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은밀한 교란요인’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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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은밀한 교란요인’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5.15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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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쟁, 정치적 혼란, 천재지변 등과 같은 것을 제외하면 사회의 불안은 대부분 경제의 불안정성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경제의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개입에 있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자유시장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격을 통해 조화를 이룬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수요량은 감소하는 한편, 생산자의 공급량은 증가한다. 이렇게 하여 시장가격을 통해 소비자들이 구입하기를 원하는 양과 생산자들이 공급하기를 원하는 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대해 간섭하고 개입하면 이러한 조화가 깨진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로베스피에르의 우윳값 통제다. 로베스피에르는 생필품 가격이 올라 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우유가격을 올리는 상인을 단두대에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가 정한 낮은 우유값으로는 우유를 생산할 수 없게 된 농민들이 젖소 사육을 포기했다. 그러자 우유공급이 줄어 우윳값이 폭등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의도와는 달리 우윳값 통제로 서민이 아닌 귀족만이 우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 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정부가 우유와 같이 특정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의 왜곡과 불안정성은 그 특정시장과 그와 관련된 산업에 국한된다. 그러나 정부의 통화팽창에 따른 화폐가치의 불안정은 경제전반에 영향을 미쳐 경제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가 화폐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화폐가치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들이 불안정해진다. 불안정한 가격들은 소비자와 생산자 등 시장참가자들에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로 인해 경제전체적으로 생산과 소비에 교란이 발생하여 경제가 파탄이 난다. 화폐가치 불안정으로 경제가 파탄이 난 사례는 대단히 많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2008년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 1930년대 대공황,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통화팽창은 비생산적인 소득불평등을 야기한다. 인간사회에서 소득 및 부의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이 다르고 모든 사람들이 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각자의 성취, 지위, 소득, 그리고 부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통화팽창에 따른 소득 및 부의 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통화가 팽창되면 새로 유입된 통화를 일찍 입수한 사람의 소득과 부가 증가하고 늦게 입수한 사람들의 소득과 부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의해 통화량이 증가하면 아직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새로 유입된 통화를 일찍 손에 넣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재화와 서비스를 더 많이 구입할 수 있어서 실질구매력이 증가하게 된다. 또 새로 입수한 통화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을 구입하여 부를 늘린다. 그러나 통화 증가로 인해 물가가 오른 후에 새로 유인된 통화를 입수한 사람은 실질구매력은 그대로다. 따라서 새로 유입된 통화를 손에 넣은 사람과 나중에 입수한 사람 간에 소득 및 부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소득 및 부의 격차는 생산활동과는 무관한 비생산적인 것으로 구성원들 간의 커다란 갈등 요인이 된다. 

현재 대부분 국가들의 통화정책은 통화팽창적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통화정책의 운용목표는 2% 인플레이션 목표제다. 인플레이션 지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사용한다. 2%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표 기준금리를 정하고 이자율을 조작한다. 이러한 통화정책 운영방식 하에서는 통화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미만이면 계속 중앙은행이 돈을 풀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품목의 수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400~500개 정도다. 팽창된 통화가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정하는 품목에 지출되지 않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아무리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더라도 인플레이션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계속 통화를 팽창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소비자물가가 오르게 된다. 그때 가서야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인식하고 풀린 통화를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시중에 유동성이 줄어 크게 올랐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경기가 후퇴한다. 최근 물가가 폭등하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와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지나치게 돈을 많이 풀어서 생긴 문제다. 그리고 각국에서 2008년 이후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크게 악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중앙은행들이 실시하고 있는 통화정책은 통화가 팽창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로 인해 통화량이 과다하게 공급되어 경제의 불안정성이 초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화팽창은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면서 구성원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은밀한 교란요인(stealthy disturbing element)’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현재 통화가 팽창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경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경희대학교 부총장,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공저), 『흐름으로 읽는 자본주의 역사』, 『시장경제와 화폐금융제도』, 『응답하라! 자유주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 『도덕 감성』(공역),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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