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연구자단체들, “학문 생산과 오픈액세스 운동을 왜곡하지 말고 한동훈 후보자는 즉각 사퇴하라”
상태바
교수·연구자단체들, “학문 생산과 오픈액세스 운동을 왜곡하지 말고 한동훈 후보자는 즉각 사퇴하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5.08 2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명 발표]

한겨레신문이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논문을 케냐 출신의 대필 작가가 작성했다는 진술 관련 정황이 나왔다”고 8일 보도했다.

지난 2월 SSRN에 등록된 한 후보자 딸 논문 ‘국가 부채가 중요한가-경제이론에 입각한 분석’ 문서정보에 따르면 ‘지은이’ 항목에 Benson(벤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인물을 추적한 결과 자신을 ‘노련한 대필 작가’라 소개했고, 그가 지난해 11월 초 해당 논문을 작성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 후보자는 딸의 논문 대필 의혹에 대해 “논문이라고 보도된 글은 논문이 아니다”라며 전면 부인했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온라인 첨삭 등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3페이지(참고문헌 표기 포함 시 4페이지)짜리 연습용 리포트 수준의 글”이라며 “고교생의 학습 과정에서 연습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로 입시 등에 사용된 사실이 없으며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사에서 ‘해외 학술지’로 언급된 ‘ABC Research Alert’는 오픈액세스 저널”이라며 “‘SSRN’은 ‘심사 전 논문 등의 저장소’로 각종 논문, 리포트, 에세이 등을 누구나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등 교수·연구자단체들이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한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자녀의 입신양면을 위해, 학술생태계를 파괴하는 약탈적 학술지를 적극 활용하는 그 행태가 과연 법무부장관에 적합한 변명인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의 자녀 논문 의혹과 그 해명에 대한 연구자 규탄 성명】

 

학문 생산과 오픈액세스 운동을 왜곡하지 말고 
한동훈 후보자는 즉각 사퇴하라 


눈앞으로 다가온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우리 연구자들은 한동훈 후보자의 딸이 발표한 ‘논문’ 의혹과 그에 관한 후보자 측의 해명에 대해 경악한다.


1.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후보자 측은, 일부 언론이 “‘논문’이라고 허위 과장해 언급한 글들은” “에세이, 보고서, 리뷰 페이퍼 등을 모아 올린 것”이며, “해당 ‘오픈엑세스저널’은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게재가 완료되는 사이트로, 한 후보자의 딸이 재학 중 장기간 작성해 온 글을 전자문서화하기 위해 업로드한 것이다. 석·박사 이상만이 작성할 수 있는 것으로 연상되는 ‘논문’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형적인 왜곡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 해명은  큰 문제를 안고 있으며 궤변에 불과하다. 

예컨대 한 후보자의 딸의 논문이 3편이나 실린 모 전자저널은 자신의 사이트에 올라 있는 홍보 동영상에서 논문 투고 과정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들지 않고 비용도 단돈 미화 50달러에 불과하다고 선전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부실 학술지, 즉 가짜 학술지, 혹은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의 행태이다. 이런 학술지와 그에 돈을 내서 기고하는 행위가 얼마나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고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지 한 후보자와 그 가족들이 아는지 궁금하다. 

어떤 논문을 제대로 된 학술지에 정식으로 게재하려면 심사위원들의 공정하고 양심적인 학문적 심사가 필요하다. 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대기 시간이 ‘제로’라고 자랑하는 일은 사실상 심사가 없거나 부실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해당 학술지는 자신이 ‘Asian Business Consortium’이 후원하는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학술저널이라고 강변한다. 논문 제출의 경험이 없는 일반시민들도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왜 한 후보자의 딸이 이런 저널에 다량의 글을 모아 올렸을까? 이런 사이비성 전자저널에 실린 논문 아닌 논문이 어떻게 한 후보자 딸의 진로에 도움이 되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행태 속에 많은 의혹과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2. 

또 우리 연구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한 후보자 측의 해명과정에서 나온 ‘오픈액세스 저널’에 대한 무지와 왜곡이다. 전자정보혁명으로 인쇄학술지가 전자저널로 대거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미 20여년 전부터 해외에서는 오픈액세스(Open Access) 운동이 발전해왔다. 오픈액세스 운동은 대형 학술 출판사들이 전자저널 출판을 독점하여 개인 연구자와 대학도서관 등에 높은 구독료를 강요함으로써 연구자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지식과 정보를 사유화하여 그 공공성 실현을 막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최근 유럽과 북미의 대학들은 오픈액세스 전환계약을 연달아 체결함으로써 큰 진전을 거두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최근 오픈액세스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오픈액세스 저널’은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학술지로서 해당 분야에 전문가에 의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는 점은 여느 학술지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오픈액세스 저널’은 결코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기고가 완료되는 사이트”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오픈 액세스 저널’을 이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고 국내외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약탈적 학술지의 잘못된 행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이비 학술지들은 몇 년 전에 언론의 탐사보도로 크게 사회적 문제가 된 와셋(WASET), 오믹스(OMICS) 등의 가짜 학회와 다를 바 없으며, 실제 이런 학회와 학술지들이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된 연구비를 낭비하며 고등교육기관과 학문 생태계가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파괴하여 대학과 학술계를 병들게 함으로써 결국 국가와 시민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독버섯이다.   

우리는 지난 십수 년간 수많은 고위 공직후보자들이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가 드러나 낙마하거나, 심지어 그런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을 수행하는 참담한 현실을 겪어왔다. 오로지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 연구자로서 우리는 더 이상 이와 같은 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 딸의 표절과 ‘논문’ 게재 등의 의혹과 그에 대한 해명에 비춰볼 때 한동훈 후보자는 나라의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법무부장관 후보자로서 완전히 부적격이다. 

 

2022. 5. 8. 


새로운 학문 생산체제와 지식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연대(지식공유연대),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2.0), 지식공유 연구자의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인문학협동조합 (무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