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속에 감춰진 니체 철학의 핵심 사유들 그리고 ‘긍정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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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속에 감춰진 니체 철학의 핵심 사유들 그리고 ‘긍정의 철학’
  • 백승영 홍익대·철학
  • 승인 2022.06.12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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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 (백승영 지음, 세창출판사, 988쪽, 2022.04)

 

“분명 읽었는데 무엇을 읽은 것인지 도통 모르겠어요.”, “이해한 것 같았는데, 설명을 못 하겠어요.” 『차라투스트라』의 독자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하소연이다. 독서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의 의무감이었을 수도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고통도 함께 시작되었다.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고통의 강도에, ‘괜히 시작해서 내 발등을 찍었다’는 후회도 했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해 쓰는 것이 어째서 그리 힘들었을까? 『차라투스트라』의 독자가 겪는 어려움과 같은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니체 철학에 관한 학술서와 연구논문을 여럿 발표했고 『차라투스트라』에 관해 강의도 하지만, 『차라투스트라』 앞에 서면 나는 여전히 곤란을 겪는 독자다.        

 

1. 가면을 쓴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철학서다. 서사 드라마(epic drama) 구성과 문학적 문체로 장식된 독특한 가면이다. 문체는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어법에 화려한 수사와 리듬감이 입혀져 있고, 아포리즘과 복합문이 조화롭게 조율되어 있으며, 거기에 심장을 파고들면서 카타르시스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가의 기술도 발휘되어 있다. 또한 다채로운 메타포와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발한 구성틀, 매력적이고도 자극적인 패러디도 치밀한 계산 하에 포진되어 있다. 이런 문체로 주인공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을 드라마 형태로 구성해 놓았다. <서설>부터 시작하는 그 대(大)서사 속에는 80개 텍스트에 각각 작은 서사가 독특한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들어있다. 텍스트들의 개별 서사와 대서사는 서로 연계되어 특정 텍스트의 의미가 다른 텍스트에서 비로소 밝혀지기도 하고, 앞 텍스트의 내용이 뒤에서 반박되기도 한다. TV에서 보는 장편 드라마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의 가면이 갖는 문학적 가치는 “루터 이후의 가장 위대한 독일어 천재”라는 고트프리드 벤(Gottfried Benn)의 평가를 소환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가면은 벗겨내야 한다. 니체가 그 속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꼭꼭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면을 벗기는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차라투스트라』에서 벌어지는 메타포와 패러디의 향연 때문이다. 여러 시점과 공간부터 시작해서 식물과 동물과 자연환경을 넘어 등장인물들이나 사건들에 이르는 대다수가 독특한 설정 속에서 메타포 형태로 등장한다. 『차라투스트라』의 배경을 이루는 여러 사상가와 사유도 예외는 아니어서,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쇼펜하우어, 칸트, 하인제, 괴테, 셰익스피어, 에머슨, 횔덜린, 바그너, 심지어는 니체의 청년기 철학이나 『성서』마저도 메타포의 향연에 초대된다. 이 향연에는 패러디도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메타포 형태로 제시되었던 것이 재차 이중꼬임의 형태로 패러디되기도 하고, 『천일야화』 같은 설화, 『이솝우화』 같은 동화,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비극, 『파우스트』, 『햄릿』 같은 문학작품, 그리고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 이들의 저작과 행적도 패러디 대상이 된다. 심지어는 니체 자신에 대한 자기패러디도 가세한다. 『성서』와 예수의 행적은 패러디의 향연에서 단연 돋보이는 단골손님이다. 

그런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이런 가면에 대해 어떤 힌트도 지침도 주지 않는다. 독자에게서 ‘이해불가!’라는 항복선언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2. 가면 속에 감춰진 니체 철학과 『차라투스트라』

니체가 가면 속에 숨겨놓은 철학적 사유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 속에는 트라이앵글 형태로 구성된 ‘긍정의 철학’이 숨어있다. 

① 긍정철학 트라이앵글의 한 축은 현대성과 현대정신의 시작점이라는 측면이 담당한다. 근대까지 지속된 서양문명의 정신적 토대를 해체시키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정신세계를 건축하는데, 그 대표꼴은 이원적 세계관을 일원론으로, 절대주의와 중심주의를 다원론으로, 실체론을 관계론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것이 니체에게 ‘현대성과 현대정신으로의 전환점’ 지위를 부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② 두 번째 축은 인간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교육적 기획이다. 니체는 철학의 소명을 인간을 ‘잘 살게’ 하는 데서 찾았고, 잘 산다는 것을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여긴다. 철학은 건강한 삶을 위해 봉사하는 학문이며, 그렇지 않은 철학은 현학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의 한결같은 믿음이었다. 니체가 플라톤 철학을 난센스 철학이라면서 극복대상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을 예외적으로 존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리스의 퇴락을 그리스인들의 퇴락으로 진단하면서, 『폴리테이아(국가·정체)』라는 작품을 썼다. 거기서 그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키워내는 교육과정을 선보인다. 인간이 이성적이어야 그리고 최고로 이성적 존재(철학자 왕)가 통치를 해야, 폴리스에 정의가 구현되고 소크라테스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런 원대한 기획에 영감을 받은 니체는 자기도 철학적 교육자이고자 한다. 그가 자신의 자화상을 철학적 의사나 철학적 계몽가로 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③ 긍정철학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축은 의지철학이다. 니체는 이성의 힘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간의 중심을 이성에서 찾고, 이성의 문제해결 능력을 믿은 대표적인 경우다. 데카르트의 이 믿음이 철학을 실질적으로 지배했었고,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로 규정하는 우리의 일상적 태도에도 그 믿음은 들어있다. 그런데 니체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를 ‘나는 의욕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바꿔버린다. 이성 대신 의지가 인간을 대변하고, 문제해결능력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이 긍정철학 트라이앵글의 중심부에 긍정의 주체인 ‘건강한 인간(위버멘쉬Übermensch)’이 자리하고 있는 책이 바로 『차라투스트라』다. 인간이 어떻게 해야 ‘긍정의 말과 긍정의 행위를 하는 존재’가 되는지를 알려주는 책인 것이다. 물론 그 ‘어떻게?’의 전모는 긍정철학 트라이앵글을 전제해야 비로소 밝혀지기에, 독자는 그 트라이앵글에 대해 대략의 윤곽 정도라도 그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의 어느 곳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으니, 윤곽을 그리는 것도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면 벗기기에는 이런 수고로움도 동반된다.  

 
3.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미래의 성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다섯 번째 복음”이며 “미래의 성서”라고 부른다. 이런 전무후무한 자기평가에는 이유가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의 건강한 모습과 건강하게 사는 길을 알려주기에, 인류에게 디스토피아가 아닌 건강한 미래를 마련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평가는 『차라투스트라』의 가면을 벗겨내지 않으면 무의미한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은 니체의 자화자찬이 정당한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기회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면을 벗겨내는 수고로움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독자들에게는 말이다.    

 

백승영 홍익대·철학

홍익대 대학원(미학과) 철학 교수.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어 니체 전집(고증판 KGW) 편집위원이자 번역자.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니체의 방법론·존재론·인식론·도덕론·예술론)과 『니체, 철학적 정치를 말하다』(니체의 국가론·법론·형벌론·정의론)의 저자. 네이버 지식백과 『우상의 황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유고』의 해설자. 제24회 열암학술상 및 제2회 한국출판문화대상 저술상 수상. 저서로는 『Interpretation bei Nietzsche. Eine Analyse』(단독 저서), 『Nietzsche. Ruttler an hundertjahriger Philosophietradition』(독일어 책임번역 및 공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번역서) 외 다수의 단독 저서, 공저,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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