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재앙은 우리 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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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재앙은 우리 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12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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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브레인: 코로나19는 우리 뇌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 정수근 지음 | 부키 | 260쪽

 

팬데믹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일상 복귀와 엔데믹에 대한 기대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강제로 참여하게 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고립 실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며, 코로나바이러스와 팬데믹 상황이 우리 뇌와 인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영향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과 우려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과연 코로나19에 걸리면 정말 우리 뇌가 손상될까? 완치 후 후유증은 얼마나 오래갈까? 팬데믹 기간에 태어난 신생아들, 마스크 쓴 얼굴이 익숙하고 비대면 수업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의 인지 발달은 괜찮을까? 팬데믹 때문에 저하된 뇌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은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후 2년여가 지난 현재, 코로나가 우리 뇌와 마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심리학, 뇌 과학, 신경 과학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저자는 코로나 시대에 일상에서 한 번쯤 궁금하거나 걱정이 되었던 문제에 대한 연구 수백 건을 직접 찾아보고 그 결과와 데이터를 정리해 이 책에 담았다.

저자에 의하면, 실제로 영국인 50만 명의 건강 빅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뱅크(UK Biobank)가 400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감염 전후의 뇌 영상을 비교했더니 신경 세포체가 밀집되어 있는 부분인 회백질의 두께가 얇아져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의 뇌를 검사했더니 마치 치매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을 앓은 사람의 뇌처럼 여기저기 손상을 입었고 특히 고위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신경 세포들이 망가진 것을 확인했다.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어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으로 뇌 손상과 인지 기능 저하를 피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 이동 제한과 지역 봉쇄 등 팬데믹이 초래한 사회적 고립은 뇌와 인지 기능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2022년 4월,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코로나를 앓았다. 또 코로나 감염 경험이 없더라도 팬데믹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이는 한 명도 없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인류를 대상으로 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고립 실험’이라고 일컫는다. 전 세계인이 강제로 참여하게 된 이 실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므로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미국국립의회도서관이 운영하는 의학 논문 검색 시스템인 퍼브메드(PubMed)에서는 20만 건 이상의 코로나19 관련 자료가 검색된다(2022년 1월 기준). 또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이전에 진행된 연구 중에는 팬데믹과 유사한 상황을 다룬 것도 많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코로나바이러스와 팬데믹이 우리 뇌와 인지 기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과연 위협의 실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회적 거리 두기, 자가 격리, 마스크 상시 착용,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증가 등 강력한 방역 조치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졌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곤란한 문제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문제가 우리 뇌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면 보다 발전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으며, 더불어 경직되고 단조로웠던 우리의 일상도 조금은 더 유연하고 풍부해질 것이라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저하된 뇌 기능을 회복하고 지친 심신을 깨우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대책을 들어보자. 우리 뇌와 인지 기능은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노출될수록 더 발달한다. 그러므로 생소한 동선으로 출퇴근하거나 낯선 점심 메뉴에 도전하는 것,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즐기거나 새 취미를 찾는 것처럼 일상에서 소소한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뇌 영역의 부피가 커지고 뇌 영역 간 연결성도 좋아진다. 게다가 충분한 수면과 스킨십은 스트레스 수치를 줄여 주고 면역력과 백신 효과를 높인다.

한편, 많은 직장인이 화상 회의를 대면 회의보다 더 힘들어한다. 그 이유는 모니터 속 참석자들이 나만 주목하는 상황, 시야를 어지럽히는 배경 화면, 시선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 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는 환경 등 우리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가 대면 회의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뇌는 더 많은 에너지를 더 빨리 소모하게 된다. 그러므로 꼭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잠시 웹캠을 꺼 두거나 참석자들의 얼굴을 다른 인터넷 창으로 가리면 도움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안전과 편안함을 느끼는 ‘개인적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범위는 평균 0.5~1.2미터 내외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이보다 가까이 접근하면 불편함과 위협을 느낀다. 그런데 이 개인적 공간의 크기가 팬데믹 이후 더 확장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염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사람들의 사회적 정보 처리 과정에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안전함을 느끼는 개인적 공간도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팬데믹 종식이나 엔데믹 환경에도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동안은 어색하겠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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