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드로의 상상의 여행기 - 『부갱빌 여행기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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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의 상상의 여행기 - 『부갱빌 여행기 보유』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2.05.2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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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남태평양 중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는 타히티 섬은 오늘날에도 여행이 쉽지 않은 절해의 고도이다. 투명하고 푸른 바다와 야자수, 방갈로 말고도 고갱의 섬 체류기와 그림 속 열대의 강렬한 색채가 어울려 오늘날까지도 그야말로 이국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서구인들은 태평양의 섬 타히티를 두고 18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른 곳’에 대한 상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국의 풍속과 풍경, 이민족에 대한 꿈과 정신적 추구를 뜻하는 ‘이국정서’는 계몽주의 시대 전까지만 해도 현실의 지리적 공간과 거리가 있었고 이국을 향한 꿈에 가까웠다. 그만큼 항해와 지리적 발견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이국은 소수의 탐험가와 여행가의 전유물이었다. 타히티가 유럽인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프랑스인 탐험가 부갱빌의 『세계 여행기』를 통해서였다. 알렉산더 셀커크의 무인도 체류 경험이 다니엘 디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로빈슨 크루소』로 탄생했듯이 부갱빌의 여행기는 계몽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부갱빌 여행기 보유Le Supplément au voyage de Bougainville』(1796)로 만들어졌다. 부갱빌의 여행기는 디드로는 물론 유럽인들에게 현실 너머에 있는 가상의 공간으로서의 섬을 꿈꾸게 했고 이후 타히티는 고갱의 작품과 행적, 탐험가이자 저술가인 빅토르 세갈렌의 『이국정서에 관한 시론』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시간 동안 서구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사실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보유』는 정확한 의미에서 부갱빌 여행기의 부록이 아니며 그의 글에서 타히티섬에 대한 묘사와 이국의 풍물에 대한 기록도 찾아보기 어렵다. 동시대인인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가 이방인의 시선을 가장하여 프랑스 사회를 객관화하여 보려는 목적으로 ‘이국’을 이용한 것처럼 디드로의 상상의 여행기 역시 ‘이국’을 구실로 삶아 문명사회와 그들의 도덕, 종교를 비판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국, 특히 타히티가 이른바 ‘간격 효과’를 통해 18세기 유럽문명을 비판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은 타히티라는 섬의 원시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섬은 동시대의 공간이면서도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된 지리적 조건 때문에 문명 이전의 원시 자연과 최초의 인간으로서의 원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으로 타히티 섬의 풍속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은 ‘성적 자유와 쾌락이 넘치는 파라다이스’라는 환상을 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타히티 섬이라는 이국의 공간을 두고 나타난 원시주의와 쾌락주의는 18세기는 물론 고갱의 시대까지 이어지며 성적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Diderot, by Louis-Michel van Loo, 1767

부갱빌이 타히티의 여인을 ‘환대하는 비너스’로 기록했듯이 원주민들의 자유분방한 성 풍속은 디드로의 소설에서도 낯설지만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는 풍속으로 다루어진다. 타히티의 성 풍속에 대한 주제는 대화체 소설인 『부갱빌 여행기 보유』에서 가톨릭 사제와 오루라는 원주민의 대화로 나타난다. 오루는 사제에게 손님을 환대하는 타히티의 성 풍속에 따라 자기 아내와 딸 중 하나를 택하여 잠자리를 할 것을 제안한다. 사제는 자신의 종교와 도덕규범, 윤리의식 등을 내세우고 연신 “나의 종교, 나의 신분…”을 되뇌며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오루의 계속된 설득에 ‘현지 풍속’에 따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근본적으로 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 윤리관의 근거가 무엇인지 묻게 되고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도덕규범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오루의 말에 따르면 타히티인들의 성 관념은 근친상간이나 간통을 넘어설 정도로 자유롭지만 출산의 의무가 아닌 단순히 쾌락에 따르는 성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말하자면 타히티에서의 성은 목적이 아닌 출산의 도구에 불가한 셈이다. 지켜지지 않는 혼전 순결서약을 하고 간통이 횡행하는 문명사회의 모순된 성의식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타히티의 성풍속이 낫다는 주장도 덧붙여진다. 다만 철저하게 계급사회인데다 노동력을 얻기 위한 쾌락과 출산만이 허용되는 타히티가 타락한 유럽의 본보기가 될 수 없음도 지적된다.

디드로는 타히티라는 이국에 대한 동시대인의 환상을 이용해 문명세계의 종교와 윤리의식을 비판했고 지리적 발견이 완성된 이후인 19세기의 작가와 예술가는 이국의 공간을 보다 현실에 가깝게 묘사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이 추구하고 묘사한 이국은 현실의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꿈과 욕망이었고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이었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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