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가치관이 만들어낸 ‘나쁜 여자’, 그 솔직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마주하다
상태바
가부장적 가치관이 만들어낸 ‘나쁜 여자’, 그 솔직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마주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12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우리 안의 나쁜 여자 | 권오숙·김소임·김은하·박성연·박인희 외 5명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84쪽

 

미투 운동은 지난 몇 년간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이 오히려 일부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또 다른 갈등이 유발되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을 유혹자, 거짓말쟁이, 행실 나쁜 여자, 남자의 인생을 망친 여자 등 ‘나쁜 여자’로 몰고 가려는 미묘한 심리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유혹자 이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나쁜 여자’ 이미지는 3,000년의 인류 문명사 동안 여러 방식을 통해 반복 재생산되었으며 현재에도 매체와 화자를 바꿔가며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이 책은 신화, 성서,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탄생, 발전한 ‘나쁜 여자’들을 살펴본다.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는 그리스 신화 속 메데이아, 다섯 명의 남편을 두었던 사마리아 여자, 사랑의 이름으로 남자를 이기적으로 조종하는 『위대한 유산』의 에스텔라, 남편보다 더 못된 심보를 가진 『흥부전』의 놀부 마누라, 정이현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속물적이고 영악한 계산주의자 유리 등 다양한 ‘나쁜 여자’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정의되고 있다. 과연 그녀들은 정말 나쁜 여자들이었을까?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그녀들의 열정과 고군분투가 과연 그렇게 나쁘게만 평가되어야 했을까? 이 책에서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그녀들을 바라본다.

저자들은 나쁜 여자의 등장과 발전이 가부장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예술 속에 등장하는 나쁜 여자들은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다. 아내, 정부, 딸, 창녀, 왕비, 하녀, 마녀, 계모 등의 정체성은 남성과의 관계, 남성 중심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정립된 것이다. 그리고 가부장적 가치관은 그녀들이 남성이 정한 규칙을 어겼을 경우 그녀들을 ‘나쁜 여자’로 규정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나쁜 여자’ 만들기를 주도했던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의 이미지가 공정하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나쁜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걷어내면서 새롭고 강력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1부 〈나쁜 여자의 탄생〉에서는 신화, 성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나타난 나쁜 여자의 모습을 살펴본다. 1장 ‘신화 속 나쁜 여자, 문화적 원형이 되다’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 여신의 지위가 추락하게 되는 원인을 살피고 그 사례를 찾아본다. 판도라, 아프로디테, 메두사와 키르케 그리고 메데이아가 나쁜 여자로 부각되게 된 이면에 가부장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2장 ‘성서 속의 악녀, 생존자가 되다’에서는 다말, 라합, 밧세바 등 나쁜 여자로 여겨지는 성서 속 여성의 사례를 제시하고, 이러한 여성들의 지위가 신약에 와서 어떻게 반전되었는지를 살펴본다. 3장 ‘다섯 명의 남편을 둔 그녀들: 사마리아 여자와 바쓰의 여장부’에서는 『신약성서』 속 대표적인 문제 여성인 사마리아 여인이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속 바쓰의 여장부라는 여성으로 재해석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초서가 보여준 혁신적 시각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탐색한다. 4장 ‘셰익스피어 비극 속 악녀들’에서는 셰익스피어 비극 속 최고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리어 왕의 두 딸 거너릴과 리건 그리고 맥베스 부인을 르네상스 시대의 ‘여성 목소리 억압’과 연결시켜서 생각해본다.

 

5장 ‘마녀로 불린 여자들: 역사적 개관’에서는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진 마녀사냥에 대해 다룬다. 6장 ‘고전 소설은 나쁜 여자가 필요하다’에서는 조선의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 『사씨남정기』, 『심청전』 등에 나타난 나쁜 여자를 여성에 대한 유교적 기대와 규범을 드러낸 여훈서와 연계시켜서 해석한다. 또한 고전 소설이 생존을 위해서 나쁜 여자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알아본다. 7장 ‘여신인가 사이렌인가?: 『위대한 유산』과 『위대한 개츠비』의 악녀들’에서는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나쁜 여자 에스텔라와 데이지가 남성 내레이터의 시각과 시대의 가치관에 의해서 어떻게 왜곡되고 폄하되는지를 살펴본다.

2부 〈나쁜 여자의 진화〉에서는 한국 현대 소설, 시각 예술, 영화에 등장한 새로운 나쁜 여자의 행보에 주목한다. 먼저 8장 ‘미술 속 여성 이미지의 해체’에서는 바로크 시대와 인상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 말까지 나쁜 여자의 치명성을 부각시키는 여성 이미지의 양극화가 지속되어왔으나 20세기 들어와서 새로운 여성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또한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도 게임 등의 디지털 매체가 나쁜 여자를 재활용하고 있음에도 주목한다.

9장 ‘신가부장제의 부상과 나쁜 여자의 재귀: 정이현의 단편 소설 살펴보기’에서는 정이현의 단편 소설 속 나쁜 여자를 다룬다. 가부장제가 더욱 강화된 IMF 시대와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나쁜 여자가 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10장 ‘영화 속 악녀들의 변천과 새로운 탄생’에서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나쁜 여자를 양산한 배경에 주목하면서 대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할리우드 사례들을 살펴본다. 특히 팜므 파탈 캐릭터가 누아르 영화와 함께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추적하고 최근 영화 속 나쁜 여자의 변신에 주목한다. 11장 ‘영화 〈오필리아〉와 나쁜 여자 성공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 속 희생양 오필리아가 영화에서는 어떻게 나쁜 여자 전략을 활용하여 생존자로 변모하는지를 추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