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상들은 평안하신가? … 불교문헌을 통해 본 천도의식의 교의와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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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상들은 평안하신가? … 불교문헌을 통해 본 천도의식의 교의와 실천
  • 김성순 전남대·불교학
  • 승인 2022.06.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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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김성순 지음, 도서출판 역사산책, 320쪽, 2022.04)

 

도대체 왜 21세기에도 불교의 천도의식은 지속되는 것일까? 

불교도들은 정말로 경전 속의 지옥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불교의 지옥은 기독교나 이슬람의 지옥과는 어떻게 다를까? 

불교에서 얘기하는 아귀는 귀신의 한 종류인가?

 

이 책에서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동아시아불교에서 찬술된 문헌에 이르기까지, 고대인도에서부터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불교의례 설행의 교의적 근간을 이루는 지옥사상과 아귀사상, 그리고 아귀상태로부터의 구제를 위해 실천되는 불교의식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지옥을 다루는 첫 번째 장에서는 불교의 지옥교설에 나타나는 8처 근본지옥과 그에 딸린 수많은 별처지옥들, 그리고 각 지옥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양상을 소개한다. 또한 각 지옥을 돌아다니는 비구의 눈을 빌어 중생이 사후 심판을 거쳐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되는 악업의 원인, 즉 업인(業因)에 대해 치밀하게 관조하고 있다. 문헌 속의 지옥교설에서는 인간이 받게 될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불교문헌 속의 지옥교설에서 악업에 대한 판단의 준거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婬),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로 되어있는 ‘오계(五戒)’이다. 살생과 도둑질, 거짓말, 음행, 음주를 하지 말라고 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계(戒)이다. 오계는 아주 짧은 단어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별로 해석의 범주도 다양하겠지만, 죄업과 그에 따른 과보를 설하고 있는 지옥의 교설들에서는 구체적이고 세세한 항목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기본 윤리를 제시하고 있는 부분들이 드러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불교의 지옥사상과 비교하는 의미에서 타종교의 지옥사상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한다. 이어서 세 번째 장에서는 아귀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불교문헌의 내용 중에서 아귀의 형상과 아귀도의 업인, 그리고 아귀의 고통상에 대해 소개한다. 지옥도와 마찬가지로 아귀도 역시 점차 업인이 확장되어가는 경향을 보여주며, 오계에서부터 사원의 청규, 재법(齋法)에 이르기까지 승가와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규율을 반영하게 된다. 특히 중국에서 찬술된 불교문헌, 이른바 위경에서는 유교적 효의 개념까지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장에서는 이러한 불교의식의 발생배경과 교의적 토대, 발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을 진행한다.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이 사후 지옥도와 아귀도의 고통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행했던 수행법과 의식들이 이 장에서 소개된다. 불교문헌에서 얘기하는 지옥도와 아귀도의 참상이 공포스러울수록 그곳을 피하고자 하는 수행법과 의식도 다양해지고, 그 토대가 되는 교설도 풍부해지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불교에서 형성된 시왕신앙에 이르러 사후의 심판에 대한 교의적 토대가 구성되지만, 그 이전에 인도에서 전입된 한역 경전의 지옥교설에서는 죄의 본성과 그에 따른 과보에 대한 치밀한 관조가 주를 이룬다. 인도에서 전입된 한역 경전들의 지옥 관련 교설을 보면 절대적인 심판자가 있어 전생에 지은 죄업을 판결하고 그에 따른 징벌을 받는 구조라기보다는 자신의 전생 악업에 대해 사후에 그에 상응하는 고통으로 갚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죄업을 고통으로 갚는다는 결과론적 측면에서는 양자의 차이가 없어 보이겠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죄에 대한 ‘참회’와 ‘수행’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인도에서 성립된 불교문헌의 지옥 교설에서는 단지 죄벌에 대한 경고만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이 죄인지, 그것이 왜 죄가 되는지를 끊임없이 각인시키려고 노력했던 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죄의 원인과 과보를 알아야 죄업을 소멸시킬 수 있는 참회의 수행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서술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불교의 지옥도와 아귀도 관련 교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역시 불자들에 대한 지계(持戒)의 권면과 악행에 대한 경고일 것이며, 이는 여타 종교문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도교와 한국 무속에서도 불교의 교의적 프레임을 차용한 지옥도가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옥’은 언제나 인간에게 확인되지 않는 불안을 던지는 개념이기에 그 잠재적 두려움만큼이나, 교의로서의 힘도 강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정토나 천국의 희열보다는 지옥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본성을 계도시키는 기능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후, 불교 포교사들이 민간인들을 교화할 때, 특별히 지옥신앙을 매개로 유교 및 도교와 타협하고 융합하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인도에서 기원한 불교의 지옥사상은 중국에 들어온 후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중국 도교의 태산부군(泰山府君)신앙과 결합하게 된다. 또한 당대(唐代)에 이르러 모든 중생은 사후에 생전의 죄업에 따라 명부의 시왕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시왕신앙’이 성립된다. 이러한 시왕신앙과 더불어 지옥과 관련된 중요한 교의와 실천들이 5-6세기 중국불교에서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지장(地藏)신앙이다. 

아함부 경전에서부터 훨씬 뒤에 나온 대승경전에 이르기까지 지옥교설의 층위는 두터웠고, 서로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가 싶다가도 판이하게 다른 용어와 내용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갈수록 복잡하게 죄악상을 반영하고, 계율과 교의의 그물을 촘촘하게 엮어갔던 흔적이 발견된다. 다시 말해, 지옥교설의 다단한 층위 안에는 인간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계율과 죄악의 개념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이다.

불교문헌의 지옥 교설에서는 중생이 사후 삼악도(三惡道), 즉 지옥이나, 아귀도, 축생도에 떨어지는 경우, 전생의 업인과 후생에 받게 되는 고통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말로 지은 악업의 경우에는 혀나 입 등에 집중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며, 남들에게 음식을 베풀지 않은 것이 업인이 된 경우에는 후생에 부정(不淨)한 것만을 먹게 되거나,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는 식이다. 아귀도의 업인은 주로 인색함과 탐욕이 업인이 되기 때문에 아귀들은 뭔가를 소유하거나, 자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고통을 주로 겪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인도에서의 아귀를 가리키는 peta/preta는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명(無明)과 탐애(貪愛)의 세계에 갇힌 존재를 지칭하기도 한다. 「아귀사경」 등에 따르면,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 이전에도 이미 조상의 망혼을 위해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도의 프레타는 불교에 수용되어 육도 중 아귀도 안에 배속되고, 중국에 와서는 지옥도와 아귀도 중생의 대표가 된다.

불교문헌에서 묘사하는 아귀의 형상은 후대로 갈수록 점점 다양해지고, 더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귀도로 떨어지게 되는 업인이 주로 간탐에 의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생의 악업이 불길로 상징화되면서 늘 불에 타는 모습으로도 묘사된다. 

초기 경전에서부터 아귀에 대한 인식과 죄보, 업인에 관한 교의가 등장하고, 참회기도를 통해 아귀도에 떨어지는 업인을 소멸하고자 하는 예경의식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중국불교에서는 아귀의 구제를 위한 수행법이 참회기도에서 칭명염불, 경전독송, 공덕의 실천 등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수행법들이 자신의 사후에 아귀도에 떨어질 것을 피하기 위한 자행(自行: self-practice)적 요소가 강한 데 비해, 자신이 아닌 선조나 친지들이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구제한다는 교의와 실천 역시 어느 시점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들은 참회나, 염불, 경전독송 등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후손들이 그들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의식(儀式)에까지 교의적 관심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불교에서의 공덕은 승려들을 초청하여 잘 공양함으로써 생겨난 공덕을 망자가 된 조상에게 회향하는 형태였으며, 이러한 공덕의 실천은 동아시아불교에서도 재승(齋僧) 혹은 재공(齋供), 반승(飯僧) 의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동아시아불교의 공덕신앙에서는 그 보시의 대상 범주가 훨씬 확장되는데, 승려에게 공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보시도 공덕의 범주에 수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불교에서는 이미 6세기에 무주고혼들을 위해 음식을 베푸는 시식(施食)을 체계적으로 정비한 의식인 수륙재(水陸齋)가 설행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은 경전 속 교설의 영향으로 인해 늘 자신의 조상이 아귀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아귀사상과 조상숭배의식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 형성되었다. 사후 49일 동안 망자가 중음(中陰) 세계에 있을 때 좋은 곳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행해지는 불교 상장례 의식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전생의 악업이 무거워서 결국 삼악도에 떨어진 존재들의 구제를 위해 행하는 의식이 바로 아귀구제의식, 즉 천도의식이라 할 수 있다. 

아귀의 구제를 위해 행해지는 재의식으로는 먼저 우란분재(盂蘭盆齋)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불보살과 승려에 대한 공양의 공덕으로 조상을 천도하고자 하는 불교의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망혼들에게 직접 음식을 보시하는 시아귀(施餓鬼)의식이나 시식 등을 토대로 하는 재의식의 배경에는 보시를 통한 공덕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생전예수재는 살아있는 동안에 본명전과 과보를 생전에 미리 갚고, 수행을 닦아서 사후의 복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예수재의 배경에는 사후 49일 간 망자가 중음에 머무르며 시왕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시왕신앙과 함께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신앙도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귀구제의식에서 실천되는 수행법인 경전 독송과 참회, 염불, 다라니 주송, 보시 등은 인도에서 전입된 밀교와 중국불교의 천태사상, 정토사상이 서서히 누적된 결과물이며, 중국불교에서 발달한 시왕신앙과 명부신앙, 지장신앙 등이 그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론에 대신하여, 이 책의 네 번째 장에서 제기된 불교의 지옥교설과 그 다양한 천도의식들의 존재 이유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을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도대체 왜 공과 무아의 교의적 토대 위에 세워진 대승불교에서 ‘사후’를 위한 의식들이 실천되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일독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물론 그 답은 읽는 이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김성순 전남대·종교학(동아시아불교)

현재 전남대학교 연구교수이며, 주로 동아시아불교와 종교문화의 비교연구, 그리고 불교의례 분야를 주제로 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 대한불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무형분과)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학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 및 박사를 졸업했다. 주요 저술로는 『동아시아 염불결사의 연구』, 『테마 한국불교 7·9』(공저), 번역서인 『왕생요집(往生要集)』,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사』, 『돈황학대사전』(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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