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초래한 죽음, 진실 혹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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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초래한 죽음, 진실 혹은 거짓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15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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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의 흑역사: 아름다움을 향한 뒤틀린 욕망 | 앨리슨 매슈스 데이비드 지음 | 이상미 옮김 | 탐나는책 | 352쪽

 

옷은 인류가 외부 세계의 유해한 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이러한 주요 임무에 보기 좋게 실패하여 착용한 사람을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만든 옷에 관한 이야기이다. 

옷은 우리를 보호하고 가려주고 편안함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지만, 겉보기에 무해해 보이는 옷들 사이에서 수은이 섞인 모자, 비소로 가득 찬 드레스, 말 그대로 ‘치명적으로 화려한’ 가운을 발견하게 된다. 스타일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이 초래한 실패도 있지만 양말이나 셔츠, 스커트, 파자마 등 평범한 아이템이 사람을 해친 사례도 많다. 

이 책은 신화와 현실 속에서 발견되는 패션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옷이 그것을 만들고 입는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히고 그 과정에서 동물과 환경에 어떻게 해를 끼쳤는지를 탐구하며 화려한 패션의 어두운 이면을 밝힌다.

이 책에는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 북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인체의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기계적으로 변형시킨 패션이 유행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에 옷 좀 입을 줄 안다고 자신하던 우아한 이들은 건강보다는 외모를 우선시하였다. 위태롭게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은 넓은 후프 스커트를 펄럭이며 휘청댔고, 꽉 끼는 부츠를 신은 남자들은 무거운 펠트 모자를 쓴 채 빳빳하게 풀을 먹인 칼라에 목이 조였다. 시대의 사회경제적 압박의 산물인 이 ‘고상한 패션’은 제작자와 착용자 모두에게 고통과 병마, 그리고 물리적 통증을 인내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모두 패션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남녀 모두 불편한 패션의 희생양이었다. 물론 남성과 달리 여성은 비이성적이고 거추장스러운 패션을 강요받았다. 패션은 여성의 신체를 옥죄어 공적인 자리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방해했으며 나아가 건강을 해치게 만들었다. 또한 패션은 옷을 입는 사람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에게도 물리적인 해악을 끼쳤고, 대지와 공기, 물 그리고 자연의 모든 동식물에도 오랫동안 피해를 입혔다. 모두 시대가 가한 압박이 원인이었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찾아내어 지속 가능한 건강한 패션을 지향하는 현대인들이 꼭 참고해야 할 자료로 제공한다.

1장에서는 이가 들끓던 군인들의 군복, 공장의 병든 노동자가 만들던 의류, 그리고 의사의 넥타이까지 병을 옮기는 옷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직물을 통해 전염되는 미생물과 해충은 19세기까지도 지속적인 위협이었다. 2장과 3장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 의류 산업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독극물 수은과 비소를 살펴본다. 수은은 두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모자 생산에 종사했던 남성에게 주로 해를 입혔던 반면, 비소는 눈부신 에메랄드그린 색으로 염색한 조화나 의류를 만들고 구입했던 모든 여성에게 피해를 주었다. 4장에서는 염료의 일종으로 합성수지의 원료가 되는 아닐린 염색과 그 부산물에 대해 알아본다. 이 염색제는 복식학의 지평을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세상을 더 새롭고 생생하면서도 때로는 치명적인 색으로 물들였다.

5장에서는 현대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의 사망, 호블 스커트 등을 살피며 현대의 기계에 옷이 끼여 발생한 사건 사고나 행동의 제약이 심한 패션에 대해 들여다본다. 6장에서는 우리를 마치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만든 옷들, 즉 염증을 일으키는 튀튀, 불이 잘 붙는 크리놀린과 플란넬 천 등이 원인이 된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7장에서는 대량 소비 시대를 맞이하여 소비자의 기호에 맞춘 물건이 폭발적으로 늘고, 셀룰로이드 소재의 빗이나 인조 실크와 같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하는 데 기여했으나 인간의 삶은 망쳐버린 작은 모조 사치품이 가져온 역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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