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쫓아가는 乙支文德…유목민 索鍾의 후손인가, 인도계 혈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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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쫓아가는 乙支文德…유목민 索鍾의 후손인가, 인도계 혈통인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2.05.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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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78)_ 다시 쫓아가는 乙支文德…유목민 索鍾의 후손인가, 인도계 혈통인가?

 

                                                      둔황 막고굴 98굴 동벽의 공양도<br>
         둔황 막고굴 98굴 동벽의 공양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실크로드展>에 간 것이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둔황 막고굴 98굴 동벽에 그려진 여자 공양인이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복식의 여인 세 명의 그림 위쪽에는 新婦小娘子索氏 供養 / 新婦小娘子翟氏 供養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翟(적)은 투르판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토착 고차족의 대표적 姓이며, 索(색)은 월지의 서천 이전부터 파미르 고원과 천산산맥, 이리 초원 등지에 살고 있던 유목민족이다. 釋迦牟尼라는 이름에서 보이는 석가라는 姓과 색종(索鍾 또는 塞鍾)은 같은 종족이다.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한자어 ‘아닐 불(不)’자를 뒤에 ㄷ, ㅈ이 올 때는 받침 없이 부로 읽는다. 예를 들어 불편부당(不偏不黨)의 경우가 그러하다. 같은 글자가 환경의 차이로 발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뒤따르는 글자가 ㄷ, ㅈ으로 시작하면 부도수표(不渡手票), 부도덕, 부동산, 부당, 부정(不貞)으로 읽고, 여타의 경우는 불성실, 불순, 불사신, 불편, 불패, 오매불망으로 읽는다. 하나로 통일하여 불도수표, 불도덕, 불당, 불정이라고 발음해서 안 될 이유가 없다. 중국어에서는 모든 경우에 [부]라고 읽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아닐 不’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 말 불(火)도 후위의 합성성분에 따라 ‘불’과 ‘부’로 소리가 갈린다. 불이 부로 실현되는 예로는 부뚜막, 부삽, 부지깽이 등을 들 수 있고, 불이 불로 구현되는 예로는 불고기, 불나방, 불두덩, 불장난, 불자동차 등을 들 수 있다. 불나비/부나비는 불과 부 어느 쪽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를 규칙화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며칠 전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부처라는 말의 뜻은 ‘覺者’ 즉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이 말은 고대 인도어 Buddha의 음차어 불타(佛陀)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불타라고 읽는 佛陀의 중국어 한자음은 [부퉈́]에 가깝다. 인도의 말소리가 중국 한자어로 표기되고, 음이 아닌 글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식의 한자음으로 읽힌 결과가 부처다. 15세기에 편찬된 釋譜詳節을 보면 부다가 아니라 부텨로 읽혔다. 그 후 구개음화가 일어나 부텨가 부처로 되었다. 세월 따라 말소리가 달라지고 글자 또한 변한다.

 

대만고궁박물관소장 당염립본왕회도(唐閻立本王會圖) (좌로부터 탕창국(宕昌國), 新羅國, 호탄국(于闐國), 高麗國, 倭國 사신)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말은 어말자음(종성)이 있고, 중국어, 일본어와 동남아시아 언어는 받침이 없는 언어다. 그래서 한자어로 기록된 인명, 지명, 국명, 관명, 종족명 등을 읽을 때는 어말음을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콧소리(鼻音) n m ŋ은 그대로 실현된다. 예를 들어, 銀行의 중국어음은 [인항]이다. 일본어는 받침이 없어서 김치를 [기무치]라고 하고, 맥도날드를 [마구도나르도]라고 발음한다. 

중국 측 사서를 보면 스텝지역(초원)이나 산간에 살고 있는 유목민의 성씨는 대개 복성(複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어 말갈족이 주축이 된 나라 발해(후일의 大震國)를 세운 말갈족의 우두머리는 대조영(大祚榮)이다. 그리고 그의 부친은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뭔가 이상하다. 대조영의 성씨가 大라면 말갈 이름 乞乞仲象에서 적어도 乞乞이 성이고 의미는 大와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걸걸중상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놓여 있다. 걸걸중상과 대조영의 관계에 대해서, 두 사람이 사실은 동일인으로서 걸걸중상은 본래 말갈의 일종인 속말말갈의 토속어 이름이고 대조영은 뒤에 한자로 지은 이름이라는 견해도 있고, 양자를 기록 그대로 부자관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형(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억측을 시도하게 한다.

“15세기 초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관역어 朝鮮館譯語』에서는 형을 ‘格格(거거)’라고 하고 남동생을 ‘阿自(아ᅀᆞ)’라고 하였으며, 1527년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훈몽자회 訓蒙字會』에서는 형을 ‘ᄆᆞᆮ’이라고 훈(訓)하였다. 그런데 ‘ᄆᆞᆮ’은 친족용어라기보다는 장형(長兄)임을 뜻하며, 마찬가지로 『계림유사』의 ‘댱관’이나 『조선관역어』의 ‘거거’도 ‘맏이’ 또는 ‘장형’임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보인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형을 거거(格格)라 불렀다는데, 乞乞의 음가는 [크크]로 양자가 비슷하다. 이름으로 추정되는 仲象은 그가 형제 중 작은(둘째) 형(仲兄)으로 이름이 象임을 시사한다. 몸집이 코끼리처럼 컸던 때문일까?
 

                                                             을지문덕 영정

고구려 최고의 명장으로 일컬어지는 乙支文德 장군 또한 이름으로 보아 인도계나 색종으로 불리는 유목민의 후손일 것으로 다분히 의심된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연 북위 정권은 탁발선비의 나라였다. 이 나라 서방 부족 중에 위지(尉遲)를 성씨로 삼는 집단이 있었다. 중국 측 역사 기록에 우전(于闐)이라 표기된 실크로드 상의 성읍국가, 즉 서역제국 중의 하나인 오아시스 국가로 오늘날에는 호탄이라 불린다. 

10세기 서역 호탄국의 국왕 李聖天 공양도<br>
  10세기 서역 호탄국의 국왕 李聖天 공양도

호탄을 티베트어로 ‘리율’이라고 하는데 이는 ‘李氏의 땅’이라는 의미다. 10세기 호탄국왕의 이름은 李聖天인데 ‘李’라는 姓은 당나라 때  당왕조의 성씨인 李 성을 호탄왕에게 부여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나라 지배계층의 성씨 尉遲와 을지문덕의 성씨 乙支는 인도어 Viśa'[위샤]의 동음 이표기다. 물제제서어(勿提提犀魚)가 번역한 불설십력경(佛説十力經)이라는 경전에 서역 우전국의 왕을 위지요(尉遲曜 Yü-chi yao, 생몰: 755~790년, 재위: 764~790년)라 했는데, 이 이름은 고대 범어로 Viśa' Vāhaṃ, 티베트어로 Vijaya Bo-han의 역어다.(于闐 亦云于遁 或云 丹 梵云瞿薩怛那 唐言地乳國 王尉遲曜) 비샤, 비자야는 범어로 승리라는 말이다. 

이들 위지씨는 후일 尉씨로 改姓을 한다. 乙支文德은 尉支文德, 乙亥文德으로 전사되기도 한다. 乙支와 尉遲의 중국어 음가는 [외지]와 [우지]로 매우 유사하다. 이로 보아 을지문덕은 서역 호탄국의 지배계층인 위지씨 출신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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