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고통은 동질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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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고통은 동질적인가?
  • 임준 서울시립대·예방의학
  • 승인 2022.06.12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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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랜 기간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밀어 넣은 코로나19의 위험이 사라지고 있다. 참으로 오래 간만에 마스크 없이 야외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 학교와 직장이 활기를 되찾았고, 단절되었던 사회적 관계도 서서히 복원되고 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일이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되찾은 듯하다. 참으로 소중한 일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코로나19의 고통은 모든 국민에게 동질적인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에게 결정타를 안겨주었다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코로나19로 특수를 누린 분야에 발 빠르게 진출한 소상공인과 추가적인 자본 투자의 여력이 있었던 소상공인은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대다수 소상공인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 안 되는 보증금마저 까먹고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소상공인을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소상공인일수록 고통의 크기가 컸다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업종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불안을 제외하면 먹고 사는 문제까지 나락으로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대기업 노동자에게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중소기업, 특히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달랐다.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허다했고, 배달 등 타 업종으로 전환이 쉽지 않은 취약한 노동자의 경우는 생존의 위협 속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코로나19는 특히 노인에게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인조차도 동일한 위험에 처해 있었던 건 아니다. 취약한 조건에 있는 노인일수록 코로나19에 걸릴 가능성도 크고 발병 후 회복이 더딜 가능성이 컸다. 시설이 열악한 요양원 등 집단 시설에 거주한 노인에게서 사망이 많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 소득계층과 지역에 따라 코로나19의 치명률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는 널리 보고되고 있다. 초기 대규모 집단 발병으로 몸살을 알았던 대구 경북 지역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구 지역보다 경북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이 치료받을 곳이 없어 훨씬 애를 먹었다는 것은 오래 전에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고, 취약한 집단일수록 그 고통의 크기가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러한 고통과 함께 소중한 가치도 우리 사회에 일깨워주었다. 세계인권선언과 헌법 조문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권리인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와 사회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모든 보건의료서비스를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필수의료서비스는 계층, 지역, 인종과 상관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사실 생명과 안전에 관한 필수의료서비스가 감염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응급, 외상, 심뇌혈관질환, 중환자 등 많은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서비스의 접근이 취약한 노인, 장애인, 어린이에 대한 건강 문제 또한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사회구조적 불평등이 보건의료 문제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근원적으로 구조적 불평등이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하여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조차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차별적인 고통을 받는다면 다른 분야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울어진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생하는 건강 문제와 기본적인 필수의료 인프라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발생하는 고통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한 고통은 가장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최정점의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례적으로 적용된다. 

코로나19 과정에서 공공병원의 부재와 필수의료 인프라의 부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공공병원 확충,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없을 정도다. 의료서비스의 수혜 대상을 넘어서서 권리 주체로서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제 인류의 생존에 새로운 위험으로 등장한 신종 감염병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성찰하는 계기로 확장해야 한다. 보편적 권리는 여건이 좋아지면 보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루어도 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 사회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필수의료서비스를 동등하게 받을 수 없는 차별적 구조를 줄이기 위해 지금 바로 모든 노력을 기울일 때이다. 


임준 서울시립대·예방의학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가천대 의대 교수, 인천광역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의료혁명: 2015, 다시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공저), 『의학교육의 개혁과 미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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