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 그들의 진귀한 비밀을 캐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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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 그들의 진귀한 비밀을 캐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5.30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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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속 숨은 조연들: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 노승대 지음 | 불광출판사 | 456쪽

 

사찰 구석구석 기묘한 존재들의 진기한 내력, 사찰은 신전(神殿)이다. 중심 전각에 자리한 부처님을 제외하고도 사찰 구석구석 ‘초월적’인 능력과 ‘기괴한’ 외모를 지닌 존재들이 조각이나 그림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큰 사찰인 경우 그 수가 100명 이상 되어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이니, 불교 경전에 기록된바 그들이 거느린 권속(眷屬)까지 헤아리면 사찰에 구축된 세계관은 그리스신화나 북유럽신화의 세계만큼이나 거대하다.

이들은 간혹 만화나 영화 등에 등장하기도 한다. 웹툰 원작의 영화 〈신과 함께〉에서 망자(亡者)인 주인공을 심판하는 왕들(시왕), 영화 〈사바하〉에서 악귀를 잡는 악신으로 일컬어진 네 신(사천왕), 만화 『극락왕생』에 등장하는 보살들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등이 그렇다. 이들은 비록 주인공이 아니지만 생경하고도 신비로운 존재로 황금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펼치는 판타지 이면엔 기원전 인도에서 시작되는 오래되고 광범위한 역사와 갖가지 사연이 있다. 그럼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떤 이유로 절집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가히 ‘신(神)’이라 할 수 있는 사찰 속 기묘한 존재들의 숨은 내력을 뒷조사한다. 종교와 역사, 신화와 설화를 종횡무진 오가며 밝히는 그들의 정체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남다른 의미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자, 사찰을 하나의 무대라고 상상해 보자.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부처님’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황금 조연’들이 있으니…. 그들은 사찰에 들어오는 이들을 향하여 주먹을 날릴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여섯 개의 팔에 날 선 무기를 지닌 채 성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옆엔 이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천진한 미소를 지닌 동자들이 뛰놀고, 벌거벗은 사람들에게 벌을 주면서도 한없이 바빠 보이는 존재도 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가?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 즉 명부(冥府)의 존재에 관한 내용이다. 지옥 중생의 구제를 대원(大願)으로 삼은 지장보살과 협시(夾侍)인 도명존자ㆍ무독귀왕, 그리고 열 명의 지옥 심판관인 시왕과 중생의 생전 선악(善惡) 행위를 빠짐없이 기록해 보고하는 선악동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2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자를 보호한다고 하여 ‘호법신중(護法神衆)’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사찰 입구에서 위협적인 모습으로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사천왕과 금강역사, 여덟 그룹의 신중 부대인 팔부신중, 신중들을 호령하는 젊은 장군 신 위태천 등이 거론된다. 마지막 3부는 부처님 가장 가까이에서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하는 협시, 그리고 괴팍한 성격을 가졌지만 중생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알려진 영험한 존재 나한을 다루었다.

저자는 이들 존재가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우리 사찰에 자리하게 된 경위까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추적한다. 그 근거는 종교와 역사의 오랜 문헌과 기록, 민간에 이어져 온 설화와 신화, 옛 인도 땅과 중국, 우리나라 등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저자는 이들을 종합하여 이제 미지의 존재, 미지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책의 주인공들과 그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걸 목표로 한다. 사실 우리는 비단 사찰의 조각과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의외의 순간 이들을 만나왔다. 각 부에 소개되는 사찰의 신비한 존재들은 한국형 판타지의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를 꼽자면, 웹툰 원작의 영화 〈신과 함께〉에는 주인공인 망자(亡者) 자홍의 생전 선악(善惡)을 심판하는 명부의 존재로 염라대왕을 필두로 한 ‘시왕’이 등장한다. 영화 〈사바하〉에는 악귀를 잡는 악신으로 ‘사천왕’이 소개되고, 인기 만화 『극락왕생』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주인공을 돕는 ‘도명존자’와 그의 라이벌 ‘무독귀왕’이 등장한다. 제목을 상징적인 의미로 차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화 〈아수라〉나 〈야차〉의 경우가 그렇다.

이렇듯 친숙하고도 낯선 존재들은 불교의 세계관을 응축한 공간 안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봉안되어 나름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타임라인 위에서 현실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저마다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한다.

놀라운 것은 이들 이면에 새겨진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 볼 때 거대한 지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원전 인도에서 서역,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도래하였다. 더욱이 그 오랜 기간, 광대한 지역을 건너오며 각 지역의 문화와 습합ㆍ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그 문화권에서 숭앙된 타 종교나 민간신앙은 물론 전쟁이나 기근 등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사건 등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한 예로 신중 가운데는 비슈누, 시바 등 힌두교의 신이나 우물 신, 측신 등 우리나라 재래신도 포함된다. 한편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조성된 조선시대 사천왕상 발 밑에는 왜군, 청나라 병사의 조각이 악귀 대신 자리한다.

중생의 삶에 더욱 가까운 존재로 민중에게 있어 자신들을 지켜줄 수호신이자 복, 장수 등을 빌 사복신(賜福神)이 된 불교의 신. 이들은 당시 사람들의 염원과 소망, 불안과 고통을 읽을 수 있는 역사적 증거로서 단순한 흥미만으로 읽어 넘기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부터 삶의 여러 순간 그들을 향해 기도해 온 흔적은 점점 사라지고 세대를 거듭하며 생경해졌으며 더욱 신비하기만 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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