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선생의 날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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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선생의 날 축하해”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
  • 승인 2022.05.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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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10인분 밥 하라고 준 곡식을 마치 열과 성을 다할 듯이 받아 놓고서, 5인분만 해놓고 모르쇠 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하다. 요즘 언론과 대학가에 난무하는 얘기가 그렇다. 정·재계는 물론이고 교육계의 종사자들까지도 “발가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질량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거하여, 권력과 소유와 성공에 대한 ‘욕심 보존의 법칙’을 치밀하게 고수해온 인사들을 보며 자문하게 된다. 욕심의 종류와 크기만 달랐지, 나도 그리 살아왔잖은가? 스스로 믿는 신념과 가치관이 곧 자신이 실천해온 삶이라고 착각하는, 거의 모든 ‘지식인’이 빠지는 덫에 갇혀있지 않은가? 

“너 선생의 날 축하해.” 예전에 한 외국인 유학생이 스승의 날에 보내온 문자다. 이국땅에서 첫 스승의 날을 맞아, 서툰 한국어로 인사한 마음이 고마웠다. 수년 후 이 학생이 일취월장한 한국어 실력으로 통역을 수행했을 때는 더욱 감동했다. 하지만 선생으로서 나는 실제로 경어가 불필요한 상대처럼 미흡했을 수 있다. 요즘도 내가 존중받는(존경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님에) 것이 선생으로서인지, 아니면 퇴직을 수년 앞둔 노약자로서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스승의 날을 맞아 지식을 전수해주신 고마우신 스승님들 외에, 삶의 스승이 되어준 분들을 새겨본다. 특별히 여성 멘토 두 분을 생각하게 된다. 

한 분은 1987년 미국 유학 첫날에 만난 에드나 베네트 (피어스)(Edna Bennett Pierce) 여사다. 기숙사 신청서류가 이상하게 두 달이나 걸려 방 배정 후에야 도착해서, 델라웨어대학에서 긴급 소개한 호스트 패밀리로 만났다. 방 구하기까지 몇 일간 함께 지낸 후에도 십수 년간 베네트 가족과 매번 모임과 명절을, 나중에는 아예 함께 거주하며 보냈다. 처음에 겸연쩍어하는 외국인을 허그로 반기고, 저택 크기를 얕보고 정문에 가서 신문 주어오기를 자청해 30분 걸려서 돌아왔을 때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델라웨어,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주의 3개 대학에 수백억 원 상당의 건물, 석좌교수 기금, 장학금을 기증하고는 정작 본인은 수십 년 된 옷을 입고, 음식물 쓰레기로 직접 퇴비를 만들어 15만 평 정원 곳곳을 손수 가꾸며, 수십 년 연식의 낡은 차를 몰면서 수동 핸들을 돌려 차창을 열고 닫았다. 인문사회 전공 외국인 유학생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연구비 7개를 연속 수령한 후 학자금이 떨어졌을 때, 대학에 익명으로 내 조건에 맞춤형으로 기증하고는 장학금 탔다고 좋아하는 나를 축하해주셨다. 훗날 사실을 알게 되어 숨긴 이유를 묻자, 혹여 내 자존심이 상할까봐서라고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서, 자선재단을 세워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온 분이다.   

또 한 분은 2004년에 작고하신 테레스 헤이먼(Therese Heyman) 여사다. 1994년 워싱턴 DC  스미소니언박물관에 펠로우로 간 직후에 혼자 점심 먹다가 만났다. 60대 중반의 부인이 곧잘 같이 앉아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다. 카페테리아를 채운 수백 명의 백인, 소수의 흑인 가운데 내가 유일한 아시아인이기에 그랬을까? 자신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미술관에서 근무하다가, 대학 퇴직 후 DC로 온 남편 따라 이직한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소개했다. 두어 달 후 어떻게 장관 부인과 친한지 묻는 동료 질문에, 비로소 그분이 전 UC 버클리대학 총장이자 당시 20여개 스미소니언기관 총 책임자인 마이클 헤이먼 장관의 부인임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격의 없는 소통을 계속했다. 거주하던 내 아파트에 문제가 생기자 서슴없이 장관 관사에서 한 달간 살게 했고, 삼십여 명의 장·차관과 상·하원의원, 재계·학계 인사 초청 송년파티에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참석해서 한국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왜 명성과 권력과 부를 한껏 누릴 수 있는 그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별로 득 될게 없는 한국인 유학생을 직접 돌보는 번거로운 일을 자처했을까? 바쁜 인생 길 가운데서 낯선 외국인 이방인에게 스스럼없이 멘토 역할을 자처해준 두 분 스승을 마음에 새긴다. 처음 만났던 당시의 그분들 나이에 근접한 나는 교수임에도 캠퍼스에 홀로 있는 외국인에게, 아니 자국 학생에게 다가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지 자문한다. 교직에 몸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라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정을 시작한 지 벌써 수십 년이건만 아직 도착지가 가마득하다. 걸음을 재촉해야겠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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