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사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냈는가…'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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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냈는가…'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 완간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6.19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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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는?
-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 구축 조직 다룬 5∼8권 출간
- 한일 넘어 동아시아로 확장·분석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반면 조선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잃고 내부적으로는 당파적인 민족성으로 정쟁을 일삼다가 결국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됐다.’

‘조선에게 일제강점기는 필연적 사건이었다. 전근대적 세계관를 신봉하고 그것이 만들어 낸 질서에 안주했던 국가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응하지 못했다. 외교뿐만 아니라 내치에서도 자주성을 잃었다. 근대의 흐름에서 낙오된 국가는 우월한 국가의 침략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은 식민사관이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설명하는 이러한 주장은 오랫동안 학술적 근거를 갖춘 ‘통설’로 여겨졌다. 일제가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역사관인 ‘식민사관’이 남긴 유산이었다. 

한국 역사학계는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으로 통칭되는 한국사 인식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식민사관 극복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한민족과 일본 민족은 하나의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이나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와 조선의 역사는 하나라는 ‘만선사관’, 왜(倭)가 4세기 중엽 가야 지역을 정벌해 통치기관을 설립했다는 ‘임나일본부설’, 한국의 역사는 외세에 좌우됐다는 ‘타율성론’ 등은 이제 많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대일본 관계 설정이 진영논리에 휘말린 가운데 연구의 확장성도 주춤한 실정이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를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작업이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극우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고, 여론이 들끓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이처럼 일각에서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 성장 등 근대화 토대를 마련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1980년대 민중사관이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토착 왜구” “죽창가” 등 광복 이후에나 쓰였던 구호들을 남발하고 있다. 일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 폐쇄성과 배타성에 기반한 반일 선동은 오히려 식민사관 극복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역사 왜곡의 밑바탕이 된 식민사관을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등 국내 역사학자 7명이 참여해 최근 내놓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 8권)’는 그 점을 파고든다.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전8권)는 일제강점기 이후 형성된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를 한국은 물론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로 확장해 파헤치고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체 8권 중 앞쪽 4권은 지난 2월 먼저 발간됐다.

앞서 출간된 책은 1권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2권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3권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 4권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이다. 

대표 저자인 이태진 교수는 ‘동양(東洋)’과 ‘동양사(東洋史)’의 개념이 19세기 중·후반 일본의 ‘특별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전까지 유럽인들이 일컫던 동양, 즉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의 중동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며, ‘동양’의 지도를 새로 쓴 것은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를 선점”하는 것을 목표 삼은 일본 메이지 정권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때 ‘동양’은 “일본이 새롭게 제패할 지역 세계”로, ‘동양사’는 “이 세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역사연구와 교육”으로 새로이 설정, 개발됐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동양사’ 개발의 중심 역할을 한 대학들은 현재까지도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다. 도쿄대학·교토대학은 여전히 “‘동양사’가 곧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 창출을 위한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19~20세기 동아시아사를 성찰하려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라는 신화와 일제 침략 행위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는 믿음이다. 그는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이번 총서는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의 시야를 일제의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으로 확장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집필진은 “일제 침략주의의 실체를 말 그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져본다”는 심정으로 5년간의 작업 끝에 이번 총서를 내놓았다.

 

                                    조선총독부 박물관 전경 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5) | 서영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320쪽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가 쓴 5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은 일제의 ‘조선반도사’ ‘조선사’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이라는 틀안에서 고찰한 책이다.

일제시기 조선총독부는 방대한 조선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식민지의 역사편찬사업을 추진했다. 총독부가 조선의 역사편찬사업을 추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사학 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진행된 역사편찬사업의 추진 배경뿐 아니라 식민지 기초조사사업으로 시행된 구관조사와 규장각 자료 정리사업의 진행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이들의 결과물이 어떻게 식민지 역사편찬사업에 반영되었는지를 들려준다.

특히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조선반도사』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 이왕직의 『고종순종실록』 편찬 과정을 분절적인 별개의 사업으로 인식하지 않고 상호 계승성과 연계성에 유의해 살폈을 뿐 아니라 이 사업의 주요 참여세력인 오다 쇼고, 구로이타 가쓰미 등 일본인의 역할 분담과 정만조, 이능화 등 조선인 지식인의 역할에도 주목하였다. 또한, 오늘날에도 근대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고종순종실록』의 편찬 과정과 편찬 자료 분석을 통해 아직도 망국사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고종시대사 인식에 드리워져 있는 식민사학의 기원과 궤적을 추적한다.

서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료 편찬을 표방했지만, 최남선을 비롯한 조선인 위원들의 의견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며 "실증주의와 학술적 권위라는 방패 아래 식민사학의 의도를 표출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고종순종실록’에 대해 “변화된 사회상과 일제의 국권 침탈사는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형식적인 왕실 의례를 부각시켰다”면서 기초 사료로 활용하기 이전에 엄정한 사료 비판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모습. 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6) | 정준영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3 | 288쪽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집필한 6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 연구’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 학부였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재직했던 일본인 교수들의 ‘조선 연구’ 경향을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경성제국대학은 식민지 조선의 최고학부로서 교육과 학술생산의 정점에 섰던 ‘조선총독부 기관’이었으며, 일본의 제국대학 중 처음으로 식민지에 세워진 대학이었다. 학문의 전당을 표방하면서도, 대륙 진출이라는 제국적 과제와 식민통치의 안정화라는 식민지적 과제가 중첩되는 식민지 조선이란 공간에서 경성제대는 ‘국책(國策)과 학문 사이의 균열’이라는 모순된 운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균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경성제대 초대 총장 핫토리 우노키치가 제시한 해답은 바로 ‘조선 연구’였다. 그는 조선 연구가 조선 그 자체만 다루어서는 안 되며, 조선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중국과 일본 속에서도 조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조선 연구는 조선을 지양(止揚)함으로써 비로소 ‘동양 문화의 권위’를 지향(志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본의 다른 어떤 제국대학도 넘보지 못한 독보적인 영역이었던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조선 연구, 그중에서도 법문학부를 중심으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추적한다. 근대적인 것, 제국적인 것, 식민지적인 것 사이에서 법문학부의 다섯 학자, 즉 오다 쇼고(小田省吾), 이마니시 류(今西龍),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아베 요시오, 이즈미 아키라(泉哲)를 통해 이들이 추구한 ‘조선 연구’는 무엇이며, 이 연구가 어떻게 변화하고 변주되었는지 그 실체를 밝힌다.

정 교수는 식민지 통치 시기 이루어진 조선 연구가 순수한 지식 추구일 리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이들의 연구 생산물이 오로지 식민주의적일 것이라는 단정 또한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선사학을 제도화했던 오다 쇼고와 이마니시 류는 후대에 관료형 학자와 엄밀성을 견지한 학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데, 특히 이마니시 류는 일본과 한국에서 대비되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양가적이고 분열적인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 상반된 평가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저자는 식민주의적 맥락에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 연구가 확장, 변용, 역류해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음을 들려줌으로써, 식민사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식민사학의 비판과 극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확장된 질문을 던진다.

정 교수는 "경성제대의 조선 연구가 학문적 자율성과 과학적 엄밀성, 제국적 보편성을 지향한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했다"며 "그 배후에 식민지배의 폭력적 현실이 최종심급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라고 짚는다.


■ 남양과 식민주의 일본 제국주의의 남진과 대동아공영권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7) | 허영란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304쪽

7권 ‘남양과 식민주의’는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가 ‘대동아공영권’의 또 다른 공간이었던 ‘남양(南洋)’을 다룬 책이다. 기존 연구가 한반도나 만주에 집중된 반면 이 책은 타이완과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전역을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의 또 다른 침략인 남진과 대동아공영권을 주요하게 다룬다. 메이지유신 전후와 1910년대 남양군도 점령 시기 남양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관심이 경제적 세력 확장에서 점차 군사적 세력 확장의 공간으로 변화해간 것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북진론에 이어 남진론이 대두하고 ‘대동아공영권’이 이데올로기로서 구성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일본 제국의 침략 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결국 남양군도와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의 남양 연구 또는 남방 연구가 남진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내용을 채워나간 것에 다름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일본의 식민주의에서 남양 또는 남방 연구가 일본 제국주의의 동남아시아 ‘진출’ 혹은 ‘침공’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이 책은 대부분의 일제 식민사학 연구가 한반도와 일본, 더 나아가 만주와 중국 대륙에서 머무는 것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동남아시아까지 시야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주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매우 의미 있는 연구서라 할 수 있다.

허 교수는 "적도 주변에 산재한 섬들과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포괄하는 남양은 '동양-서양'이라는 개념과 구별되는 제3의 일본식 지역 개념이었다"며 "동양과 남양의 관계는 일본제국의 거시적 식민주의가 시기별로 확산하고 변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남양이나 남방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팽창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에 의해 구성된 곳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동양이 메이지 시기 이래 북진의 공간이었다면 남양은 태평양전쟁에 의해 확장된 남진의 공간이었다”며 “일본은 ‘아시아와의 연대’를 내세웠지만 침략의 수단으로 하는 자가당착적 연대”였다고 비판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에 주둔 중인 일본군./사진제공=사회평론아카데미

■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 외무성 관리 ‘동방학’에서 문부성·제국대학 ‘대동아학’까지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08) | 이태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 05 | 452쪽

총서 마지막 책인 8권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은 1권의 저자이기도 한 이태진 교수가 썼다.

이 책은 일본의 쇼와 시대 외무성 산하 동방문화학원(1929)에서부터 교토제대 인문과학연구소(1939)와 도쿄제대 동양문화연구소(1941)까지 ‘동방학’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 개발에 앞장선 기관의 실체를 파헤친 연구서이다. 각각의 기관이 세워진 과정을 통해 일본제국의 주도하에 학자들이 대외 침략을 위한 논리 개발에 열중한 사실을 살폈다. 

특히 각 기관의 인력이 「교육칙어」(1899)를 교육받은 세대로부터 시작해 ‘쇼와 유신’ 세대까지 이어졌음을 각 기관의 주요 인물 사례를 통해 새롭게 드러냈으며, 잘못된 역사연구가 제국 일본의 여섯 차례나 되는 대외 침략전쟁에 끼친 영향을 실체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오늘의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시대 역사학의 잘못을 직시하여 성찰적인 역사연구를 통해 지금이라도 일본의 역사교육이 패권주의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21세기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공존체제 확립에 이바지하기를 촉구한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제국 일본의 대외 팽창정책을 뒷받침한 천황제 국가주의는 신성불가침으로 강고했다"며 "쇼와(昭和·재위 1926∼1989) 천황은 선대와 달리 전쟁 총사령관 역할을 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이지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 일본을 발전시키려고 ‘유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독점하기 위한 무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며 "제국 일본의 잘못된 역사교육은 동아시아에서 큰 전쟁을 반복하게 했다"며 "한중일 3국 역사학계의 반성과 협력관계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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