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도시’와 ‘문화 도시’ 사이…광주를 통해 보는 도시 정치와 문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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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도시’와 ‘문화 도시’ 사이…광주를 통해 보는 도시 정치와 문화 경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19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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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 어느 문화 도시가 들려준 도시 정치 이야기 | 신혜란 지음 | 이매진 | 327쪽

 

한국인의 91퍼센트는 도시에 산다. 도시는 ‘창조 도시’, ‘명품 도시’, ‘문화 도시’, ‘녹색 도시’, ‘몰세권’을 둘러싸고 경쟁한다. 오늘날 도시는 욕망, 그중에서도 공간을 둘러싼 욕망들이 부딪치고 교차하고 충돌하고 경합하고 합쳐지는 현장이다. 도시 이름 붙이기와 장소 만들기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사이, 많은 도시가 ‘문화 도시’라는 자리를 탐낸다. 도시를 둘러싼 정치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중심에 이제 ‘문화’와 ‘경제’가 자리한다.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문화 경제와 도시 정치로 눈을 돌렸다. ‘문화 경제의 정치는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붙잡고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 도시에 천착한 이야기를 묶어 내놓았다. 그 도시는 광주다. ‘광주비엔날레’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알려지다가 요즘 ‘무너진 아파트’와 ‘복합 쇼핑몰 없는 광역시’로 유명해진 광주는, 그전에는 ‘5·18의 도시’였다. 

광주는 ‘문화 도시’와 ‘5·18의 도시’ 사이에서 갈등하고 충돌하고 타협했다. 5·18에서 벗어나려는 경제 성장 욕구와 5·18을 기념하려는 노력이 만나고, 중앙과 지방이 부딪치고, 문화와 경제가 통합하고, 기억과 개발이 갈등하고, 도시 정치와 거버넌스가 뒤섞이는 모습을 20년 넘게 보고 들은 저자는 켜켜이 쌓인 ‘광주가 들려준 이야기’에 직접 그린 삽화를 더해 누가 도시를 통치하느냐는 물음에 답한다.

“기억과 경제 성장은 어떻게 충돌하고 결합하는가?” 저자는 광주를 사례로 삼아 문화 경제와 도시 정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묻는다. 문화 경제란 문화와 경제가 융합하고, 경제 영역에서 문화가 하는 구실이 커진 현실을 가리킨다. 도시 쇠퇴를 극복하려는 문화 도시 개발 전략이 대표적이다. 도시 정치란 어떤 도시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정할 때 벌어지는 협의, 갈등, 협상의 역동성을 뜻한다. 도시를 형성하는 여러 요소를 둘러싼 의사 결정에 관련된, 그리고 그런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끄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다. 소수 엘리트, 여러 이해관계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단체나 주민 등이 모두 도시 정치의 주역이다. 권력 관계와 변화하는 과정의 역동성에 중점을 두고 살피는 저자는 심층 인터뷰, 참여 관찰, 집단 심층 면접 같은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해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광주는 정치적 이유로 경제 성장에서 소외된 중간 규모 도시다. 광주비엔날레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거쳐 ‘광주형 일자리’까지 이어진 진통과 변화는 문화 전략에 기반한 도시 정치를 대표한다. 도시 경제의 성장을 위한 문화 전략, 비엔날레라는 세계적 문화 행사를 통한 도시 선전, 기억을 중시하는 ‘문화 집단’과 성장을 우선하는 ‘경제 집단’ 사이의 갈등,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놓고 갈라진 시민사회, 기억 공간 형성 과정과 민관 협력의 어려움, 파견된 ‘늘공’과 시민단체 출신 ‘어공’의 오월동주, 문화적 도시 재생과 시민 참여 같은 다양한 쟁점들이 한 도시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책은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광주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광주는 말한다. 문화와 경제를 따로 보면 안 된다고, 문화와 경제를 통합하는 단계에서는 문화냐 경제냐를 따지다가 갈등이 일어난다고, 한 장소를 이전하거나 새로 만드는 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기억 공간 형성은 꽤나 지루한 싸움이 된다고. 1997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현지 조사는 도시에 살아 있는 다양한 욕망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광주는 국가와 도시의 관계, 수도와 지방 도시의 위계, 문화 전략, 장소 마케팅, 협치, 도시 재생, 기억 공간, 신 경제 기업 전략, 시민사회의 분화 등 다른 많은 도시가 겪거나 겪게 될 실험과 운명을 오롯이 보여줬다. 도시는 제도와 재정 면에서 국가의 지원과 규제를 받는다. 국가와 도시는 주요 행위자 사이의 관계도 다르다. 국가 정치에 견줘 도시 정치에 관여하는 지역 사회 행위자들 사이에는 인맥, 관계, 명성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광주가 그랬다.

기업과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한 도시의 운명은 그 도시 사람들의 손을 벗어나고 있다. 여전히 국가 수준의 정책과 정치가 도시를 좌우하지만, 도시는 세계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변화에도 휩쓸린다. 한 도시 안에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일보다는 외부에 맞선 대응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그런 대응을 하려고 발맞추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바로 현대 도시 정치다. 문화 경제를 이해하고, 개발과 보존이 함께하고, 성장과 참여가 공존하는 도시로 나아가는 도중에 문화, 경제, 기억, 개발의 정의와 범위가 새롭게 규정된다. 광주는 실천적 유연성과 심리적 탄력성, 협력의 마음 근육을 키워 문화 경제 거버넌스를 발전시킨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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