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공능과 언어의 공능을 종합하는 정체공능(整體功能)의 시론
상태바
몸의 공능과 언어의 공능을 종합하는 정체공능(整體功能)의 시론
  • 이재복 한양대·국문학/문학평론가
  • 승인 2022.05.23 0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 (이재복 지음, 도서출판b, 365쪽, 2022. 04)

 

이 책은 저자가 몸의 공능과 언어의 공능, 다시 말하면 몸의 공능과 같은 언어의 공능으로 이루어진 시를 발견하고 그것의 원리를 풀어낸 정체공능(整體功能)의 시론이다. 그간 저자는 ‘몸’을 화두로 하여 자신의 학문적 방향과 그 의미를 모색해 왔는데, 이번 시론은 그의 이러한 몸 공부와 시 공부가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다. 

‘정체공능’이라고 할 때 ‘정체(整體)’는 본래 이항 대립이 아닌 ‘불이(不二)’나 ‘불연기연(不然其然)’ 같은 융화와 혼융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시 혹은 시의 언어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이런 원리를 강하게 드러내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것이 시의 언어에 몸의 정체성(整體性)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정체공능 시론의 단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서구와 동아시아의 언어에 대한 인식 차이에 주목한다. 이 차이 중 대표적인 것은 언어를 ‘실체’와 ‘생성’ 혹은 ‘존재’와 ‘생성’으로 인식하는 데서 오는 차이이다. 서구의 존재론은 기본적으로 실체를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존재론은 생성을 강조한다. 동아시아의 존재론은 우주, 자연, 인간 등을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 다시 말하면 전체적인 생명의 유출 과정으로 보는 ‘정체공능’의 존재론이다. 

 

이 세계에서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있거나 분할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전체적인 유출 과정 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소멸하는 공능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관념이 아니라 실질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체공능으로서의 세계란 우리가 숨 쉬고 지각하는 모든 세계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미지의 잠재적인 세계까지를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세계를 정체공능의 차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우주, 인간, 자연 등을 ‘기(氣)’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간주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시론을 정체공능의 차원으로 인식하고 또 해석하는 일은 서구적인 존재론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계를 몸이 아닌 실체화된 관념이나 개념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데에 익숙해진 우리의 견고한 의식 때문이다. 

이 책에서 시론의 토대로 제기한 정체공능적 사유는 하나의 대안이 아닌 동아시아의 흐름 내에서 오랜 발생론적 기원과 변주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동아시아의 몸이자 생명 그 자체인 것으로 제시된다. 또 동아시아 사유의 한 축으로 작용해 온 정체공능의 감각은 그동안 실체 중심의 서구적 사유의 미망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어떤 힘을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도 본다.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은 “정체공능이 고정됨을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주하는 생성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저자의 사유와, “시가 다른 생산물과 달리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도 늘 새롭게 느껴지는 생명 같은 것은 그것이 몸의 지극한 공능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시론이 수미를 이룬다. 
 

이재복 한양대·국문학/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양대 국제문화대학장 겸 한양대 한국미래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쿨투라』, 『본질과 현상』, 『현대비평』, 『시와 사상』, 『시로 여는 세상』, 『오늘의 소설』, 『오늘의 영화』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비평), 편운문학상, 시와표현평론상, 시와시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몸과 그늘의 미학』, 『내면의 주름과 상징의 질감』,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근대의 에피스테메와 문학장의 분할』,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