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야우(竹島夜雨)의 승경’…부산 기장군 연화리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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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야우(竹島夜雨)의 승경’…부산 기장군 연화리 죽도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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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부산 기장군 연화리 죽도

 

죽도 주위의 갯바위지대는 비교적 평평하고 넓다. 대변항 외항방파제의 월드컵기념등대와 뜬 방파제의 마징가Z등대가 멀지않다. 

천지할매, 청해할매, 연화할매, 손큰할매, 조씨할매, 문씨할매, 수보할매, 박씨할매. 그 바닷가 마을은 할매들의 마을이다. 눈 크게 뜨고 기웃거려보면, 겸손하게 물러서있는 만성 아줌마와 등대 이모와 같은 어린 여인들도 보인다. 그녀들은 이른 아침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한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건져 올린 소금 맛 나는 것들을 늘여놓고 오후 내내 손님을 맞이한다. 뭍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바다에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할매들이 어린 여인이었을 때 그녀들의 쉼터가 되어 주었다는 섬이다. 이 마을은 연화리(蓮花里), 저 섬은 죽도(竹島)다. 

 

연화리 죽도. 기장 8경중 제 2경으로 부산 기장의 유일한 섬이다. <br>
                                    연화리 죽도. 기장 8경중 제 2경으로 부산 기장의 유일한 섬이다. 

마을 뒷산이 연화봉(蓮花峯)이라 마을 이름은 연화리다. 연꽃무늬의 비단 폭 같은 산봉우리라 한다. 연화리는 조선 후기까지 정식 동리명이 없었고 기장의 아홉 포구 중 가장 큰 포구였던 무지포(無知浦, 無只浦)에 속한 촌락이었다. 연화리라는 이름은 1914년에 생겼다. 행정구역 통폐합 때다. 일제강점기 때까지 마을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지금 연화리에 빼곡한 것은 횟집들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해녀촌이라 부른다. 

 

                               연화리 해녀촌의 천막 가겟집들. 바닷가에 수십 채가 늘어서 있다. 

 

부산은 제주에 이어 해녀들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다. 자연적 요건과 대도시의 소비성까지 갖췄다. 부산은 1960-70년대에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호남 지역과 제주 지역 사람들이 부산으로 집단 이주해왔다고 한다. 특히 제주 사람들의 이주 규모가 컸고 그들은 부산의 해안 지역에 자리 잡게 된다. 연화리도 그 중 한곳으로 이곳 해녀들 역시 제주출신이거나 그들의 2세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서 물질을 배운 현지 해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반세기가 지나 할매가 되었지만 이곳의 해녀들은 바다가 허락하는 한 매일 새벽녘 물질에 나선다.

 

                                  연화리 해녀촌의 천막 가겟집들. 바닷가에 수십 채가 늘어서 있다.
               연죽교에서 본 연화리 해녀촌의 천막가겟집. 가게 안에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구조다. 

해안에는 수십 개의 천막가게가 늘어서 있다. 조막만한 가겟집들마다 할매들의 소박한 간판이 가슴을 딱 열고 걸려있다. 입구를 장식하는 것은 빨간 고무대야다. 성게, 멍게, 개불, 참소라, 갯고둥, 전복, 낙지 등이 가득 들었다. 연화리는 기장미역, 기장붕장어로도 이름 나 있지만 해녀들이 오전에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진하게 끓여낸 전복죽이 가장 유명하다.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죽 끓이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푸르스름한 빛깔의 전복죽은 부산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풍미를 자랑한다. 가겟집 내부는 대부분 장판 바닥이다. 바람과 투닥거리는 비닐 창문 너머로 먼 등대를 보며 잠시 기다리면 소반 가득 바다가 찬다. 과한 호객은 없었다. 소음도 풍악도 없었고, 거리는 차라리 조용하다 할만 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활기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찰나도 쉬지 않는 바닷가 여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게 된다. 그녀들은 몸 전체로 산다. 

 

             죽도는 철조망과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갯바위 지대를 통해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죽도는 거북이 등 모양으로 연화리 앞바다에 떠 있다. 대나무가 무성했다는 죽도는 기장군의 유일한 섬이고, 기장 팔경 중 2경이다. 예부터 선비들이 즐겨 찾아 시를 읊고 가무를 즐겼던 곳이었고 ‘밤비가 나리고 바람에 댓잎이 살랑거림’을 일러 ‘죽도야우(竹島夜雨)의 승경’이라 했다. 반세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타고 섬을 자유로이 드나들었다. 해녀들의 쉼터였고 마을 아이들이 뛰어 놀던 놀이터였으며 학생들이 소풍을 오거나 그림을 그리러 찾아들던 곳이었다. 그때 섬 안에는 조그마한 암자와 샘이 있었다고 한다. 구기장군향토지(1992)에 ‘죽도에는 옥녀당(玉女堂)이 있어 정월 초하루, 시월 초하루에는 마을에서 당제를 올렸으나 그 유래는 알 수 없다’는 기록이 있다.

 

                                  죽도에서 본 연화리. 오른쪽 다리가 육지와 죽도를 잇는 연죽교다. 
           죽도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지금은 대나무보다 동백나무가 우세해 동백섬이라고도 불린다.  

어느 날 죽도는 법인 종교 단체의 소유가 되었고 이제는 ‘신앙촌 별장’이라 불린다. 외곽은 철조망과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꽉 오므려 쥔 주먹처럼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근래에는 육지와 섬을 잇는 연죽교를 놓아 섬 주위의 갯바위 지대를 거닐 수 있게 해 두었다. 다리를 건너면 북쪽으로 대변항과 뒤편의 봉대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숲은 섬의 중앙부에 조금 남아 있다. 동백나무가 우세해 어떤 이들은 동백섬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언뜻 보기에는 그저 밀림이다. 그러나 나무들은 매우 건강하고 숲은 진창처럼 농도가 짙은 청록색이다. 옥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숲이다. 샘은 여전히 저 속에 있을 게다. 바닷물이 아닌 순수한 자연생수가 솟는다는 샘. 몇 채의 집이 보이지만 사람의 자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가 엄청난 고요 속에 묻혀 꼼짝도 않은 채로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죽도의 동남쪽 갯바위 지대. 멀리 왼쪽부터 월드컵기념등대, 마징가Z등대, 태권V등대. 

갯바위로 내려선다. 섬 주변의 갯바위 지대는 넓고 비교적 평탄하다. 2015년 경 부산시는 연화리 앞바다에 인공 섬을 만들어 해양레포츠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녀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우리의 일자리를 건들지 말라.’ 인공 섬 건설은 무산되었고 연화리 앞바다는 여전히 그녀들의 밭이다. 섬의 동남쪽으로 나아가자 대변항의 외항방파제에 서 있는 붉은 월드컵기념등대가 보인다. 해상의 뜬 방파제에 서 있는 하얀색의 마징가Z등대와 노란색의 태권V등대도 한눈에 보인다. 마치 한강 밤섬에 표류한 김씨처럼 ‘안녕’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바다에 홀려있던 낚시꾼이 갑자기 휙 뒤돌아본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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