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환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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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환상일 뿐일까?
  • 이풍실 경희대·철학
  • 승인 2022.05.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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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자유의지와 과학: 현대 과학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이유』 (앨프리드 R. 밀리 지음, 이풍실 옮김, 필로소픽, 184쪽, 2022.04)

 

자유의지는 적어도 서구의 기독교가 시작된 이후로 오늘날까지 서양 철학의 중요한 탐구 주제가 되어 왔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통제하는 주체로서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지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관점이다. 또한 자유의지는 단순히 전문적인 철학적 주제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시민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만일 나의 무의식적 두뇌 활동이 나의 의식적 사고와 선택, 욕구, 의지 등을 결정한다면 행위자로서의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나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참여라는 시민사회의 정치적인 기초도 허구가 아닐까? 

20세기 중후반부터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뇌와 행동에 대한 연구가 급증하면서 일군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험 결과가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해왔다. 행위의 철학과 자유의지 문제에 있어서 오랫동안 많은 저술을 해왔고 그 기여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온 저자 알프레드 R. 밀리는 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실험들을 분석하여 이들이 자유의지가 없음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중 어떤 것도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증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밀리의 논의 자체는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밀리의 논의를 통해 왜 현대 과학이 아직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 현대 과학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의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도대체 어떤 증거가 자유의지의 존재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마련해줄지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특히 과학이 철학의 고전적인 자유의지의 문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반대로 철학이 자유의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을 옮긴 나는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의 연구를 통해 자유의지가 환상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식의 자극적인 선전이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미디어에서 아직도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밀리의 책을 번역하게 된 주된 계기가 되었다. 기존의 과학적 실험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밀리만이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다른 학자의 저술이 아니라 밀리의 책을 번역하게 된 이유는, 밀리가 철학계 내에서 자유의지에 관한 영향력 있는 연구로 명성을 얻은 철학자일 뿐 아니라 존 템플턴 재단의 지원 아래서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등 과학 분야의 연구자들과 심도 있는 공동 탐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출판한 경력이 있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밀리는 존 템플턴 재단의 지원 아래 신경과학자, 종교학자 등의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자유의지에 관한 유의미한 경험적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점에서 밀리는 단순히 과학의 변방에서 홀로 목소리를 내는 철학자가 아니라 이미 과학자들과 심층적 교류를 통해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융합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목차와 간략한 요약】


1. 자유의지의 개념

자유의지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논의하기 전에 자유의지의 개념 규정에 대한 개괄이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의 의식적 결심이 행위의 원인인지의 문제가 갖는 중요성이 이야기된다.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의식적 결심이 사실 환상이며 결심은 무의식적 단계에서 이미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2. 벤저민 리벳의 실험: 언제 결심이 이루어지는가?

리벳의 실험은 자유의지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과학적 연구 대부분의 기초가 된 중요한 실험이다. 밀리는 이 실험을 통해서 리벳이 내린 결론, 즉 우리의 결심은 의식되기 전에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결론이 실험 결과로부터 도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3.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는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하는가?

밀리는 리벳의 실험 이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최근의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고 이들의 연구가 자유의지가 없음을 보이는 데 실패함을 논증한다. 


4. 우리의 행위는 모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자동적 행위에 대한 심리학의 실험

이 장에서는 의식적인 의도에 의해서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자유의지의 핵심적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며 우리의 행위는 무의식적 원인에 의해서 야기된다는 사회 심리학자 웨그너의 연구가 분석의 대상이 된다. 밀리는 웨그너가 인용하는 증거와 그에 기초한 논증이 자유의지의 부존재를 결론으로 이끌어낼 수 없음을 보인다. 


5. 상황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가?: 사회심리학의 상황주의적 실험

일군의 신경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실험 결과가 인간의 행위가 행위자가 처한 상황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야기된다는 결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밀리는 이들의 논증의 허점을 짚어낸다. 


6. 자유의지와 과학적 증거

밀리는 이제까지 논의된 바 과학이 밝혀낸 것으로부터 우리가 자유의지에 대해서 끌어낼 수 있는 적절한 결론의 한계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자유의지가 환상임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자유의지의 개념을 그 기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유의지를 물리세계의 인과적인 과정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철학자들을 비롯해서 다수의 일상인들조차도 이렇게 강한 요구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적어도 일부 과학자들은 허수아비를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풍실 경희대·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경희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경희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언어철학’과 ‘심리철학’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Mental files, concepts, and bodies of information”과 〈고유명의 사회성: 발생적 이론과 개인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 〈존재부정 진술의 발화 진리조건과 양상적 내용의 구분: 크리민스의 얕은 척하기 이론에 대한 부분적 옹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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