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정치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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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정치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해법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5.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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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보고서]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_ 〈‘혐오의 정치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해법〉

 

2010년대에 들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를 낙인찍어 비인간화하고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태도와 그에 기반을 둔 실천을 의미하는 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혐오는 사회적으로 가장 뜨거운 주제가 되었으며 ‘무엇이 혐오인지’ 그 의미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혐오’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사회구성원의 다수는 혐오를 감정의 상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혐오에 내재해 있는, 타자를 주변화하고 이를 통해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을 암묵적으로 때로는 공개적으로 정당화하는 문화와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혐오는 사전적 의미처럼 단순히 ‘싫어하고 미워함’이란 감정의 상태가 아니다. 혐오는 누군가를 보편인간으로, 누군가를 그 보편인간의 타자로 설정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문화이자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를 감정의 상태를 넘어 차별과 배제라는 구조적 문제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이런 혐오를 정치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이스턴이 지적하듯이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혐오가 난무하고 있다는 것은 정치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이런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지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해법의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정책연구보고서 <‘혐오의 정치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해법>(연구책임자: 김만권 경희대 교수)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민혐오, 빈자혐오라는 다섯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각 영역마다 혐오에 대응하는 정책 지침을 세 가지 원칙으로 제안했으며, 최종적으로 혐오에 대응하는 정책을 세울 때 고려해야 할 전반적 지침으로 △환대(안전화)의 원칙, △비분리(다양성)의 원칙, △탈사법지배(탈법만능주의)의 원칙을 제시했다. 

 

【연구 요약】

보고서는 지난 10년 간 우리 사회에서 정치·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 혐오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혐오를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매우 싫어하고 미워함’이란 감정의 상태를 넘어 오히려 ‘정상성을 갖춘 보편인간’이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특정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구조적 문제로 정의하였다. 

더불어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 작동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혐오를,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새로운 키워드인 ‘공정성’과 ‘능력주의’와 연계하여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해법을 정책 지침으로 제시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민혐오, 빈자혐오라는 다섯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이를 주목했다. 

보고서는 능력주의와 공정성이 결합하여 사회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될 때, 사회적 약자 를 배려하는 경향이 약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능력주의적 공정성은 노력주의로 포장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성과를 인정받는 노력(능력)이 ‘정상성을 갖춘 보편인간’이 되는 기준이 되어 견고한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능력주의적 공정성이 지배적 가치관이 되며 우리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빈자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사회 밑바닥에 자리잡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런 능력주의적 공정성이 차별과 혐오를 대규모로 동원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여성혐오의 경우 여성의 신분상승이 국가의 위기(저출산) 혹은 사회의 문제(남성혐오)를 야기한다는 주장과 함께 오히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약자라는 ‘역차별’ 서사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거대한 사회문화적 서사가 되어 정치영역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노력하면 쟁취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적 공정성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일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의 경우 성소수자를 정신적, 신체적 장애나 정상적인 성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리적 존재, 혹은 스스로 반사회적·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행위자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혐오세력이 단체나 조직을 통해 전면적이고 가시적으로 혐오를 부추기고 있음에도 국가의 회피적 태도로 인한 성소수자 정책의 부재 속에 혐오의 확산이 더 쉽게 일어나고 있다. 

장애인혐오의 경우 장애인을 무능력하게 보는 우생학의 관점에서 장애인은 정상인이 될 수 있 는 능력이 부재한 존재이므로 분리하여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정책이 압도적이다. 비장애인에게는 행해지지 않는 능력에 따른 장애인 등급제가 우생학적 관점에서 행해진 대표적인 제도였으며, 이런 논리가 확장되어 사회 내에서 시설을 통해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주민혐오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에 만들어진 이주민들을 능력과 무관하게 다른 나라 에서 혜택을 누리는 ‘기회주의적 무임승차자’로 환원하고 국내에서 생겨나는 사회경제적 불안을 이주민을 공격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이주민 혐오는 인종에 따라 노동위계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능력의 서열화가 만들어지며, 이런 서열화를 따라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빈자혐오의 경우 능력주의적 공정성 담론 속에서 빈자들은 노력하지 않는 자들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노동윤리 및 자기책임의 윤리의 강화 속에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움에 대한 무관심과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외로워지고 자기비하에 빠진 빈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청년세대에 이런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 정책 (지침) 제안

보고서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빈자 각 영역마다 혐오에 대응하는 정책을 세우는데 고려해야 할 지침을 세 가지 원칙으로 제시하며, 최종적으로 혐오에 대응하는 정책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좀 더 일반적 지침으로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아래와 같다. 

                                        혐오에 대응하는 정책마련에 필요한 지침들

▶ 분야별 정책원칙 제언 

(1) 여성혐오의 경우 탈본질주의-성평등의 원칙, 다양성 동수의 원칙, 돌봄전환의 원칙(혹은 연 립의 원칙)을 지침으로 제시한다. 

첫째, 탈본질주의-성평등의 원칙은 성적이분법을 넘어 내가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장으로 정책이 작동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둘째, 다양성 동수의 원칙은 기계적 남녀 50대50의 비율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인구집단비율을 따라 정책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지침이다. 셋째, 돌봄전환의 원칙은 능력주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응원칙으로 임금화될 수 있는 노동능력이 정상성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해선 안 된다는 지침이다.

(2) 성소수자혐오의 경우 비병리·비범죄화의 원칙, 정책 가시화의 원칙, 성적 다양성 관점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비병리·비범죄화의 원칙은 특정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성특징을 정신적·신체적 병리 상태로 치료대상으로 보거나, 성소수자를 반사회적·부도덕적 행위자로 왜곡하는 편견이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다. 둘째, 정책가시화의 원칙은 성소수자가 구체적인 정책 수립 대상이 되는 인구집단으로서 취급되고 있지 않다는 정책 부재에서 나온 지침이다. 셋째, 성적 다양성 관점의 원칙은 다양하게 발현되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국가와 시민사회가 존중하는 것을 통해 가부장적 젠더 규범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제안이다. 

(3) 장애인혐오의 경우 탈우생학의 원칙, 탈등급화의 원칙, 탈시설화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탈우생학의 원칙은 기존의 장애인 정책에 내재해 있는 이 관점이 능력에 따른 구조적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함을 밝히는 지침이다. 둘째, 탈등급화의 원칙은 장애인등급화가 바로 이런 우생학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는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명백한 차별이기에 폐기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셋째 탈시설화의 원칙은 장애인을 분리해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발상이 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시설화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4) 이주민혐오의 경우 탈관주도의 원칙, 맥락주의 원칙, 겹정체성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탈관주도의 원칙은 관이 주도하는 이주민을 위한 정책이 이주민을 무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취급하고 있어 이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둘째, 맥락주의 원칙은 우리나라 이주민혐오가 인종에 따른 능력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 지침이다. 셋째, 겹정체성의 원리는 이주민 정책이 국내인과 외국인이란 이분법을 근거하기보다는 다양한 집단의 정체성이 겹겹이 쌓여 정치공동체를 이룬다는 원칙 하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제안이다.

(5) 빈자혐오의 경우 탈노동중심주의의 원칙, 공동책임의 원칙, 보편주의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탈노동중심주의 원칙은 빈자정책이 노동중심적이 될수록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심화될 것이란 경고를 담고 있다. 둘째, 공동책임의 원칙은 우리나라에 지배적인 자기 책임의 윤리가 능력주의적 공정성 관점과 결합하여 사회적 도움에 인색하거나 이를 부정하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데서 나왔다. 셋째, 보편주의의 원칙은 자산조사에 기반하지 않은 보편주의 정책이 능력주의적 분열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 일반 정책원칙 제언 

분야별 연구에서 발견한 결과물을 기초로 혐오에 대응하는 정책을 세울 때 고려해야 할 전반적 지침으로 환대(안전화)의 원칙, 비분리(다양성)의 원칙, 탈사법지배(탈법만능주의)의 원칙을 제시 한다. 

(1) 첫 번째 지침은 환대(안전화)의 원칙이다. 

이는 비시민에게 적용되는 환대의 원칙을 변용·확장하 여 각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취급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자는 제안이다. 우리 영토 안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적대 없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회는 정치적·경제적·도덕적 능력의 유무, 능력의 뛰어남과 그렇지 못함을 기준으로 구성원들을 가르고 추방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이런 추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환대의 원칙은 능력이 그어 놓은 다양한 경계를 무력화한다. 여성혐오 대응지침으로서 탈본질주의-성평등의 원칙, 성소수자혐오 대응지침으로서 비병리-비범죄화의 원칙과 정책 가시화의 원칙, 장애인혐오 대응 지침으로서 탈우생학의 원칙 및 탈등과의 원칙, 이주민혐오 대응원칙으로서 탈관주도와 맥락주의의 원칙, 빈자혐오의 대응지침으로서 탈노동중심주의 원칙이 이런 환대의 원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2) 두 번째 지침은 비분리(다양성)의 원칙이다. 

이 비분리의 원칙은 기존의 배제된 집단을 낯선 이,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을 넘어 우리와 동등한 권리와 능력을 가진 주체로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비분리의 원칙 아래서는 안전이 아니라 동등한 동료로서 타자의 인정과 누구나에게나 좋은 삶이 강조된다. 이런 이유로 비분리의 원칙 아래 기존에 배제된 집단이 정치공동체 내의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다양성을 지닌 집단’으로 변모한다. 여성혐오에 대응지침으로서 다양성 동수의 원칙. 성소수자혐오 대응지침으로서 성적다양성관점의 원칙과 돌봄전환의 원칙, 장애인혐오 대응지침으로서 탈시설화의 원칙, 이주민 대응지침으로서 겹정체성의 원칙, 빈자혐오 대응지침으로서 공동책임의 원칙과 보편주의의 원칙이 비분리(다양성)의 원칙에 직간접적으로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3) 세 번째 지침은 탈사법지배(탈법만능주의)의 원칙이다.

이는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법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을 경계하는 지침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이 종래에는 법적인 권리를 규정하는 것으로 귀착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법적인 권리를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을 제어하는 데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법적인 처벌과 규제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어울려 살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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