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관계는 나빴던 기간보다 좋았던 시절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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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관계는 나빴던 기간보다 좋았던 시절이 더 많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12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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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 이야기 9 |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392쪽

 

전체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전반부(1~3부)에서는 청나라 멸망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북양정부 출범, 군벌전쟁과 북벌, 국공합작, 항일전쟁, 국공내전에 이르는 20세기 중국의 복잡하고 굵직한 사건들의 맥을 짚어준다. 책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실제 역사 인물들은 누가 주인공이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개성이 강한 지도자의 면면을 드러낸다.

후반부(4~6부)에서는 중-미 관계 약 200년의 역사를 대하(大河)처럼 스케치해준다. 즉, 1784년 2월 뉴욕항을 떠나 광저우항에 도착한 ‘중국황후호’(中國皇后號)의 첫 출항에서부터 1970년대 냉전 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미국의 오랜 관계의 연원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오늘날 무역전쟁과 패권 경쟁으로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볼 때, 후반부는 중-미 관계의 겉과 속, 현상과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중 관계는 나빴던 기간보다 좋았던 시절이 더 많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적대국처럼 보였지만 언제든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으며 오직 국익만 있을 뿐이라는 외교의 흔한 금언을 확인하는 것이지만, 국제관계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냉혹한 현실 원리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중국 외교의 주역 저우언라이는, 냉전 초기 미국 간첩 사건으로 관계가 경색되었을 때도 기꺼이 이렇게 말했다. “구동존이(求同存異), 다른 점은 인정하고, 같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자. 미국과의 협상도 마다하지 않겠다”. 

최근으로 눈을 돌려보자. 바이든 정부는 전 세계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2018년 트럼프 정부 때 촉발한 대중국 무역전쟁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중국의 공조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깔려 있을 것이다. 이는 냉전 시대 서로의 모순을 이용하려 했던 ‘미중소 외교 삼국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책을 장식하는 인물들 역시 누가 주인공이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지도자의 면면을 드러낸다. 먼저, 청말 정치인으로 마지막 만주(당시는 동3성) 총독을 지낸 자오얼쉰(趙爾巽)이다. 마적 장쭤린(張作霖)의 귀순을 이끌어내 ‘이마제마’(以馬制馬, 마적을 이용해 마적을 제압하다) 통치로 동북을 안정화시켰다. 중화민국이 수립되어 위안스카이가 총통으로 취임해 요직을 제안했을 때 사양하며 남긴 말에서 그의 됨됨을 알 수 있다. “나는 청조의 관리였다. 청나라를 위해 일하고, 밥을 먹었다. 청조의 역사를 내 손으로 편찬하게 해주기 바란다.” 물러날 때와 할 일을 아는 지도자는 결코 누추하지 않다.

장쭤린은 또 어떤가. 배운 것도 없는 마적(馬賊) 출신이지만 북양정부의 마지막을 집권한 군벌은 다름 아닌 그였다. 그는 동북의 군비를 확장하고 교육과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사람 보는 눈이었다. 그는 원수진 일이 있어도 인재라면 과감히 기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대군벌 펑위샹(馮玉祥). 1924년 베이징정변을 계기로 몸담았던 즈파(直派) 군벌과 결별, 국민당에 들어가 장제스(蔣介石)의 북벌에 참여했다. 국공합작과 항일 과정에서 장제스와 연합과 갈등을 반복했다. 일기 쓰기를 거르는 법이 없었고 독서를 좋아했으며 가정교사를 두어 따로 역사 공부를 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강했다. 

무엇보다 장제스 국민정부에 편입된 여타의 군벌과 달랐던 것은 윈난성 주석 룽윈(龍雲)이다. 그는 자체의 재정과 군사력을 완비한 ‘윈난의 왕’이었다. 윈난의 군정 대권을 18년간 장악한 그를 장제스는 견제하고 급기야 권력을 빼앗은 후 3년 2개월 동안 연금시켰다. 항일전쟁이 승리로 끝났을 때, 장제스는 국공내전의 출발을 룽윈 제거로 삼았을 정도다. 훗날 신중국에서도 룽윈은 실권이 없었고, 우파로 몰려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룽윈은 복잡한 시대 가장 복잡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책 후반부는 중국과 미국의 200년 교류 및 외교의 풍경, 탁월한 능력과 수완으로 그 역사를 만들어갔던 외교의 주역들을 조망한다.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이리 차고 저리 찰 때도 미국은 무력 대신 정식 외교를 택했다. 조지 워싱턴보다 더 유명했던 광저우 주재 영사 새뮤얼 쇼, 왕샤조약을 이끌어낸 담판의 고수 케일럽 쿠싱, 중국 근대사상 최초로 평등하게 맺은 푸안천조약을 이끈 앤슨 벌링게임, 그리고 20세기에 와서 의료와 교육에서 막대한 자선을 펼친 록펠러 2세, 50년간 중-미 외교의 산증인으로 옌칭(燕京)대학을 설립한 존 레이턴 스튜어트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은 의화단 사건의 과도한 배상금을 받아낸 주미공사 량청(梁誠), 유학생 파견 규정을 관철시킨 주미공사 우팅팡(伍廷芳), 20세기 냉전 시대의 노련한 외교가들 예궁차오(葉公超), 저우언라이(周恩來), 왕빙난(王炳南)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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