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라학파는 변증가인가, 소피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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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라학파는 변증가인가, 소피스트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6.12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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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가라학파 변증가, 쟁론가 혹은 소피스트 | 김유석 지음 | 아카넷 | 436쪽

 

메가라학파는 서기전 4세기부터 2세기 중반까지, 약 한 세기 반에 걸쳐 활동한 그리스의 철학 학파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에우클레이데스가 자신의 고향인 메가라에 세웠다. 이 책은 에우클레이데스를 비롯하여 에우불리데스, 디오도로스 크로노스, 스틸폰 등 메가라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이들의 저술은 오늘날 거의 다 소실되었기에, 동시대인들과 후대인들의 증언들을 검토하면서 학파의 문제의식과 개별 철학자들의 사상을 최대한 재구성하고 그 의미를 이해·평가하고자 하였다. 특히 「부록」에 메가라학파에 관한 증언들과 단편들을 번역 수록함으로써, 해당 철학자들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메가라학파는 동시대의 소크라테스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오해와 왜곡으로 얼룩진 철학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스스로를 ‘변증가’라 불렀지만, 적들은 그저 말싸움꾼이라는 의미에서 ‘쟁론가’ 혹은 ‘소피스트’라고 불렀다. 메가라 철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몇몇 역설과 논변은 소피스트적 궤변과 오류 추론의 대표 사례들로 간주되어 오늘날 대학의 교양 논리학에서 다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메가라 철학자들이 전개했던 논변들의 이면에는 존재와 인식 그리고 언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오해를 받게 되었을까?

먼저 이들의 저술이 모두 소실되었고, 극소수의 간접 증언들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너무나 충실히 계승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를 받지 않았다. 그는 보수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았고, 학교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는 문답법이라는 철학적 탐구 방법을 매개로 대화자들과 인간관계를 맺었다. 

메가라 철학자들은 자기들이 소크라테스적 탐문 정신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학파의 정체성을 규정할 만한 어떤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의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이에 기반한 논박의 기술에 열중했다. 논적들은 이들을 일컬어 말싸움을 일삼는 쟁론가라고 불렀고, 철학자라기보다는 소피스트로 취급하였다. 특히 메가라 철학자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다른 입장을 지닌 철학자들과 격렬하게 싸웠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들 학파 내부에서도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이어나갔다. 메가라 철학자들이 소크라테스로부터 받아들인 가장 중요한 유산은 변증술과 토론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논쟁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탐문 정신을 이어갔던 메가라학파는, 비록 뚜렷한 철학적 체계나 정체성을 세우지 않았지만, 서기전 4세기부터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윤리학과 형이상학을 비롯한 철학의 몇몇 분야들, 특히 변증술과 논리학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일상의 경험에 기반한 앎과 그것의 전달 매체인 언어가 운동과 변화로 가득한 세계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책에서는 네 명의 대표적인 메가라 철학자를 다룬다. 먼저 메가라 출신으로 메가라학파를 설립한 에우클레이데스의 경우,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에 플라톤을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아테네를 떠나 몸을 피했을 때 그들을 자신의 고향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도입부에 주요 화자로 등장하는데, 혹자는 이것이 플라톤의 감사의 표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에우클레이데스의 변증술과 좋음의 단일성에 관한 것들이다. 이외에도 역설 논변으로 유명한 에우불리데스는 무시무시한 실력의 변증가로 묘사된다. 그래서 적대자들에게 쟁론가나 소피스트로 불리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피스트적 논박』에서 비판한 논변들 중 일부는 에우불리데스의 것으로 추정된다. 디오도로스는 자연학, 언어이론, 논리-변증술 이론을 통해 언어와 세계를 사유했고, 스틸폰은 대부분의 메가라 철학자들이 논리-변증술에 집중한 데 반해 윤리·정치적인 문제에 주목했다.

메가라학파는 스틸폰을 끝으로 한 세기 반 만에 철학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메가라학파의 제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몇몇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며, 그나마 남은 그들의 행적이나 학설에 관한 증언조차 부정확하며 신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력한 논리학과 변증술로 무장하고 있었으면서, 왜 메가라학파는 더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급하게 사라져버렸을까?

메가라학파는 설명이나 논거 확립의 측면은 도외시한 채, 논박과 쟁론의 측면에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형이상학적 원리를 윤리학의 영역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철학자의 주장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적어도 메가라 철학자들의 논변들이 일상의 경험과 상식에 빠져 느슨해진 인간의 정신을 아프게 찌르며, 이성의 능력을 날카롭게 벼리도록 자극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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