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책임을 주창하는 얼굴의 철학자, 레비나스의 삶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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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책임을 주창하는 얼굴의 철학자, 레비나스의 삶과 철학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5.22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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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나스와의 대화: 에세이와 대담 | 에마뉘엘 레비나스 지음 | 김영걸 옮김 | 두번째테제 | 238쪽

 

이 책은 타자의 책임을 주창하는 얼굴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입문서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중에서도 특별한 사유를 전개하는 레비나스는 자크 데리다, 폴 리쾨르 등에 의해 언급되고 해석되면서 현대철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어려운 개념들과 난해한 현상학적 글쓰기 등의 이유로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기는 어려운 철학자였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푸아리에가 입문 글을 쓰고, 1986년 4월과 5월에 걸쳐 레비나스와 나눈 긴 대담을 함께 엮은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레비나스의 짧은 텍스트 두 편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레비나스 사유의 뿌리에 자리하는 세 가지 키워드 러시아 문학, 독일 철학(현상학), 유대교 전통의 맥락에서 레비나스 사상을 조망한다. 

레비나스는 리투아니아 코브노(현 카우나스) 출신 유대계 철학자로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오랜 기간 활동했다. 동유럽 유대인 전통 속에서 러시아 제국의 멸망, 백군과 적군의 내전 등 혼란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레비나스는 풍부한 러시아 문학의 토양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이후 서구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학업을 이어 갔고,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이후 이어지는 히틀러주의의 득세와 2차 세계대전 발발, 프랑스군으로 참전하여 포로가 된 경험, 가족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사연 등 전쟁과 학살이라는 시대가 주는 지울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공포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레비나스는 현상학에 기반한, 주체 중심에서 벗어난 타자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는 제1철학으로서의 윤리를 주창하는 독특한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

이 책에서는 타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레비나스의 독특한 사유의 배경이 상세히 소개된다. 자기의 자리를 연연하는 자기중심적 사유에서 타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응답하는 철학. 레비나스는 프랑스에서 철학 교수로 또한 동방이스라엘사범학교에서 활동하면서 학생들과 만나고 유대교에 대한 이해를 깊이한다. 책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레비나스 사유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유대인 지식인 슈샤니와의 일화 역시 흥미롭게 소개된다. 대담을 진행한 프랑수아 푸아리에는 레비나스에게 독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여러 가지 주제들을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본격적 저술 시기, 이스라엘에 대한 견해까지 망라하여 다채롭게 제기한다.

형이상학이 근거로 삼는 것, 이는 주체, 사유 혹은 자아의 탄생이다. 레비나스는 철학이 출발하는 이 지점을 문제 삼으며 이에서 벗어난 비인격적인 il y a(그저 있음, 익명적 있음으로 흔히 번역됨), 얼굴과 타자를 나타나게 하고 빛나게 하는 열림의 폭넓은 운동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레비나스는 타자가 얼굴로 우리에게 명령하고 무한을 드러내는 방식을 윤리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나의 책임은 무한대이고, 타자의 명령에 나는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존재는 타자와 전혀 대칭적이지 않으며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지위로 떨어진다. 이러한 존재의 지위에 대한 물음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현 시기에도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마지막으로 레비나스는 러시아 작가 바실리 그로스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타성과 타인에 대한 인정으로 시작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언급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지녔던 타인에 대한 인정, 스탈린주의의 광기로 인해 파괴된 선함과 자선의 정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자신의 역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이러한 수많은 일화들을 통해 우리는 레비나스의 사유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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