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국가, 그리고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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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국가, 그리고 아나키즘
  • 김동일 경상국립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5.08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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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스트레스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이나 압박에 대한 반응이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소극적으로는 자기를 방어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의사와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면 불면증 및 불안 등의 정신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고,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폭력 및 범죄 등의 사회적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개인적 또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초래하는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이미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둘째,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나 압박을 관리하기. 첫째 방법은 개인적으로 개인의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둘째 방법은 개인이 제어할 수 없으므로 사회가 관리해야 하는 방법이다. 물론 외부의 상황이나 변화를 위협이나 압박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개인의 판단이지만, 외부의 상황이나 변화 자체는 개인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관리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의 원인으로서 외부의 위협이나 압박은 당사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나 의사를 무시당하는 것, 그리고 자유의지의 좌절이나 이성적 판단의 실패까지 포함한다.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보다 강력하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나 의사를 무시당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자유의지가 꺾이고 이성적 판단이 무력화될 때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한다.

국가의 권력은 최고로 발휘될 때 심지어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하기도 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병역을 소집하기도 한다. 일단 세워진 국가의 위계적 권위는 우리의 의사나 이성적 판단과 무관하게, 때로는 거슬러서, 다양한 법률을 강제하고 집행한다. 국가가 우리의 사회적/정치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자연적 자유를 제한할 때 우리의 자유의지는 알게 모르게 크게 좌절된다. 

국가는 필요악이라고 한다. 또는 인간의 성숙을 위해 필수라고도 한다.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보다 국가상태가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에서 받는 자연적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 국가상태에서 받는 정치적 스트레스를 선택하는 것은 계몽적이고 합리적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적어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는 계몽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이런 뜻에서 아나키즘은 계몽적이고 합리적이다. 

아나키즘은 위계적 권위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개인성과 자율성을 최고로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협력적 공동체를 추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인성은 동료 인간을 존중한다고 본다. 그리고 협력적 공동체 없이는 자율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가 거부하는 것은 협력적 공동체가 아니라 위계적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다.

아나키즘은 불온하지 않은가? 위계적 권위를 특징으로 하는 국가 안에서 특권을 누리거나 노리는 사람에게는 아나키즘이 불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개인성, 주체성, 그리고 자율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불안해서 그것을 국가에 맡기는 사람도 아나키즘은 불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국방, 사회질서, 그리고 법제도 등을 제공하는 국가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나키즘은 불온할 수 있다.

그러나 위계적 권위를 가지고 비겁하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생각이 없고 그런 지배를 받을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는 아나키즘이 반갑다. 다른 사람의 전문적/합리적 권위를 진지하고 시원하게 인정하면서도 인간적 지위상으로는 서로 대등하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아나키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개인성을 누리고 주체성과 자율성을 책임 있게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은 국가가 없어도 무질서와 혼란이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위계적 권위와 지배의 정치를 필요로 하는, 천사가 아닌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의 현실에 아나키즘은 맞지 않을 수 있다. 홉스가 지적했듯이,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에서의 삶은 고독하고, 불쌍하고, 끔찍하고, 야만적이며, 짧게 끝날’ 수 있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언제든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러나 국가가 있는 지배상태에서의 삶은, 프루동이 지적했듯이, ‘감시받고, 지시받고, 규제받고, 통제받고, 검사받고, 검열받고, 명령받는’ 삶이다. 인류 역사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수행된 전쟁의 희생자가 더 많을까, 아니면 아나키 상태에서 발생할지 모를 희생자가 더 많을까? 톨스토이는 ‘아나키의 혼란은 정부가 사람들에게 초래한 오늘날의 상황보다 나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자연상태가 끔찍할 수 있다면, 국가의 지배상태는 더 끔찍하다는 것이다. 아나키 상태가 두려울 수 있다면, 국가의 지배상태는 더 두렵다는 것이다. 

홉스의 자연상태 묘사는 가설적이고, 프루동의 지배상태 고발은 현실적이다. 끔찍한 자연상태라는 가설과 허구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더 끔찍한 지배상태의 현실과 사실에서 시작할 것인지는 학문의 자유를 가지고 선택할 문제다. 선택에 도움이 될만한 사실 한가지는, 인간은 천사가 아니지만 동물도 아니어서 인간의 고유한 특질인 자유의지와 이성적 판단을 발휘하라는 도덕적 요청이 있다는 것이다.


김동일 경상국립대학교·정치학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인 김동일은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의론과 의무론의 이론적/실천적 연구에 관심이 있으며, 정치철학 교육을 위한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 연구로는 ‘정의로운 분배를 위한 포괄적 원칙’, ‘자유, 권리, 그리고 의무의 개념적 관계’, ‘고전 유교 분배 정의관의 특징과 의미’ 등의 논문과 단행본 『삶의 정치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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