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철학으로 읽는 현대 정치 메커니즘 … 정치는 정서의 변용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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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철학으로 읽는 현대 정치 메커니즘 … 정치는 정서의 변용 기술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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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정치적 정서 | 프레데리크 로르동 지음 | 전경훈 옮김 | 꿈꾼문고 | 240쪽

 

정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또한 정치의 윤리, 다시 말해 좋은 정치 또는 나쁜 정치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17세기의 천재 철학자 스피노자 철학으로 현재 정치 메커니즘을 읽는 책이다. 저자는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 따위의 전통적 이원론을 전복하고 변용과 정서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피노자 철학에 기반하여 정치는 ‘변용의 기술’이라 주장한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정서는 변용에 따르는 결과이자 변용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정서의 연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치는 인간의 어떤 행동을, 즉 어떤 결과를 산출하려는 목적을 갖고 상대의 정서에 개입하는 것, 상대의 정서를 가공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인간의 모든 육체적-정신적 활동의 결과이자 원인인 정서를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변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스피노자의 개념을 가져오자면, 어떠한 정치적 활동이 코나투스, 즉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긍정적이어서 기쁨의 정서를 산출한다면 좋은 변용이고 반대로 부정적이어서 슬픔의 정서를 산출한다면 나쁜 변용이다. 그러므로 좋은 정치는 상대에게, 대중에게, 국민에게 좋은 변용을, 나쁜 정치는 나쁜 변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의 질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질서, 인간의 정치 또한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하나의 활동이 사람마다 그 기질(인게니움 또는 들뢰즈의 ‘주름’)에 따라, 심지어 같은 사람에게서도 처한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정서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는 ‘변용의 기술’,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정서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정치는 미디어를 이용하고 전문가를 동원한다. 정치권력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서 공통 정서를 산출하는 것, 즉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서를 ‘조작’한다는 데에 있다. 정서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무지해야 한다. 진실을 가리고 은폐해서 볼 수 없게 하거나 ‘거짓된 진실’을 보게 해야 한다. 시선을 돌려 엉뚱한 것을 보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중에게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하는 방향으로 변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때로 공포로써 군림하기도 한다. 전체주의 국가처럼 직접적으로 대중의 공포를 유발할 수도 있고, 테러리즘처럼 제3의 실체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대중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을 공포 속에 살게 함으로써, 즉 슬픔의 정서로 몰아넣음으로써 권력은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그렇다면 개인들은 자신의 코나투스에 반하는, 나쁜 변용을 일으키는 정치, 정치권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는 ‘거시적 구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거시적 정치 행위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분산된 개인들의 ‘윤리적 저항’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전체 구조를 변형시키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격분’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합적-정치적 투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권력이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정서의 모방이라는 기제가 작동하고, 공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반드시 눈으로 직접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심상 속에서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역설하는 ‘논리적 봉기’의 핵심이다.

논리적 봉기는 지적인 표상에서 비롯된다. 지적인 표상은 단순한 기호(말, 글)만으로도 강렬한 심상을 상기시켜 변용을 일으키고, 그 심상의 대상 혹은 상황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말한다. “이제 권력은 ‘논리적 봉기’, 즉 도덕적 격분의 논리에 의한 봉기, 요컨대 지적인 봉기에 좌우되는 것이다. 지적인 표상은 냉정한 격분을 보장한다. 냉정한 격분이 때 이르게 촉발된다면, 권력을 견제하기에도 적합하고, 권력을 남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바닥에서부터 진지하게 재검토하도록 만들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만약 스피노자가 말하듯이 사람들의 삶이 평화와 자유 말고 또 다른 최종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적인 표상의 발전은 그 목적을 위한 가장 덜 나쁜 담보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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