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민관의 탄생과 소명과 운명에 관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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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관의 탄생과 소명과 운명에 관한 통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05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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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공화정 중기의 호민관: 공화 정치의 조정자 | 김경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464쪽

 

평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혁명 지도자’로 선출된 정무관인 호민관(護民官, tribunus plebis). 이 책은 가장 안정적으로 정체(政體)가 운영되었던 로마 공화정 중기 호민관의 역할과 성격을 면밀히 조명하면서 로마 공화정의 실체를 현실감 있게 재구성해낸 역사 연구서다.

저자는 서양 고대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정무관인 호민관이 로마 공화정의 ‘적극적인 조정자’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껏 호민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과두적 원로원의 도구나 평민의 대변자 정도로 지극히 단순했다. 때문에 여러 사료에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호민관의 다양한 활동들을 충분히 해명할 수 없었다.

이 책은 호민관에 관한 이러한 기존의 평가에 문제를 제기하고, 원로원과 인민 사이에서 권력과 의지의 조화를 유지시켰던 호민관의 역할을 재규명함으로써,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법적·헌정적 운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치 환경이 급변하는 21세기에 고대 로마의 공화정체에 대한 논의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유럽이나 미국에서 등장한 공화국의 모델이 바로 로마의 공화정이었고, 대한민국 정부 형태의 수립에도 이 모델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체제 논의에서 반성적 지점―정치 과정이 행정 관료들과 부유한 시민들에 의해 지배―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호민관의 설치가 제안되고 있다는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민관은 다른 고대 도시국가들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로마만의 특별한 정무관이다. 초창기 평민만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혁명 지도자’로 선출되었던 호민관은 끝내 로마의 공식 정무관으로 발전하면서 로마 정체의 한 부분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처음에 호민관의 권한은 귀족 정무관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평민 개개인을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공화정의 발전과 함께 호민관의 권한과 역할도 변화를 경험하였다. 로마의 다른 정무관과 달리 권한이나 역할이 특정되지 않은 호민관은 입법·사법·행정 등 거의 전 영역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평민으로만 구성된 평민회(concilium plebis)를 소집하고 주재하여 법을 제정하고, 사법적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정무관이 바로 호민관이었다. 심지어 원로원과 콘술(consul) 등의 공적 활동에 비토권을 행사함으로써, 정부의 운영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500년 동안 가장 독특하고도 중요한 정무관으로서 호민관은 로마 정체의 진화 및 작동과 밀착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대의 역사가들은 여전히 호민관 개인에 대한 파편적인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물론 호민관은 다른 정무관들과 달리 ‘명령권(imperium, 전쟁에서 군대를 지휘하거나 법을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나 특별한 징표를 갖고 있지 않았고, 이른바 ‘관직의 사다리(cursus honorum)’ 밖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정치 입문자가 반드시 역임해야 하는 직책도 아니었다. 직급 상 집정관 및 법무관보다 하위에 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과소평가의 끝엔 호민관을 원로원의 ‘정치적 도구’나 원로원에 대항하는 ‘평민의 대변자’로 한정하는, 서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이러한 평가 속에서 호민관은 정치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통일된 정치체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고대 로마의 정부에서는 상위 정무관이 하위 정무관에게 정책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못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공화정기 정치가들이 역임할 수 있는 공직의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음을 고려한다면, 호민관을 단순하게 하급 정무관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키케로(Cicero)도 지적하고 있듯이, 호민관의 수는 10명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립적인 정무관이었다. 또 호민관은 결코 원로원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원로원을 소집·주재하고 그 토론에도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호민관은 원로원, 인민 또는 개인적인 정치가들을 대신해서 자신들의 고유 권한을 사용했던 정무관이라기보다, 콘술, 원로원, 인민 사이의 정치적 대화를 중재하고 촉진하는 정무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로마 정체의 세 부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원로원의 의지에 협조하거나 개별 정치가들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정무관이나 원로원과 충돌하면서 평민의 이익을 위해 힘썼다. 정무관, 원로원, 평민회 등 완전하지 않는 공화정체의 제반 요소들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조정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기원전 133년, 결정적인 한 사건으로 인해, 호민관이 로마 정체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로 끌어낼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후 호민관직은 정치적 야심가(또는 집단)나 정치적으로 무능한 원로원이 자신들의 정략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로 빠르게 전락하였다. 호민관이 원로원과 평민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실패했던 저 역사적 사건이 로마 공화정의 몰락에서 첫 번째 단계를 촉발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로마 공화정 중기 호민관에 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을 시도한다. 당대의 호민관들은 자신들의 권한―비토권, 입법권, 사법권―을 근거로, 정치적 소추, 해외정책, 시민권 문제, 토지 문제, 종교·사회적 이슈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책은 호민관의 탄생에서부터 그 직분이 로마 정체에 점진적으로 수용되는 과정, 소명과 활약 그리고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제정(帝政)의 시작을 초래한 이들의 운명까지 체계적으로 통사화하면서, 그 역할과 권한을 세분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해나간다. 아울러 공화정(공화국)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정갈한 보론을 보강해 민주시민사회의 토대 형성 과정을 거시적으로 조감해볼 수 있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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