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오키나와인가 …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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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오키나와인가 …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
  • 손지연 경희대·일본근현대문학
  • 승인 2022.05.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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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 (손지연 엮음, 소명출판, 353쪽, 2022. 05)

 

왜, 지금, 오키나와인가.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오키나와를 중심에 두고 함께 머리를 맞댄 것은 냉전과 탈냉전의 시대를 거쳐 온 동아시아의 세계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적 공존과 지식의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오키나와전투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형인 오키나와의 처지는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으로 재편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동아시아가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동시적인 시공간의 경험을 해야 하는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논의는 오래되었다.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을 비롯해, 한국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도 동아시아 평화 체제의 필요성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대결과 갈등은 여전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보여주듯 국가주의적 대결의 심화는 평화적 공존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밖에 없다.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 이상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동아시아의 역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자장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오키나와를 학문적 사유의 중심에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키나와는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상징이자, 냉전과 탈냉전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오키나와를 국가, 혹은 지역적 차원에서 논의하기보다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사유하기 위한 학문적 지렛대로 삼고자 했다.

이 책의 출발은 2019년 경희대학교에서 열렸던 국제학술대회였다. ‘오키나와학은 가능한가-포스트 이하 후유 시대의 도전과 전망’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른바 이하 후유가 규정한 ‘오키나와학’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오키나와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활발한 연구활동도 보여주었던 오시로 사다토시 선생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의 오키나와 연구자들은 오키나와의 타자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동아시아 평화 공존을 위한 지식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책의 1부 ‘오키나와라는 질문’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오키나와의 시각에서 진단하고 있다. 오시로 사다토시는 「류큐호의 사상과 재생력-전후 76년, 오키나와에서 묻다」에서 국가권력의 희생양이 되었던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재를 거론하면서 냉전체제의 폭력적 재편과정에서도 ‘인간의 재생’에 대한 염원을 잃지 않았던 오키나와의 분투를 진솔하게 써가고 있다. ‘초국경적이자 국제적인’ 오키나와문학의 응전을 오시로 사다토시는 전후 76년의 고난이 만들어낸 민중들의 문제 제기였다고 말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세계와 평화, 인간에 대한 양날의 질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키하마 사나의 「포스트 이하 후유 시대의 ‘주체’의 행방」은 근대자본주의의 담론장에서 오키나와라는 주체가 어떻게 구성되고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이하 후유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개진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 속에서 오키나와 근대사상사에서의 주체의 문제를 계보학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이 글은 근대자본주의의 폭력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도모쓰네 쓰토무의 「이민의 이동론적 전회와 오키나와 출신」은 오키나와 하와이 이민사를 중심에 두면서도 부락 출신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생존 전략을 살피고 있다. 하와이 이민사회에서의 이른바 마이너리티 사이의 생존경쟁 역사는 오키나와 피차별 부락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오키나와의 하와이 이민사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것은 마스부치 아사코의 「트랜스퍼시픽 연구로서의 오키나와학」이다. 그는 군사주의, 제국, 식민주의의 폭력으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유동의 역사를 ‘트랜스퍼시픽’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국가 제국의 틈새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오키나와 이민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민’의 문제에 대한 그의 지적은 군사화와 냉전정치에 수렴되지 않았던 ‘유동’과 그러한 유동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1부가 오키나와의 역사적 경험을 근대적 주체와 유동의 경험에서 살펴보고 있다면 2부 ‘상흔의 기억과 기억의 상처’는 국가폭력의 문제를 보다 정치하게 바라보기 위한 논의들로 구성되어 있다. 

 

손지연의 「국가폭력의 전후적 기억, 국가폭력을 내파하는 문학적 상상력」은 메도루마 슌과 오시로 다쓰히로의 문학을 점검하면서 오키나와전투의 사후 기억과 그것의 폭력적 연속을 돌파하려 했던 오키나와문학의 응전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폭력의 문제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두 작가가 폭력을 사유하는 방식의 차이를 ‘대항폭력’의 유무라고 분석하고 있는 이 글은 폭력의 문제가 과거적 사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식민주의적 연속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하나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토 이즈미의 「번역과 연대-김석희의 「땅울림」 일본어 번역에 대해」는 폭력의 문제를 사유하는 지역의 연대가 번역적 차원에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이 글은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의 사례를 들면서 오키나와에서의 폭력의 문제가 제주4·3의 비극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제주4·3문학의 주요 작품인 김석희의 「땅울림」의 일본어 번역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탐라공화국에 대한 제주문학의 상상력이 복귀와 반복귀, 그리고 독립을 둘러싼 오키나와의 문제를 상기시키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번역 언어를 통한 예술적 보편성의 문제를 제주와 오키나와문학을 통해 타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영란의 「‘번역’되는 강간과 남성 섹슈얼리티」는 오시로 다쓰히로의 문제작이자 출세작인 『칵테일파티』와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 <교사형>에서 등장하는 강간 장면의 재현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칵테일파티』의 강간의 재현을 ‘번역’의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와의 폭력적 관계가 간과되어 미군기지 문제가 일본 평화헌법의 틀로 수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의 경우 역시 강간의 재현이 히노마루에 의해 은폐되면서 과거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의 기억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3부 ‘오키나와/제주, 포스트 냉전의 시공간’은 이른바 포스트 냉전의 시공간 속에서 한국과 오키니와, 제주와 오키나와의 문제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손지연과 김동현의 「개발과 근대화 프로젝트」는 제주와 오키나와의 근대적 개발의 과정이 제주4·3과 오키나와전투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동시에 발전과 부흥이라는 자본주의적 개발이 은폐된 폭력으로 지역을 재편성해왔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 

김지영의 「1950년대 본토 일본문학에 그려진 ‘냉전기지’ 오키나와」는 히노 아시헤이의 소설과 희곡인 「끊겨진 밧줄」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미국과 일본 본토, 그리고 오키나와의 사이에서 빚어졌던 냉전의 다양한 층위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일본 본토 전후 문학의 오키나와 기지 표상에 주목하면서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평화에 대한 위화적 관계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임경화의 「마이너리티의 역사기록운동과 오키나와의 일본군 ‘위안부’」는 오키나와 반환을 앞두고 벌여진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와 ‘위안부’ 배봉기의 증언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역사기록운동으로서의 마이너리티의 문제가 식민주의 폭력과 극복과정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오키나와전투 체험을 기록하는 운동의 질적변화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의 증언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리타 지히로의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건립과 냉전체제」는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건립 과정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위령탑 건립이 지닌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상세하게 따지고 있다. 그는 한국 정부, 민단, 그리고 일본인 유지의 다양한 의도들이 중첩된 한국인 위령탑 건립이 그 자체로 냉전체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 동시에 오키나와전투의 기억을 매개로 한 한일우호의 모색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문학,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연구자들이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의 물음’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오키나와가 지닌 현재적 문제에 깊이 감응했기 때문이다. 마침 이 책이 간행된 2022년 5월은 오키나와 ‘복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 내에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를 바라며, 한국과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공존의 문제가 한 걸음 더 진전할 수 있는 학술적 모색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손지연 경희대·일본근현대문학

경희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가나자와대학과 나고야대학에서 각각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이자 글로벌 류큐오키나와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전공은 일본근현대문학이며, 최근에는 오키나와 문학과 사상, 동아시아 젠더스터디즈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후 오키나와문학을 사유하는 방법-젠더, 에스닉, 그리고 내셔널 아이덴티티』,  『동아시아 여성서사는 어떻게 만날까』(공저), 『전후 오키나와 문학과 동아시아』(공저), 옮긴 책으로 『오시로 다쓰히로 문학선집』, 『기억의 숲』,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오키나와 영화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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