지화가 사대부 양반 지배층이 안간힘을 쓰면서 봉건적 신분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듯이, 남북 분단 역시 이들 신분 출신의 민족지도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이념 대결을 벌인 정치 구도에서 발생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배층 출신 자본가나 지주들은 보수적 자본주의를, 피지배층 출신 민중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선택해 각자 유리한 정치 체제를 수립하려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그러므로 이 두 진영 사이 충돌의 본질은 이념을 앞세운 신분제에서 생겨난 계급 간 적대감과 증오심이다. 결국, ‘친일파’와 ‘빨갱이’는 사대부 양반과 천민 상놈을 대신한 다른 명칭일 뿐이다.

왜곡의 역사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조선의 지배층 사대부 양반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백성을 지키는 의무를 저버리고 왕과 함께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가기에 바빴다. 한일합방으로 500년을 이어온 조선이 망했을 때도 그 일에 책임을 지려 하기는커녕 일제에 빌붙어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6·25전쟁 역시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냉전 체제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라 주장하며 그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돌렸다. 우리 역사는 이렇게 변명으로 기술되어 왔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는 지배층의 시각으로 점철되어 있고, 피지배층의 관점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피와 땀으로 만든 역사를 빼앗아 자기들의 기억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역사의 주인은 그 시대의 피지배층 백성이지 권력층인 사대부 양반들과 통치자 왕이 아니다. 왜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조선 백성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갔는지, 그리고 해방 후 동족끼리 왜 살육전을 펼쳐야 했고 남북분단의 근본 이유는 무엇인지 그 정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를 소수의 지배층의 입장이 아닌 이 나라의 주인인 민중의 눈으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잊힌 피지배층의 기억을 다시 복원해 오늘 현재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래로부터의 역사’ 쓰기를 시도하면서 지배층 관점에서 벗어나 피지배층의 시각으로 그 시대 역사를 살핀다.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정국, 그리고 6·25전쟁과 남북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굴곡진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대부 양반 지배층과 피지배층 상민, 노비, 천민으로 갈라진 기나긴 사회 질서인 신분제였다. 신분제도와 그로 인한 계층 간의 갈등, 해방 이후 남북 분단, 이데올로기 갈등과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우리 사회는 혼란을 거듭해왔고, 지배층은 자신들의 차별 통치를 지속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거나 아예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잊게 하려고 했다.

이 책에서는 ‘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며,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시기를 거치며 지배층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역사를 기록해왔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피지배층의 삶과 그들의 시각으로 본 진짜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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