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고전 명작 속에 숨어있는 인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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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고전 명작 속에 숨어있는 인종주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05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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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소설, 인종으로 읽다 | 허정애 지음 | 역락 | 192쪽

 

이 책은 18, 19세기 영국의 고전 명작으로 손꼽히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를 비롯하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1847),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1847), 그리고 19세기 말의 대표적인 탐정 소설인 아서 코난 도일의 「네 사람의 서명」(1890), 그리고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고딕소설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를 인종의 관점에서 독자들과 같이 읽어봄으로써 작품 속에 숨어있는 인종주의를 포착해보고자 한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해시태그로 인종적 평등의 문제가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이슈로 새삼 강조되는 21세기에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상호 공존의 인문학을 모색하기 위해 인종주의를 드러내는 고전 명작에 대해서는 기존의 평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객관적인 비판과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18, 19세기 영국 소설 중에는 전 세계인들이 유년 시절부터 즐겨 읽기 시작하는 고전 명작으로서 자리매김해 온 작품들이 많다. 『로빈슨 크루소』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청소년의 도전과 모험을 북돋우는 강한 남성 주인공이나 『제인 에어』의 제인 에어처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 저항하여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강한 여성 주인공 등 18, 19세기 영국 소설의 문학성과 등장인물의 매력은 높이 평가되어왔다. 이러한 평가의 이면에는 1640년대 이후 해외 식민지 확장을 본격화해 온 영국인들이 영국 국민문화 만들기를 통해 식민지에 영국 문화의 확산과 전파를 위해 노력해 온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른바 고전 명작들을 영국인이 아닌 독자가 인종의 관점에서 섬세한 읽기를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위 문명인이며 백인이라고 하는 로빈슨 크루소는 자신이 표류한 섬에서 마주친 프라이데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식인종으로 취급하여 칼과 총을 무기로 노예로 삼아 노동을 착취하는 야만성을 보인다. 영국인 제인과 로체스터의 서술로 인해 목소리가 은폐된 결과 미친 여인으로 규정되어 쏜필드의 다락방에 십 년 이상 갇혀 있는 식민지 자메이카 출신의 크레올 여성인 버싸는 인간이 아닌 동물, 괴물, 흡혈귀로 묘사되는 등 인종주의의 희생자임이 드러난다. 인종주의가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작가도 인종적 시각에서 볼 때는 미세한 한계를 드러낸다.

이처럼 18, 19세기 영국 소설은 인종의 관점에서 읽을 때 백인이 아닌 타인종을 억압하고, 배척하는 당대 영국인의 인종주의, 타인종이나 타민족의 열등성을 대비시켜 영국인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영국 민족주의, 그리고 열등하고 미개한 야만인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사명으로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침탈을 당연시하는 제국주의의 당위성을 전파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인종주의는 영 제국주의가 식민 지배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동원하는 기제 중의 하나였다. 제국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즉, 우월한 ‘우리’와 열등한 ‘타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차이가 필요했고, 그 차이를 가장 손쉽게 드러내는 방법을 인종 간의 신체적 차이에 주목하는 생물학적 인종주의에서 찾았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타자의 신체를 괴물, 동물, 식인종, 흡혈귀 등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18, 19세기에 영국에 만연한 이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백인이 아닌 식민지의 열등한 ‘타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제국주의 담론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당대 영국의 인종주의 담론은 타인종과 피를 섞는 인종 간 성행위나 혼혈결혼에 대해서도 당연히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영국인의 깨끗하고 순수한 피가 식민지 출신의 더러운 외국인의 피에 의해 오염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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