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사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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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서사를 논하다
  • 반재유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국문학
  • 승인 2022.05.1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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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근대서사와 「황성신문」 (1898~1910)』 (반재유 지음, 소명출판, 292쪽, 2022. 03)

 

『황성신문』은 1898년 3월 2일 『경성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사장인 윤치호(尹致昊)와 사무원 정해원(鄭海源) 등에 의해 발행된 『경성신문』은 11호(1898년 4월 6일자)부터 『대한황성신문』으로 제호가 바뀌었으며, 동년 9월 5일부터 남궁억(南宮檍)이 판권을 물려받으면서, 비로소 『황성신문』이 탄생하였다.

한일병합조약 이후, 일제가 '대한(大韓)', '제국(帝國)', '황성(皇城)' 등 독립을 상징하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황성신문』은 1910년 8월 30일자부터 『한성신문』으로 제호를 바꾸면서 발행을 이어갔다. 결국 경영난 등으로 인해 같은 해 9월 14일자로 폐간하지만, 『황성신문』이 이어간 약 12년의 기간 동안 대한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의 서사들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근대서사와 황성신문(1898∼1910)』은 다양한 서사들이 전개되었던 논설과 소설, 그리고 잡보 기사들에 주목한 것이며, 해당 작품과 기사들의 흐름 및 특징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전통서사와 맞닿아있는 근대초기 서사문학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근대매체 「소설」란의 발생이 단순히 서구나 일본 정론지의 영향뿐만 아니라, 전통 산문양식의 차용과 변용 및 독자층의 확대, 국내 출판운동 등의 내적 준비과정을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황성신문』의 서사문학을 크게 단형서사와 장형서사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였고, 「소설」란의 발생 이후 전개되는 근대 서사문학의 양상에 대해서도 조망하였다. 논변류고사를 비롯하여 독후설, 고사 연재물 등의 단형서사가 출현하고 변모되는 과정 속에서, 「소설」란에서는 한문현토소설(신단공안), 「잡보」란에서는 서사적기사(별계채탐) 형태의 장형서사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장형서사의 경우 작품의 시대적 배경 및 인물 설정이 실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기존 문헌설화의 화소(話素)도 삽화(揷話)나 일화별 제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원혼소재 등을 배제‧변용하여 보다 합리적인 해결책과 개연성 있는 송사과정을 그리기도 하고, 실제 사건을 채탐하여 서사문학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신단공안」의 경우, 과거 평비본(특정 구절에 감상과 비평을 가한 작품)에서 찾기 힘든 속화된 내용의 협비(夾批)와 국문으로 이루어진 한글협비라는 독특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 문예양식을 근대 매체 속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예로, 주필의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개진했던 기존 단형서사보다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이며, 신문사에 처해진 경영난이나 일제언론탄압 등의 내‧외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서에서 주목한 단형서사와 장형서사의 전개과정 외에도 한문현토소설과 한글소설의 존재 및 한글협비, 원권(圓圈), 방점(方點), 연점(連點) 등의 표기방식은 근대 서사문학의 내적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료로서 『황성신문』을 거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해당 논의들은 근대소설의 발생·형성 과정이라는 문학사연구의 중심과제와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의 단형서사와 장형서사가 상호 영향관계 속에서 발생‧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906년 「소설」란의 등장 이후로 국내 시평(時評)과 해외풍속기사로 이어지는 단형서사의 흐름에도 주목하였다. 해당 기사들은 전통적 소화 형식이 근대매체를 통해 시평으로 변화된 면모와 함께,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출판운동의 흐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연재물이다. 앞서 『황성신문』의 집필진들이 단형서사와 장형서사를 통해 「논설」란·「소설」란 등을 풍성하게 만들었듯이, 국내시평과 해외풍속기사의 다양한 언술형식도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생산된 새로운 서사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껏 『황성신문』의 서사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존 『황성신문』의 논의들은 대부분 신문에 연재된 개별 작품에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연재물간 표기수단·문체·주제의식 등의 유기적이지 못한 혼란함이 지엽적인 연구의 흐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면모는 근대 전변기에 전개된 서사문학의 공통된 흐름이자 특징으로, 전통의 굴절과 다층적 전개과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시기의 서사문학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면 속에서 발생과 분화, 소멸을 반복했던 서사문학의 존재와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검토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본서가 근대 초기(1898∼1910) 다채로운 서사문학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텍스트로서, 『황성신문』을 선정한 이유이다.


반재유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국문학

연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역서와 자료집으로는, 『근대지식과 조선-세계 인식의 전환』, 『모시명물도설』, 『시사총보 논설자료집』(이상 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황성신문 고사연재물의 저자규명 시론」, 「경남일보의 삼강의일사 연구」, 「근대신문 소재 해외풍속기사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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