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기호순번제 대정당에 유리…후보 간 공평성·선거 대표성 제고 위해 개편논의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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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기호순번제 대정당에 유리…후보 간 공평성·선거 대표성 제고 위해 개편논의 필요해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6.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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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S 입법정책보고서]_ 〈투표용지 양식의 불평등성 논란과 쟁점: 정당 특권과 기호순번제 문제〉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위성정당과 함께 화두로 떠오른 것이 ‘의원 파견’에 관한 논쟁이었다. 투표용지에서 앞 기호를 받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위성정당으로 파견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공직선거법」 제150조에 따라 세로형으로 작성된 투표용지에 정당 의석수에 따라 1, 2, 3의 기호를 부여한다. 투표용지 앞 번호를 받기 위한 경쟁의 배경에는 투표용지 상 게재순서와 선거 결과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투표용지의 위쪽에 위치할수록 유권자의 눈에 띄기 쉬우므로 득표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투표용지의 앞 순위에 위치할수록 후보가 얻는 표는 더 많아지는가? 투표용지의 형태와 구성은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에 대하여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경험적 연구, 입법례와 법제사(法制史), 소송사건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투표용지의 구성 방식은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유권자의 후보자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하위단위 선거에서는 그 효과가 크게 증폭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국내외 경험적 연구들의 발견이다. 그 때문에 투표용지 순서를 둘러싼 논쟁과 소송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그 결과 일부 국가에서는 그에 관련된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투표용지 후보자 게재순위와 관련된 위헌소송이 총 8차례 제기되었는데, 다수의석 정당에 대한 우선권을 인정한 1996년 헌법재판소의 첫 결정 이래 지금까지 모든 판결에서 거의 동일한 결정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국회에서 투표용지의 후보자 게재순위와 관련한 입법정책적 시도들이 있었고, 그 결과 문제점을 일부 개선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큰 정당에 유리하게 편재해 있는 투표용지의 순서구조를 시정하는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투표용지 후보자 게재순위에 관한 활발한 입법정책적 논의를 촉진함으로써 선거의 평등성과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이라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를 조망하기 위해 「투표용지 양식의 불평등성 논란과 쟁점: 정당 특권과 기호순번제 문제」라는 제목의 『NARS 입법·정책』을 5월 26일(목) 발간했다(작성자: 허석재·송진미 정치의회팀 입법조사관).

보고서는 투표용지의 구성과 유형을 분류한 뒤, 주요 국가에서 사용하는 투표용지 제도를 살펴보고, 이어 우리나라 투표용지 기호순번 배정 규정의 입법 연혁을 개관하면서, 그동안 제출된 개정안을 살펴봤다. 그리고 투표용지 순서효과에 대한 8차례의 헌법소원 판례와 미국 법원의 판례를 조사하여 비교·검토한 다음 마지막으로 분석 결과를 요약하고 함의를 도출했다.

 

【보고서 요약】


투표용지의 내용과 구성은 국가와 선거단위마다 다양하다. 투표용지는 유권자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모양과 배치에 따라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외 실증적 연구들에 의하면, 기호배정 및 후보자의 배치순서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며, 투표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하위단위 선거일수록 그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 외에도 지역구선거 투표용지를 보면 기호와 정당명 뒤에 후보자명이 표시되어 있어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지역구선거에서조차 강한 정당 신호효과가 작용하도록 투표용지가 구조화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국회의석수 순에 따라 대정당들에게 부여되는 전국 통일 기호배정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나라마다 후보자 게재순위는 추첨, 성(姓)의 알파벳순, 순환배정 등 다양한 기준에 따르고 있으며, 순서만 배치하고 기호는 배정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우리나라 후보자 기호배정제도는 정치 상황 및 권력관계에 따라 수차례 바뀌어 왔고, 현행 정당의석수 순 제도는 대정당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헌의회선거부터 추첨방식을 사용했으나, 현행과 같이 의석수 순에 따라 일부 정당에게 전국 통일 기호를 배정하는 방식은 1969년 공화·신민 양당 간 타협으로 처음 도입되었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투표용지 양식은 정당표시에 의한 신호효과, 아라비아 숫자 배정에 따른 기호효과, 게재순위에 따른 순서효과 등 3중의 효과로 인해 대정당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평가된다.

투표용지의 구성 및 순서효과는 유권자의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선호표시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으며, 나아가 평등선거의 원칙(헌법 제41조제1항, 제 67조제1항) 및 선거운동의 기회균등 보장(헌법 제116조제1항) 등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투표용지 게재순위에 대해 합헌으로 결정해 온 반면, 미국 판례에서는 현직자나 다수정당에게 유리한 방식을 위헌으로 결정한 사례가 다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8차례 결정을 통해 후순위 후보자에게 발생하는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정당제도의 헌법적 존재의의에 비추어 현행 투표용지 게재방식을 합리적인 기준에 의거하고 있다고 평가해 왔다.

하지만 정당제도의 존재의의에 대한 보다 폭넓은 해석이 요구되고 있으며, 선거결과의 왜곡 가능성과 관련하여 평등선거 및 선거운동 기회균등의 헌법적 가치에 대해 보다 면밀한 분석과 검토가 필요하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 제기된 관련 소송을 검토해보면, 현직자나 다수의석 정당의 추천 후보를 상위배정하는 방식이 후순위 후보 지지자의 투표권 침해 혹은 후보자의 기본권 침해 등의 이유로 위헌결정한 사례가 여러 건 있다.

해외 입법례와 우리 법제사를 통해서 볼 때, 헌재가 현행 투표용지 양식을 ‘외국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방식’이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판시한 것(2006헌마364등)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정당제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기준이 대정당에게만 혜택을 주어야 할 명분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지금까지 현행 투표용지 제도에 대한 여러 개편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2010년에 이명박 정부 사회통합위원회가 ‘지역주의 문제의 제도적 극복 전략’의 일환으로 기호순번제 폐지를 국회에 제안한 바 있다. 현재의 규정은 투표용지 상 순서에 따른 프리미엄뿐 아니라 기호까지 붙여서 대정당에게 특혜를 주게 되므로 기호순번제를 폐지하고 추첨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기호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기초의원 중선거구제에 한해 교육감 선거와 같은 추첨제나 정당공천의 폐지, 또는 원형투표용지 도입 등을 제안한 바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후보자 이름을 직접 게재하는 자서식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선거를 통해 표출되는 유권자의 선호가 최대한 의석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표성 제고를 위해 국회·지방의회의 군소정당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으며, 투표용지 구성과 후보자 게재순위 개편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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