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화/과학』 30주년 특집호 - '문화체제와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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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화/과학』 30주년 특집호 - '문화체제와 1990년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6.19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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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 『문화과학』 110호 2022 여름 30주년 특집호 - 문화체제와 1990년대 | 편집부 | 문화과학사 | 2022년 06월 14일 | 372쪽

 

 

【110호 특집 ‘문화체제와 1990년대】

이번 호는 ‘문화체제와 1990년대’라는 특집을 통해 90년대로부터 2000년대로 이어지는 시간을 단절과 변별점, 연속성이 착종된 문화체제로서 제시하고 이 체제가 202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여전히 견인하고 있음을 문제틀로 제시한다. 다시 말하면, 90년대는 1987년을 정점으로 한 정치적 체제와 1997년을 바닥으로 한 경제적 체제 사이의 문화적 체제이자, 또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사이에서 양쪽 모두의 사회적 에토스와 책임을 수렴하고 예견했던 문제적 시간이었다. 

다섯 편의 글이 실린 이번 특집을 통해 문화적 차원에서 자유와 해방, 개혁과 연대에 기초한 사회를 꿈꾸었던 90년대가 무엇을 놓쳤고 또 무엇을 남겨주었는지, 앞으로 이 과제를 어떻게 현재의 문화적 장에서 추구해가야 하는지를 토론하며 함께 모색하고 있다. 그에 따라 ‘문화체제’에 대한 이론적 (재)구상을 시작으로 각각 90년대를 풍미했던 서브컬처와 디지털 기술, 여가 문화, 청년 세대 등을 키워드로 하여 90년대를 새롭게 조명했다. 

‘문화체제’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90년대를 재사유할 방법론을 모색하는 총론이자 시론적 성격의 글 「문화체제, 유물론적 문화론을 사고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 1990년대 문화체제의 개념 규정을 위한 이론적 기초 공사」에서 정정훈은 문화적 실천을 일정하게 규제하지만 시계열을 따라 역사적으로 구별되고 변화하는 문화체제의 개념을 통해 역사유물론적 관점에서 90년대 문화에 접근할 방법을 찾는다. ‘90년대 문화체제’라는 개념을 통해 그는 정치, 미디어, 대중문화 등의 교통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들이 상호 교차하면서 오늘날까지 관철되는 문화적 실천의 규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강신규는 「1990년대의 서브컬처, 지금의 서브컬처」에서 현재 한국의 서브컬처의 원류를 1990년대 서브컬처에서 찾으면서도 문화적 하위성을 지녔던 과거의 하위문화가 이제는 산업화된 주류문화에 속하게 된 과정을 탐색한다. 그는 자생성, 이식성, 혼종성, 수용자의 참여성과 커뮤니티 중심성 등을 지녔던 90년대 서브컬처를 향수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대신, 2000년대 이후 서브컬처가 다시 톱-다운 방식을 통해 자본에 포섭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한편, 최근 새로운 형질변화를 보여주는 서브컬처의 새로운 문화 향유 패턴과 미래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90년대 시민 디지털 문화와 자유·개방·공유·참여의 디지털 시장 논리」의 필자 조동원은 자유·개방·공유·참여의 논리로 형성된 90년대 디지털 문화의 형성 과정과 한계를 논의한다. 1990년대 후반 피씨 통신에서 인터넷으로 플랫폼 환승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되었던 개방적 디지털 문화는 인터넷의 자동적 개방성 뒤에는 훨씬 고도화한 통제 조직과 장치가 생겨나 그 독점을 비가시화하는 정보기술기업의 더욱 강력한 독점시장이 형성되는 위기가 도래했다.

천주희는 그의 글 「지금은 여가 시대?: 1980, 90년대 이후, ‘여가 만들기’ 전략과 기획」에서 노동과 생산 중심의 사회가 여가와 소비 중심의 사회로 변화했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면서 90년대 여가 사회의 기획과 변화를 추적한다. 90년대 초반의 여가 문화는 정치적 불안을 통제하고 국민을 세계화·탈정치화하는 한편 민족주의적 규율까지 주입하려는 목적을 가진 국가적 기획이었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자의 자기경영 전략이자 창의적 주체가 되라는 주문으로 기능하게 된다고 필자는 보았다. 

마지막으로 90년대 신세대론부터 현재의 MZ세대론까지를 통시적으로 분석하는 글 「X세대에서 MZ세대에 이르는 청년 없는 청년 담론 비판」에서 김성일은 90년대 신세대론부터 현재의 MZ세대론까지를 통시적으로 분석하면서, 당시의 세대론이 현재의 세대론과 이어지는 연속성을 탐구한다. 그는 1988년 첫 등장한 신세대론 이후 청년 담론이 기업과 광고기획사, 연구자, 언론과 미디어, 정부와 지자체, 제도정치권 집단의 필요에 따라 전유되면서 N세대, 88만원세대, 웹2.0세대, n포세대 등의 다양한 청년세대론이 등장했음을 규명한다. 


【30주년 특별 좌담】

『문화/과학』 30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 좌담에서는 비평과 교육,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문화연구자들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김지수, 서강대학교 미디어융합연구소의 박승일,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의 전주희, 그리고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의 최혁규 - 과 함께 한국 문화연구의 형성 과정과 『문화/과학』의 당대적 위치, 이론과 실천의 절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지금 주목해야 하는 문화연구의 비판적 쟁점들 등을 집중 토론했다.

거의 메타비평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이번 특별 좌담을 통해 『문화/과학』이 어떻게 연구자의 책상과 현장의 테이블에서, 지식공동체의 서재 한켠에서 ‘삐딱하게’ 자리를 지켜왔는가를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 좌담 형식을 통해 참가자들은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활용하기 어려운 『문화/과학』식 글쓰기와 담론 생산 방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현실 개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와 궤적에 대해 토론했다.


【동시대 분석】

레트로 디자인, 웹 문화와 시각문화, 케이팝, 대선 등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들을 다뤘다.

최호랑은 「범람하는 레트로 디자인과 몇 가지 문제들」에서 디자인을 통해 최근 붐을 이룬 레트로 현상을 해석하며, 시장 포화 상태에 이른 편의점의 상품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재미 중심의 ‘펀슈머 레트로’, 그리고 배달의민족이 을지로 옛 간판에서 차용하여 개발한 서체 ‘을지로체’에 주목했다.

권태현과 박이선의 글 「바깥이 없으면 어디로 나가지?: 동시대 웹 문화에서 서브컬처의 위상 변화」은 초기에는 기성문화에 대항하는 문화적 해방구였던 웹 문화가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광고 콘텐츠에 매개되어 변화해온 자본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독자 투고의 형식으로 들어온 안희제의 글 「영원한 수수께끼라는 공론장의 가능성: 케이팝 세계관 콘텐츠를 중심으로」은 최근 케이팝의 시각적 영상 콘텐츠를 둘러싸고 소속사, 아티스트, 팬덤, 플랫폼 사이의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이미지 배후의 실체를 추리하는 음모론적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의 대선 결과에 대한 엄중한 비판과 반성적 성찰을 담은 홍명교의 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길 잃은 한국 사회운동의 과제」는 지난 대선에서 상대 후보가 싫어서 투표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조명하며 민주당의 패배가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부족주의가 움직이는 진영 논리와 민주당의 내로남불식 대처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판단한다. 


【텍스트의 재발견】

젊은 학자들이 펴내 각광을 받은 세 권의 연구서에 대한 서평들을 실었다. 먼저 남승현은 「남성성 분석을 통한 한국사회의 해부」에서 한국의 남성성이 해방 직후부터 70년대까지 식민지·냉전·계급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서술한 허윤의 『남성성의 각본들: 민족국가의 탄생과 남자-되기』와, 현대 한국사회에서 남성성이 유흥업소를 통해 자본의 논리와 관계하는 방식을 분석한 황유나의 『남자들의 방: 남자-되기, 유흥업소, 아가씨노동』을 다룬다. 

그리고 염운옥은 그의 글 「“미백의 세계를 비추는 입체경”」에서 박소정의 책 『미백: 피부색의 문화정치』가 가진 미덕과 장점을 적극적으로 읽어낸다. 이 책은 피부색을 대상으로 백인성에 대한 선망을 다룬 인종주의 비판이 아니라, 미백을 백인성의 파편적 전유를 통해 누구든 수행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자 주체의 잠재적 역량이 발현되고 사회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배치’의 장으로 읽는다. 


【이론의 재구성】

비판이론의 현재성을 탐구하는 배세진의 글 「비판이론의 현재성: 개념의 정념들, 그리고 문화연구라는 질문의 메타과학」은 김경만의 입론을 바탕으로 난해하고 추상적인 이론이 과연 사회적 해방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과연 이론은 내재적으로 객관적이며 지식인들은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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