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의 수용과 극복 … 중국과 한국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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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의 수용과 극복 … 중국과 한국 ⑨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2.06.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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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의 중국철학은 찬란했다. 인도나 그리스의 철학보다 내실을 더 잘 갖추었다. 압축된 서술로 많은 말을 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 유산의 공동 활용에 참여해 한국도 철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불교철학의 충격을 받고 이룩한 신유학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 중국과 대등한 수준의 선진이 되고자 했다. 

월남이나 일본에는 사상사라고 하는 것만 있는데, 한국에는 철학사가 있다. 철학사는 문명사인 것이 예사인데, 한국은 철학사를 국가의 영역에서 이룩했다. 철학 알기를 열심히 한 결과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없다. 옛 사람의 말을 다시 쓰면 의양(依樣)과 자득(自得), 오늘날의 용어로는 수입학과 창조학, 두 가지 철학이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논란으로 한국철학사가 이루어졌다.      

이학(理學) 또는 이기(理氣)이원론 철학은 수입학이다. 중국 송대의 철학을 수입해 가공한 것이다. 여러 선학 가운데 주희(朱熹)를 특히 높이 평가해 주자(朱子)라고 일컬으며 배우고 따르려고 했다. 이해를 철저하게 하려고 하니 미진한 논의가 발견되어, 깊이 탐구하다가 논쟁이 거듭 일어났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은 소종래가 달라 포개지지 않는다. 주자가 좋은 마음은 사단이고, 좋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은 칠정이라고 하는 집을 지으려고 하다가 미완에 그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황(李滉)은 미완의 과제를 물려받아 완성하는 것이 주자를 돈독하게 받들고 이념 정립을 확고하게 하는 소임이라고 여겼다. 이(理)와 기(氣)를 사단과 칠정과 연결시키는 난공사를 하다가 결말에 이르지 못했다.

이이(李珥)는 용어를 사단과 칠정에서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으로 바꾸어, 동기론에서 결과론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좋은 마음인 도심과 좋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인 인심은 둘 다 기(氣)에서 나왔으며, 마음이 도의를 위하면 도심이고, 입이나 몸을 위하면 인심이라고 했다. 어느 쪽인가는 결과를 보고 판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황의 이원론적 주리론(主理論)과는 다른 이원론적 주기론(主氣論)을 정립해, 이이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원론적 주기론이란 지금 하는 말이고, 이이는 이통기국(理通氣局)의 이치를 분명하게 하려고 했다. 이것이 다시 문제를 낳아, ‘이통’을 중요시하는 쪽과 ‘기국’을 중요시하는 쪽이 인물성(人物性) 동이(同異) 논쟁을 벌였다.

이와 같이 전개된 이학 또는 이기이원론과는 다른 흐름을 이룬, 기학(氣學) 또는 기(氣)일원론의 철학은 자생의 창조학이었다. 구비철학의 저류를 이규보(李奎報)가 <문조물>(問造物)에서 “物自生自化”(물은 스스로 생기고 변한다)고 한 데서 드러냈다. 이 말을 조물주가 스스로 한다고 하고, 물 자체의 생성과 변화를 관장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나 원리를 부정했다. 

이학(理學)이 수입되자, 반론을 제기하려고 기학(氣學)이 한층 분명한 논리를 갖추었다. 김시습(金時習)은 <태극설>(太極說)에서 “太極陰陽也 陰陽太極也”(태극은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이다)라고 했다. 태극은 이(理)이고 음양은 기(氣)라고 하는 이원론을 부인하고, 기는 하나이면서 둘이어서 태극이기도 하고 음양이기도 하다고 했다.

기일원론의 원천이랄 것이 중국에도 있었다. 북송의 장재(張載)는 <서명>(西銘)에서 “一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하나가 두 몸을 가진 것이 ‘기’이다. 하나이므로 ‘신’이고, 둘이므로 달라진다)고 했다. 하나인 기가 둘이기도 하므로 신령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로 기일원론에 접근했으나. 개념이 모호하고 논의가 미진했다. 

서경덕(徐敬德)은 김시습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장재를 넘어서서 기일원론을 분명하게 했다. <원이기>(原理氣)에서 “一便涵二 一不得不生二 二自能生克 生則克 克則生”(하나인 ‘기’가 둘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생’하고 ‘극’하는 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기일원론이 음양론에 머무르지 않고 생극론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이학 또는 이기이원론은, 차등론을 합리화하는 중세의 일반적인 사고이다. 중국에서 하던 그 논의를 가져와 더욱 철저하게 한 것이 한국의 기여이다. 기학 또는 기일원론은 대등론의 근거가 되는 보편적인 사고이지만, 억눌린 상태에 있는 것이 예사였다. 중국에서는 차등론의 위세가 너무 커서 대등론을 살려내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구비철학 창조가 활성화되어 차등론의 억눌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민중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비판적 지식인들이 이것을 받아들여 철학으로 가다듬었다. 그 선두에 선 서경덕이 이원론을 부정하고 일원론을 정립한 것이 유럽의 스피노자(Spinoza)보다 140년쯤 앞섰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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