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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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본질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2.05.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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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규의 과학에세이]

 

감정은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상태를 말한다. 공포는 동물계의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로, 공포 감각은 신경계에 프로그램화되어 있으며 본능적으로 작용한다. 동물행동학자들은 공포를 방어 행동 또는 도피를 일으키는 특이적 자극 때문에 생기는 감정 상태라 정의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위험을 감지하거나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생존 본능인 공포반응을 보인다. 공포의 주된 기능은 위험, 위협 또는 정서적 갈등으로 작용하는 자극에 대해 적절한 적응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동물은 이전에 고통 또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의 공포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 신경생리학자인 다마시오(Antonio Damasio)에 따르면, 공포란 위협에 처한 상황에서 신체 일부분을 신속하게 변경하는 활동 프로그램으로 현존하는 위협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공포는 달팽이가 자신의 안테나 움직임을 통해 접하는 공포같이 단순하거나 인간에게 존재하는 실존적 불안같이 매우 복잡할 수 있다. 동물의 편도체 부위는 공포반응에서 고유한 역할을 한다. 시카고 대학의 클뤼버(Heinrich Klüver)와 부시(Paul Bucy)는 공포 상황에서 유발된 ‘레서스 원숭이’의 공격성이 편도체 절제술 후 극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이 절제술로 유발된 변화와 이상행동을 집단으로 <클뤼버-부시 증후군>이라 하였다. <클뤼버-부시 증후군> 원숭이들이 보인 정서적 변화의 특징은 공포와 공격성이 극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야생 원숭이는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을 피한다. 그러나 편도체 절제술을 받은 원숭이는 인간이 때리거나 잡아끌어도 가만히 있고, 평소 두려워하던 동물 앞에서도 여유를 보이며, 공포와 관련된 목소리와 표정도 감소한다. 다른 실험동물에서도 편도체 제거로 인한 공포의 인지와 표현 능력의 저하가 관찰되었다. 

 

한편, 실험동물의 편도체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자극받은 편도체 부위에 따라 각성과 주의력이 증가하였다. 예를 들어 고양이 편도체의 외측부를 자극하면 공포와 공격성이 모두 증가하였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편도체에 전기자극을 가하면 공포심이 야기되었으며, <클뤼버-부시 증후군> 원숭이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편도체에 병변이 있는 인간에게서도 동일하게 관찰되었다. 이것은 <기능적 뇌 영상>을 통한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는데, 피험자들에게 중립 자극, 행복해 보이는 표정과 두려워하는 표정의 얼굴을 보여주고 뇌의 활성도를 비교한 결과, 중립 자극보다 두려워하는 표정의 얼굴을 보여주었을 때 편도체 반응이 더 높게 나타났다. 

다윈(Charles Darwin)에 따르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들은 그들의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하고 결국 ‘자연의 전쟁’에서 희생자가 된다. 자연선택은 주어진 환경 내에서 특정 종의 생존에 관련된 행동들을 최적화하여 적응도를 증가시킨다. 포식자로부터의 회피와 자원고갈 같은 평형 유지력의 위협이 생존 행동을 최적화하는 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 생존 행동은 위협에 대응하는 적응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적응 능력은 동물의 전 생애에서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동물은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자신의 생존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응한다. ‘포식자-피식자 무기 경쟁’을 통해 생존 행동 특성은 포식자와 피식자 모두에서 공진화한다. 기후변화, 질병, 자원의 이용 가능성, 외래종의 이주 같은 환경적 압력이 피식자의 지각, 주의 그리고 의사결정에서 빠른 경로를 형성하는 인지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 역시 공포에 대한 적응을 촉진하는 신경계에 의해 부여되는 강력한 지적 생존기작을 갖고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에서 자기성찰뿐만 아니라 감정적 사건에 대한 기억도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은 사회적 경험이나 고통스러운 기억 같은 <공포 학습>을 통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특정 행동을 회피하려고 한다. 공포 기억은 신속하게 형성되고 오래 지속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경우, 외상 경험으로 인한 공포는 수년에서 평생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편도체는 공포 자극에 대한 학습 중추이다. 참사와 테러 같은 공포와 연관된 감각과 기억은 특정 상황이 인지적으로 결합한 개념이다. 공포는 의식적 경험과는 개념적으로 구분되는 특이적이고 기능적인 특성을 갖는 정신적인 상태이다. 공포는 <격투-도주 반응>에서 최적의 실행을 이끄는 통제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 선천적 공포는 인간이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동물과 마주치거나 설치류가 맡는 포식자 냄새같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 자극에 반응할 때 표출된다. <파블로프식 공포 조건화>에서 연구된 공포연상은 한 번의 시도로도 학습되며 강하게 부호화하고, 재생되어 다수의 기억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인지에서부터 호흡작용까지 뇌의 다른 모든 작용을 종속시키기 때문에 사회의 독재자와 유사하다. 시민사회에서 대중이 장기간 공포에 노출되면 파시즘적 독재정권이 출현할 수 있다. 전쟁 같은 국가적 위기와 테러리스트의 공격 등은 인간을 공포 상태에 머물도록 하여 사고를 멈추게 한다. 공포와 수반되는 감정적 공황은 이성적인 사고를 행하는 부위인 전전두엽 피질 또는 다른 뇌 부위를 폐쇄한다. 즉 공포 상태에 놓였을 때 인간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며, 사고를 멈춘 대중은 시류에 휩쓸리게 되고 쉽게 조종되며 통제된다. 국가나 사회 조직에서 수적 우위의 과시 수단인 다수결 역시 공포심의 극적인 발로라 할 수 있다. 철저한 자기성찰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공포를 실존을 위한 에너지와 창의성의 원천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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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라 2023-09-13 14:38:50
생물학 지식을 잘 읽었는데 결론이 뜬금 없네요. 갑자기 결론에 사회학 용어를 연결 시켜서 다수결을 공포심의 발로라 폄훼 하신 것은 글의 흐름상 부자연스럽고 올바르지 못한 표현입니다. 중우정치에 빠질 수 있는 다수결의 원칙의 위험성을 말씀 하려고 하신 듯 한데 그것은 별도의 글로 다루어야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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