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구축과 반건축(反建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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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구축과 반건축(反建築)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5.2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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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건축: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과 글쓰기 | 드니 올리에 지음 | 배영달·강혁 옮김 | 열화당 | 416쪽

 

인간의 얼굴이 개인의 존재를 표현하듯, 건축은 사회의 존재 그 자체를 표상한다. 인간 사회의 이상과 권위는 대성당과 궁전 같은 기념비적 건축의 형태로 세워져 민중에게 호소하거나 침묵을 강요한다. 조르주 바타유는 건축이라는 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작용’에 주목해 ‘반건축적’이고 ‘비구축적’인 글쓰기를 전개함으로써, 건축이 상징해 온 서구적 사유의 전통을 전복한다. 

이 책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본격적인 바타유 연구서이다. 말할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을 건드리는 바타유의 글쓰기는 인간 우월성의 하찮음을 폭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반건축(反建築)’이 함축하는 의미다. 저자 드니 올리에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바타유의 반건축적 사상과 문학을 심도있게 분석한다. 서구의 인본주의적 문명 배후에 감춰진 차원을 드러내고 그 사회의 한계와 모순에 주목하는 이 책은, 건축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을 전제로 한 서구 주류 철학의 전통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합리와 발전의 신화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제목에선 건축 전공자들을 위한 이론서로 보이지만 이 책은 철학서이자 문학비평서로 보는 게 더 옳다. 프랑스어판 제목을 직역하면 ‘콩코르드 광장의 점령’인데, 콩코르드 광장은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비롯해 수많은 인물들의 참수가 행해진 역사적 현장으로, 훗날 ‘화합’ 혹은 ‘일치’라는 뜻의 ‘콩코르드(concorde)’라는 역설적인 이름이 붙여졌다. 따라서 ‘콩코르드 광장의 점령’은 바타유의 상상력을 통해 지정된, 파리의 어떤 중요한 장소, 즉 견고한 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했던 장소를 지시한다. 하지만 이런 배경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워, 한국어판에서는 영문판 제목 ‘건축에 반대하여(Against Architecture)’를 참고해 ‘반건축’을 제목으로 삼았다. ‘반건축’은 바타유의 사상과 글쓰기의 지향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며, 저자가 바타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함축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나오는 서문 「인생의 일요일(Les dimanches de la vie)」은 1989년 영문판의 출간을 위해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s)’이라는 제목으로 추가된 글이다. 여기서 ‘인생의 일요일’, ‘피의 일요일’이란, 바타유가 초현실주의 잡지 『도퀴망(Documents)』의 한 섹션인 「비평 사전」에 건축과 관련해 쓴 ‘도살장(Abattoir)’과 ‘박물관(Musee)’ 항목과 연관된다. 근대 파리의 도시 계획이 가져온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도시 속의 기피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현상이었는데, 이십세기 말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에 의해 라 빌레트 도살장이 공원과 박물관으로 개조되는 프로젝트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과 바타유가 쓴 사전 항목에서 올리에는 건축과 낭비(depense)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발견한다. 도살장과 박물관이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시설은 종교와 예술이라는 독립된 영역을 나타내는 건축 형식이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삶의 양면을 비춰 준다.

루브르박물관 역시 왕의 처형에 뒤이은 공포정치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근대 박물관의 기원은 단두대의 피와 이어진다. “도살장이 지각되지 않는다면 루나 파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올리에의 말처럼 우리는 건축 이면의 상실과 축제, 죽음과 낙원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현실 질서에 복무하는 건축은 이성의 지배, 노동의 생산, 계획과 비축, 계산과 유용성을 상징한다. 반면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하며 무의미한 행위로 간주되는 낭비는 배척해야 할 부정적 습속이다. 하지만 오히려 바타유는 낭비에 주목하며 그를 옹호한다. 낭비는 욕망의 해방을 의미하고 예술 행위와도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 인간을 사물화하는 자본주의적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탈주이다. 모든 낭비를 적대시하고 자본의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그보다 더한 돌이킬 수 없는 자기 파괴로 질주하는 문명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본문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이 반건축이라는 관점에서 바타유의 사상을 논하고 있다면, 후반은 언어와 건축의 상동성, 바타유의 이질학적 글쓰기 즉 문학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에 할애되어 있다.

바타유의 반건축적 사유는 철학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학문 체계와 논리의 모델로서 건축이 특별한 지위를 지녀 왔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건축으로서 철학은 붕괴했다”고 료타르는 의기양양하게 선언했지만 알랭 바디우는 “어떤 방식으로든 건축적이지 않은 철학을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논리와 체계를 견지하는 한 철학과 학문은 구축적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와 타자 같은 개념이 점점 중요해지는 현실에서, 이성이 지배하는 질서의 닫힌 체계에 저항해 낭비와 불복종을 추구하는 바타유의 외부자적 시선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또한 『반건축』은 실체로든 관념으로든 건축에 관해 못 듣던 ‘다른’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문화와 실재 사이의 간극을 깨닫게 한다. 건축을 향한 무조건적 긍정을 전제로 작업하고 있는 이들(실제 건축가들뿐만 아니라 비유적으로 이 사회의 모든 건설자들)에게 자신의 전공과 실천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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