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범,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푸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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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범,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푸순의 기적'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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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 |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452쪽
 

이 책은 마오쩌둥 신중국의 일본인 전범 처리 문제를 다뤘다. 1964년 4월 귀국한 마지막 전범 3명 중 1명인 사이토 요시오 전 만주국 헌병훈련처 처장은 훗날 수기에서 “중국대륙에서 전쟁범죄를 거듭한 12년 4개월 동안 ‘귀신’이었다면, 패전 후 복역 기간을 거쳐 마침내 ‘선한 사람(善人)’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밝혔다. 중국은 어떻게 일본인 전범의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만주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돼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전전하다, 1950년 7월 중국에 인도돼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중국 대륙에서 침략전쟁의 선봉에 섰던 군인들, 괴뢰 만주국에서 수탈정책 입안과 항일세력 탄압 등 치안 헌병 정보 분야에 종사하던 일본인 전범이다.

1,000명에 가까운 이들 외에도 패전 후 중국 산시성에 남아 국공내전에서 팔로군에 저항하다 체포된 전범들도 있었다. 이들은 타이위안전범관리소에 수감됐다. 뼛속까지 황국신민 정신과 군국주의 교육에 물들었던 일본인 전범들은 중국의 전범 개조정책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이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국의 일관된 정책과 처우에 감복해 엄청난 고뇌를 거쳐 서서히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일본으로 귀환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죄행을 반성하고 침략전쟁의 진실을 증언하며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섰다. 이 책은 유례없는 중국의 전범 처리 방식이 어떻게 일본인 전범들을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바꾸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범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기록을 통해 민간인 학살, 약탈과 방화, 생체해부, 전시 성폭행, 세균전 실험 등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석방된 이들이 귀국 후 '중국귀환자연락회'(약칭 중귀련) 단체를 결성해 어떻게 반전평화를 위한 외길을 걸었는지, 생의 마지막까지 일본의 수구 우익진영과 어떻게 정면으로 맞서 싸워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중귀련 회원들은 일본 곳곳에서 전쟁범죄를 증언하는 활동을 이어갔지만, 고령으로 직접 활동할 수 없게 되자 2002년 4월 공식 해체됐다. 이와 동시에 ‘푸순의 기적을 이어가는 모임’이 구성됐다. 시민단체 활동가, 학자, 언론인, 대학생, 일반 시민 등이 참여한 이 모임은 푸순전범관리소에서 옛 전범이 인간의 양심을 되찾고 갱생한 것을 ‘기적’으로 평가하고, 인류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푸순전범관리소에서 전범 개조의 실무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조선족 3인(김원, 오호연, 최인걸)과 만주국 총리 장징후이의 아들(장멍스)이었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이들은 전범들과 솔직한 대화를 끈질기게 나누면서 신뢰를 얻었다. 김원, 오호연 등은 일본 패전 후 재개된 국공내전에서 동북민주연군(인민해방군 전신)에 가담한 공안군 장교였고, 장멍스는 1940년대 일본 유학 시절 항일유학생비밀 조직에 참여했다.

전범들이 귀국 후 낸 수기에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화를 받았다는 회고담이 자주 눈에 띈다. 한 사병은 “중국의 인도주의 대우에 일본인 전범이 시대에 뒤떨어진 파시즘의 외투를 벗어던진 것”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푸순전범관리소 소장을 맡았던 김원 역시 ‘전범 개조가 나 스스로를 개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훗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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