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호에 숫자가 꼭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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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기호에 숫자가 꼭 필요할까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
  • 승인 2022.05.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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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올해 2022년은 상반기에만 큰 선거를 두 번 치른다. 지난 3월 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오는 6월 1일에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숫자로 된 기호다. 국회 의석 수 순서에 따라 후보들에게 번호를 매기고 그것을 선거용 기호로 사용하는 것이다. 국회에 의석이 없는 정당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들은 정당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매기되 그 번호는 반드시 의석이 있는 정당 출신 후보보다 뒤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뒤는 무소속 후보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후보들의 순서를 매기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물론 의미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어떤 정당이 지지를 많이 받았는지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기존의 거대 정당에 속하지 않은 후보들이 항상 뒷번호로 밀려나서 관심과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당 또는 정치인의 이름이 투표용지에서도 늘 뒤쪽으로 밀려나 버린다면 유권자가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투표용지를 만들까. 필자는 2003년 말부터 2006년 초까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코이카(KOICA) 소속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일했는데, 그 덕분에 당시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다양한 선거를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시기에 국회의원 총선거는 없었지만 보궐선거는 있었고, 필자가 파견되었던 대학에서도 학생회 선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공직 선거는 물론 학생회 선거에서도 후보들이 숫자 대신 나룻배, 볏단 등 다양한 사물을 형상화한 상징물을 기호로 내세우고 있었다. 투표용지에 후보들이 어떠한 순서로 기재되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자체로 서열화가 되기 쉬운 숫자를 후보의 상징 기호로 쓰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실 이러한 선거 방식은 문해율이 높지 않은 지역에서 흔히 쓰는 방식으로서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여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후보자의 이름과 소속 정당 등을 글자로만 써 놓으면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나룻배 후보, 볏단 후보’ 같은 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대학의 학생회 선거 등 비문해자를 고려할 필요가 사실상 없는 곳에서도 그대로 쓰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처지에서는 공직 선거 때 해 온 관행을 답습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숫자 기호 없이도 후보들을 서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숫자 기호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지 않을까. ‘기호 O번’이라는 말을 없애고 후보들의 투표용지상 배치 순서 또한 매 선거 때마다 새롭게 추첨해서 정한다면 지금 이 시점의 거대 양당과 같은 일부 정당들만이 새로 치르는 선거에서까지 앞자리를 먼저 독차지하는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여러 외국처럼 정당마다 상징 기호를 정해서 내세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때 한국에서도 황소 등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상징물로 내세워 선거운동을 한 사례가 있었을뿐더러 지금도 각 정당마다 고유한 상징 기호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기존의 투표용지에서 숫자를 쓰는 칸에 숫자 대신 상징 기호를 그려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투표용지 디자인을 처음부터 새로 할 필요도 없다.

몇몇 기득권자들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 특히 다양한 소수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면서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것은 민주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드는 길이다. 그리고 소수자들의 의견이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선거 때 기존의 국회의원 의석 수로 숫자 기호를 매기는 방식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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