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포에티카는 열린 인간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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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포에티카는 열린 인간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15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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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포에티카: 신화·시문학·철학의 탄생 | 최상욱 지음 | 서광사 | 448쪽

 

이 세계와 자연에는 수많은 길들이 있다. 그 길들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걸었던 흔적들이 길이 되고, 여러 사람들이 그 길을 걸을 때, 그것은 큰 길이 된다. 그렇다고 큰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다. 각자에게는 자신에게 고유한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좁은 길, 오르막길, 샛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좁은 샛길은 큰 길로 인해 감춰져 있었던 새로운 장소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거의 모든 작품(작가)들은 처음에는 좁은 샛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큰 길이 되었다. 큰 길이 되었을 때, 그 길은 샛길 때 가졌던 감격과 흥분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때 또 다른 작품(작가)들이 등장하여, 길의 방향을 바꿔 놓는다.

그리스와 히브리 우주 창조 신화, 인간 탄생 신화를 다루면서 왜 그리스와 히브리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는지, 아폴론 신화와 플라톤 철학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아폴론 신화와 플라톤 철학이 본질의 힘을 잃었을 때, 디오니소스 신화와 니체 철학이 나타나서 전적인 부정과 해체를 시도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전형으로 햄릿을 다루었다.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운명의 관계, 비극적 영웅의 모습을, 안티고네를 통해 결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에 따른 남성/여성, 개인/국가, 삶/죽음의 문제를 다뤘고, 이때 죽음에의 존재를 강조한 하이데거의 철학을 살펴보았다.

그 후 서사극 오디세이아와 사회 비판 이론을 통해 신화와 계몽의 관계를 살펴보았고, 이를 위해 칸트부터 헤겔, 포이에르바하, 맑스의 철학들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사회 비판 이론가들이 혁명적 작품으로 평가한 카프카의 작품을 해석하고, 마지막으로 시지푸스 신화와 카뮈 철학을 통해 부조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소개한 각각의 작품들은 시대를 앞서간 호모 포에티카들이 당시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길들이다. 이 길들은 그들이 살았던 자연적, 역사적, 사회적인 조건과 이해를 반영한다. 그 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다른 길에 의해 부정되고 변형되고, 그때마다 새로운 신화, 시문학, 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각각의 작품들은 여러 길들을 만들어나갔고, 마침내 그 길은 이정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정표로부터 또 다른 길이 시작되어야 하고, 이러한 작업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호모 포에티카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길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호모 포에티카는 항상 도상에 있는 존재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것은 곧 “이데올로기의 인간”으로 전락을 뜻한다. 이데올로기의 인간은 가장 위험한 형태의 인간이다. 그는 호모 포에티카에 의해 계속해 부정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호모 포에티카의 인간은 미래를 예감하고, 그 도래를 기다린다. 그러나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를 준비하며 기다린다. 또한 기다림의 기한이나 내용을 한정시키지 않는다. 그는 기다림을 기다림으로 열어둔 채 기다린다. 이런 의미에서 호모 포에티카는 열린 인간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다.

이제 호모 포에티카는 또 다른 미래에 대하여 꿈꿔야 한다. AI와 로봇 등의 과학기술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신과 인간(인간의 고귀함, 자유, 평등 등), 사회(정의, 조화, 공정 등), 지구의 환경에 대하여 꿈꿔야 한다. 그러나 그 꿈도 하나의 길이며, 언젠가는 또 다시 부정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삶은 하나의 연극과 같다. 수많은 관객이 있지만, 그들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주인공들이다. 이들 모두는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자신의 배역과 역할, 연기를 벌이고 있다. 이때 호모 포에티카가 바라는 것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삶이었던가?” 이 질문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호모 포에티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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