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공감하고 악을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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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공감하고 악을 이해하자’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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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우리 안의 악마: 어두운 인간 본성에 관한 도발적인 탐구 | 줄리아 쇼 지음 | 김성훈 옮김 | 현암사 | 352쪽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면을 과학적으로 파헤침과 동시에 사회·문화적으로 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면밀히 살핌으로써 악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악하다고 여겨왔는지, 그 판단에 오류는 없는지 심도 있게 탐구하는 책이다.

니체는 악(惡)이란 어떤 사람, 물체, 행위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주관적 경험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무언가를 악하다고 생각할 때 그 대상은 비로소 악해진다는 의미다. 범죄 심리학자이자 ‘거짓 기억’ 전문가인 저자 줄리아 쇼 박사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악이란 ‘정상’과 유리된 이상한 것,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 문화와 뿌리 깊게 연관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언가에 악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순간 악은 만들어진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냥 그 자체일 뿐이다.”

매일같이 접하는 범죄 뉴스, 누군가를 사지로 몰아넣는 악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사, 이기적인 친구, 말이 통하지 않는 가족 사이에서 우리가 내뱉는 말들. 그런데 나쁜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렸다면 그를 마냥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서부터 악일까? 혹시 나는 악한 사람일까?

저자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악해지지 않기 위해 더더욱 악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인간은 악해지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끔찍한 일, 나쁜 사람, 난감한 상황을 굳이 상상해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저자는 이런 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것보다 끄집어내 제대로 들여다보며 터놓고 논의하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훨씬 나은 길을 열어준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범주화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빈번히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내린 사이코패스 성향과 살인 충동,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각종 사이버범죄, 변태 취급받기 십상인 이상성욕, 특히 심각하게 다룰 만한 문제인 소아성애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범죄와 이상행동 외에도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공격성, 군중 심리, 소름 끼침(creepy), 편견과 차별, 불의에 대한 침묵 등 ‘악’을 불러일으키지만 특별한 악인이 행사한다고 보기 어려운 보편적인 현상과 주제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룬다.

저자는 각종 범죄 행동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메커니즘을 밝힐 때, 우선 도덕적 가치 판단은 배제한 상태에서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근간으로 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사실 관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악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을 따라가며 독자는 서둘러 옳고 그름을 재단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이런 것들은 논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악에 대해 잘못 고착된 우리의 관점을 깨고자 다양한 실험들과 다소 충격적인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이처럼 저자는 과학적, 철학적 논쟁들 가운데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골라 질문을 던지며 학계의 연구, 역사적 사건, 대중문화 사례 및 생활 속 일화를 활용하여 악의 신경과학, 살인 충동의 심리학과 같은 무거운 개념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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