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유사성 ‘땅’ … 페르시아어 ‘-stan’과 중세 우리말 ‘ㅅᄃᆞ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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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유사성 ‘땅’ … 페르시아어 ‘-stan’과 중세 우리말 ‘ㅅᄃᆞᆼ’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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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7)_ ‘ᄃᆞᆼ’과 ‘-stan’의 차이만큼 멀고도 가까운 나라 페르시아

▲ 다리우스 1세 부조
▲ 다리우스 1세 부조

이란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부득이 한 경우 ‘대왕’이라는 뜻의 ‘the Great’는 빼고 그저 ‘알렉산더’라고만 말한다. 이란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가 고대 페르시아의 위대한 군주 다리우스 대제(Darius the Great. c. 550~486 BCE)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자랑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가도 “Alexander the Great”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서양사에 있어서 알렉산더는 위대한 대왕일 수 있어도 대제국 아케메니드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폐허로 만든 장본인을 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는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라는 뜻으로 부르던 ‘파르사(Pārsa)’의 그리스식 표현이다. 참고로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의 이란 침공에 맞서 싸운 페르시아 황제는 다리우스 3세다.

25년 전 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 북서부의 도시 페샤와르에 갔다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는 젊어서인지 험지도 두렵지 않았고, 오지도 불편한 줄 몰랐다. 목숨 걸고 카이버 고개를 넘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지인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학교 교육에 사용되는 언어가 다리어(Dari)라는 사실을 알았다. 순간 다리우스(Darius)가 떠오르며 양자의 관계에 의심이 생기면서 의미가 궁금해졌다.

다리어는 여전히 이슬람 극단주의가 득세해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동부지방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 방언의 하나다. 다리우스의 라틴어 표기인 DārīusDārīus는 그리스어 Dareîos에서 유래한 것이고, 이는 또 고대 페르시아어 Dārayava(h)uš의 축소형 Dārayauš에서 비롯된 것이다. Schmitt(1944, 40)에 의하면, 이 말은 dāraya, ‘보유자(holder)’ + va ‘선(goodness)’ + -us[os] ‘남성 접미사(masculine suffix)’의 합성어로 그 의미는 “선의 견지자(he who holds firm the goodness)”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Daraya 혹은 daray는 ‘富(wealth)’라는 뜻을 지닌 말로 이란에서 여자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 기원전 333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알렉산더 대왕 간에 벌어진 이수스 전투 장면 모자이크 일부[기원전 2세기 경 지어진 이탈리아 폼페이 카사 델 파우노 家(Casa del Fauno) 저택바닥]. 파우노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반은 사람, 나머지 절반은 염소인 반인반수의 염소인간이다.
▲ 기원전 333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알렉산더 대왕 간에 벌어진 이수스 전투 장면 모자이크 일부[기원전 2세기 경 지어진 이탈리아 폼페이 카사 델 파우노 家(Casa del Fauno) 저택바닥]. 파우노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반은 사람, 나머지 절반은 염소인 반인반수의 염소인간이다.

페르시아(Persia)는 한문 사료에는 파사국(波斯國)으로 표기되어 있다. 『위서(魏書)』에는 파사국의 도읍을 숙리성(宿利城)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문헌에는 소리(蘇利), 소린(蘇隣), 소랄살당나(蘇剌薩儻那), 소리실단(蘇利悉單) 등으로 적혀있는데, 이는 당나라 때(8세기) 서역 카시미르 출신의 불교 승려 리언(利言)이 편찬한 『범어잡명(梵語雜名)』에 보이는 호국(胡國)에 대한 범어 명칭의 한문 음차어 소리(蘇哩)(Suli)와 같은 음가를 지닌다. Pelliot 같은 학자는 蘇利 등이 Suli가 아니라 Suri의 대음(對音)이라고 주장한다. 한어 胡와 인도 실담문자로 적힌 Suli의 의미 관계는 다른 곳에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페르시아를 가리키는 파사(波斯)는 Pars라는 부족명의 음차어다. 따라서 Persia는 Pers(<Pars) + -ia의 합성어로 “파르스 부족의 나라[땅, land]”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접미사 -ia는 고대 희랍어 접미사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ia에 대응되는, 그리스인들의 영원한 적 페르시아인들이 사용하는, 접미사는 무엇일까? 바로 -stan이다. 위에서 본 蘇剌薩儻那, 蘇利悉單薩儻那悉單이 이형태소(異形態素)인 -stana와 -stan의 對音 표기다. 

▲ 페르세폴리스 전경
▲ 페르세폴리스 전경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명칭은 하나같이 -stan으로 끝난다. Kazakhstan은 “카자크족이 주축이 된 나라”라는 의미를 지니며, Uzbekistan은 “우즈벡족이 중심인 나라”라는 뜻의 말이다. Kyrgyzstan이라는 국명의 의미는 “키르기즈족의 나라”다. 국명뿐이 아니라 지역 명칭에도 -stan이 쓰인다. 현 아프가니스탄 동부 힌두쿠시 산맥 일대의 지명은 Nuristan이다. “빛의 땅”이라는 뜻의 명칭이다. 이 지역이 1895년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을 하기 전까지는 Kafiristan이라고 불렸다. “이교도(Kafir)의 땅(stan)”이라는 의미의 말이다. 

그런데 ‘-stan’과 중세 우리말 ‘땅’의 표기 ‘’이 놀랄 만큼 닮아있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람은 이동의 삶을 산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페르시아 사람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을 한 것일까? 유목종족 튀르크인들의 주요 활동무대인 중앙아시아 지역을 동서로 가르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the Pamir)는 “파 총(蔥)”자를 써서 ‘葱嶺’이라고도 한다. 고지에서 야생 파가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말도 파를 파라고 한다. Pamir에 보이는 ‘mir’ 또는 ‘mer’는 ‘언덕, 고개, 재’라는 뜻의 말이다.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우연의 일치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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