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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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5.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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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보고서]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_ 〈기후인문학의 도래: 기후정의를 위한 인문학의 역할 및 정책 연구〉

 

기후변화는 세계적으로 긴급한 이슈이다. 이러한 상황을 맞아 학문의 세계는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다. 크게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존의 학문들이 기후변화의 상황을 다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 혹은 기후를 정면으로 다루는 융·복합적 학제가 독립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이공계 학문들이 기술과 데이터 분석 등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은 정책, 정치, 외교 및 법령 등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문학은 여타 학문들에 비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또한 기후변화에 관련한 국가정책이나 학문적 대화에도 그 존재와 역할이 미미하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시대에 인문학의 자리는 무엇일까? 

이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기후변화 시기의 인문학의 역할에 대해 고찰하며, 인문학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모색한 정책연구보고서 <기후인문학의 도래: 기후정의를 위한 인문학의 역할 및 정책 연구>(저자: 이정철·임철희·김휘진)를 지난달 발간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인문학의 주된 역할은 기후변화를 극복할 해결책 제시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대응, 정치행정적 대응들에 대한 문제제기의 역할이 크다. 인문학은 정의와 인간화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인류가 기후불평등과 과학기술만능주의로 빠지지 않도록 견제할 것이다. 인문학은 또한 기후변화에 영향 받는 미래사회를 상상함으로써 인류가 미리 간접적으로 다가올 미래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간접적 경험은 현재의 실천을 바꾸도록 도울 것이다. 인문학은 또한 기후정의 교육을 위한 역할이 있다. 그리고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 이해를 위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인문학은 기후변화 피해의 당사자들이 겪는 공포와 고통을 다양한 방법으로 들려줄 것이다.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행할 것이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시대에 인문학이 위와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후인문학’이라는 학제의 등장이 필수적이라고 전망한다. 이 학제의 의의는 먼저 ‘기후인문학’이라고 하는 개념의 형성을 통해 기후변화에 응답하는 인문학 연구들을 가시화시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학문의 가시화는 기후변화를 다루는 인문학자들 사이의 교류를 증진시키고, 다양한 학제간 연구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기후인문학’을 언어로 인식하고, 학문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기후변화 관련 학문적 사회뿐만 아니라 정부정책회의 및 행정기구 등에서 필수 참여대화자로서의 위치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해 균형 잡힌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기후인문학 연구의 장려, 기후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전문가 양성 및 미래세대 교육이 필수적이며,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하고 지원하여야 함을 지적하면서, △기후인문학의 학문화 기반 조성 △인문학 연구진흥과 융합인문학 활성화의 일환으로 ‘기후인문학’ 육성 △융합인문학 전담기관의 설립 및 운영 △교육과정에서 인문학적 기후위기 교육 실현 등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했다.

 

[연구 요약]

■ 기후변화와 인문학의 현재

기후변화는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실존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지구와 우주의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촉발되고, 가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막거나 늦출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인간을 연구하는 것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인문학은 분명히 그 역할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의 고통은 어떤 존재론적인 성찰을 가져오는지, 기후변화를 초래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삶의 패턴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본성은 무엇인지, 기후변화를 늦추고자 하는 노력을 교묘하게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어떤 것인지 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인문학의 주제다. 이러한 문제들을 살핌으로써 인문학은 인문(人文)을 연구하고, 인간성을 연구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비판점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지금까지 기후변화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 인문학에서의 기후변화

철학에서는 기후문제는 과학이나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에서도 역시 윤리의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정의와 공평의 문제, 약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지구와 생태를 대하는 종교적 가르침을 새로 제시하면서 기후행동을 격려하고 있다. 문학에서는 실제 기후변화의 문제가 하이퍼리얼리즘 형식으로 표현되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의 미래와 인간의 경험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시도가 있다. 더불어 생태비평 연구와 인류세 연구가 광범위한 환경문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시행되고 있다. 즉, 인문학이 현재까지 보여준 기후변화에 대한 기여는 기후변화의 문제가 윤리적 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사항과 기후변화를 겪는 인간들의 경험을 직,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관련한 연구들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 생태학이나 환경에 관련한 연구들 중 기후변화 문제에 집중한 연구들은 아직 매우 한정적이다. 또 기후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들, 즉 철학이나 문학, 종교학 사이에 있어서는 서로 간의 대화 및 소통이 많지 않다. 기후변화라고 하는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학제를 뛰어넘는 범인문학적 담론들이 더욱 많이 등장한다면 과학과 공학, 정책 등으로 이루어진 기후변화 담론에 좀 더 효과적인 인문학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기후변화 담론에서의 인문학

현재까지의 기후변화 담론에서 인문학의 역할은 미미했다. 학문영역에서도 소외되었고, 국제 협약이나, 계획 수립, 이행 등 정책의 전 과정에서도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융합학문을 지향하였으나, 인문학이 없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및 공학 간의 융합학문이 되어 있었다.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은 인문학자들의 참여와 학술 활동을 위한 공간이 넓어지고, 그들의 적극적 참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협약이나 대응 정책 과정에서 인문학의 부재는 ‘기후변화’ 문제의 태동에 관여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시작되어 국제협력으로 발전되고, 공학적·정책적으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담론이다. 물론, 기후변화 정책 담론에서의 인문학은 그 필요성이 종종 제기되나, 아직은 소수의견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이 중심이 된 각 분야에서 인문학을 위한 공간을 자체적으로 내어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존재한다. 즉, 인문학에서 먼저 나서야 한다. 인문학 진흥에서 시작하여, 기후위기를 비롯한 사회문제 속으로 인문학의 역할을 늘려나가야 한다. 


■ 기후변화에 대한 인문학의 역할

인문학이 기후변화 시대에 할 수 있는 역할로 이 보고서에서는 (1) 문제제기의 역할, (2) 상상으로서의 역할, (3) 기후정의 교육의 재료로서의 역할, (4) 그리고 인간과 사회 이해를 위한 역할, 이렇게 네 가지를 제시한다. 

이것이 갖는 함의는 인문학의 주된 역할은 결코 문제해결책의 제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인문학이 제시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지혜다. 인문학의 역할은 인류가 기후 변화라고 하는 중대한 문제를 보다 윤리적이고, 심미적이며, 정의롭고,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기후변화와 그에 대한 대응에 가져올 수 있는 비인간화나 불평등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인문학은 ‘빠르게’ 전진하는 인류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상기하게 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모두에게 ‘정의로운’ 방법인지 성찰하게 한다. 

이제 고민은 이러한 인문학이 어떻게 하면 위와 같은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인문학의 목소리가 기후변화 담론 전체에 효과적인 대화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 인문학의 역할 증진방안

기후위기 시대에서 인문학의 역할 증진을 위해서 새로운 인문학, 즉 ‘기후인문학’의 학문적 정 립과 연구 활성화, 교육정책 개편 등을 우선적인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인문학의 새로운 분과로서의 학문화와 기후변화 학제에서의 새로운 분과로서의 학문화, 두 가지 노선(Two Track)에서 학문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다학제성이 기초가 되는 기후변화 학계에 인문학자의 참여는 초학제적인 접근으로서 기존 기후변화학과 인문학의 연계를 실현할 것이다. 

연구장려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인문학 중심의 융합연구 장려를 추진할 수 있으며, 융복합연구 유형이나 인문사회연구소 사업 등을 통해 기후인문학 연구의 활성화를 지원할 수 있다. 또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소관연구기관에서도 이를 도외시하지 않고, 지속적인 인문학 기반 융합연구를 추진 및 지원할 것을 희망한다. 기후인문학과 같은 미래지향적 인문학 혹은 융합인문학 진흥을 위한 전담기구의 신설과 이를 통한 인문학의 진흥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기초교육과정에서는 ‘기후위기’ 혹은 ‘기후인문학’에 대한 직접적인 관련 교과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중·고등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존재하는 ‘환경’ 교과가 있으나, 선택 비중이 낮은 편이며, 그중에서도 기후위기와 인문학적 내용은 더욱 제한적이었다. 대학의 경우 자연과학, 공학, 사회과학 관점에서는 기후위기 관련 신설학과나 교과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인문학과 연계한 기후위기 교과는 매우 제한적 수준이다. 융합을 내세웠으나, 여기엔 과학기술적 융합이 바탕이 되고 있다. 기초교육과정과 대학교육 모두에서 점진적 교과 확대가 요구되며, 장기적으로는 석·박사급 과정에서도 기후인문학적 역량 배양이 실현되길 기대한다. 

기후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미래세대 양성에서 더 나아가, 기후인문학 전문가 양성을 지향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의 양성은 인문학 분야와 기후위기 분야에서 인적수요를 고려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영역의 발굴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만, 독자적인 ‘기후인문학’만을 전공하는 전문가의 수요보다는 기후 융합 전공자의 미래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며,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융합학자 및 전문가를 양성하고 활용하는 체계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 결론

기후변화를 연구해온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기후변화 담론에 인문학적인 성찰과 지혜가 또한 필요하며, 인문학적 담론이 과학과 정책이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동감한다.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이제 그 원인과 해결을 이야기할 때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을 모르고서는 기후 변화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과학과 정책은 지구온난화의 진행은 이야기할 수 있고, 국가 간 협력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왜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지, 그 안에 작동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간은 더 느리게 가거나 멈출 수 없는 것인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인간의 태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인문학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러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인문학자들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활동가들(activists)이었다. 인문학자들의 역할이라고는 활동가들의 비판적 의식의 기반이 되는 이론들을 제공해준 일, 즉 매우 간접적인 역할이었다. 이제는 인문학자들의 역할이 점점 더 직접적이고 의도적일 필요가 있다. 

‘기후인문학’이라는 카테고리의 등장은 그러한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카테고리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는 학자들이 자신들의 전공에만 갇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공의 인문학자들과 상호 교류하며 인문학적 성찰이 주는 통찰을 더욱 많이 발전시키고, 깊이 있게 만드는 장을 제공할 것이다. 

 

■ 정책제안

▶ 기후인문학의 학문화 기반 조성

기후인문학의 연구·교육 활성화와 정책적 연계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제 내에서 학문화 기반이 조성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새로운 분과로서의 학문화와 기후변화 학제에서의 새로운 분과로서 학문화, 두 가지 노선(Two Track)에서 학문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 인문학 연구진흥과 융합인문학 활성화의 일환으로 ‘기후인문학’ 육성

인문학 진흥계획에서 강조한 ‘인문학 중심의 융합연구’의 일환으로 ‘기후인문학’을 육성할 것 을 제안한다. 이는 기존 연구지원사업과 연계하여 효과적으로 추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국연구재단의 분류체계에서 인문학 내 ‘융합인문학’ 등의 연구분야 신설 등 연구기반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 융합인문학 전담기관의 설립 및 운영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소관연구기관에서도 기후인문학을 비롯한 융합인문학을 도외시하지 않고, 지속적인 인문학 기반 융합연구를 추진 및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기후인문학과 같은 미래지향적 인문학 혹은 융합인문학 진흥을 위한 전담기구의 신설과 인문학 진흥정책 수립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 교육과정에서 인문학적 기후위기 교육 실현

기초교육과정과 대학교육 모두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담은 기후위기 교육의 점진적 확대를 제안한다. 기초교육과정의 ‘문학’과 ‘윤리’ 등의 교과 내에서 ‘기후문학’과 ‘기후윤리’가 다뤄질 수 있으며, ‘환경’ 교과에서 기후위기 문제와 인문학적 연계를 폭넓게 담은 교과 개선이 필요하다. 대학 교과에서는 기초 혹은 필수 교양수업을 통해 ‘기후인문학’ 교육 실현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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