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권 … 중국과 한국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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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권 … 중국과 한국 (7)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5.08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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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지구는 공 모양을 하고 있어 누구나 자기가 사는 곳은 중앙이라고 하고, 먼 곳은 변두리라고 여길 수 있다. 변두리는 방위로 지칭해 동서남북 네 곳에 변방 또는 지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무랄 이유가 전연 없다. 이것은 누구나 대등하게 가질 수 있는 생각이며,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중앙과 변방의 구분이 가치의 등급이라고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자기가 사는 곳인 중앙은 우월하고 변방은 열등하다. 변방이 중앙을 위협하고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변방을 정복하고 통치하는 것은 칭송받아 마땅한 위대한 업적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차등론의 과오를 저지르고, 남들에게 상처를 입혀 원망의 대상이 된다. 

중앙의 자기는 위대하므로 저열한 수준에 있는 변방의 상대방을 정복하고 통치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런 주장이 맞부딪치면 말싸움으로 결판을 낼 수 없고, 전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 세계사를 피로 물들였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패권주의자들이 아직 있어, 인류의 이름으로 규탄하고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사방의 적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그 중간에 사는 약자의 비애이면, 말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사방의 적을 물리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 티베트의 민족서사사 <게사르>(Gesar)에서는, 동서남북 사방 적의 위협에서 가련한 티베트 백성을 구해주려고 위대한 군주가 천상에서 하강했다고 했다. 동적은 중국, 서적은 이란, 북적은 투르키스탄, 남적은 인도라고 이해한다. 이것은 노래를 지어 말한 소망이므로, 티베트인의 좌절감을 씻어내는 데 기여하고, 그 네 곳에 아무 피해도 끼치지 않는다.

중국은 거대제국의 위세를 자랑하려고,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 동이(東夷), 이 네 오랑캐를 멸시하고, 침공하고,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왔다. 이런 주장을 오늘날 새로운 논리를 갖추어 더욱 분명하게 하고자 한다. 어느 나라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지목할 것인가? 중국 천자의 책봉을 받은 나라는 지방정권이라는 말로 이 물음에 대한 가장 명백한 대답을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책봉관계는 어느 문명권에나 있던 중세 시기의 보편적 수교 방식이었다. 그 내역을 보면, 천상의 지배자와 천자, 칼리파, 교황 등으로 지칭되는 지상의 대리자가 한 가닥으로 연결되고 여긴 점에서는 종교적 차등론이지만, 지상의 대리자를 매개로 천상과의 연결을 나누어 가진 모든 나라는 주권이 공인되는 대등론의 관계를 가졌다. 중국 천자의 책봉을 받은 나라는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실제의 사례이다. 

중국이 월남의 주권을 부정하고 침공하면, 월남은 영웅적인 투쟁으로 독립을 되찾고 책봉관계를 쟁취했다. 그런 월남이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도 책봉을 받았으므로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하면 더 이상하다. 서양 각국도 중국과 통상을 하기 위해 중국에서 요구하는 책봉관계를 받아들였다. 중국과 교역한 나라는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면 누구나 웃는다. 

그래서 말을 바꾸었다. 오늘날 중국 강역 안에 있던 모든 나라는, 중국 강역 안팎에 걸쳐 있던 나라까지도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한다. 크게 확대된 오늘날의 강역이 과거 모든 시기에 소급해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반론은 무시한다. 오늘날 “중국의 어느 지방에 있던 정권”이라는 말을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고쳐, 단순한 사실 판단을 받아들이면 자기네의 가치 판단에 동조하게 하는 함정을 만든다. 

차등론에 입각한 패권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 조작을 간교하게 한다. 그 결과 남월, 토번, 남조, 돌궐, 위구르, 몽골 등과 함께 고조선, 고구려, 발해도 중국의 지방정권 명단에 올렸다. 이들 지방정권이 중앙정부를 공격한 것은 분열을 책동하는 반역이고, 중앙정부가 이들 지방정부를 공격한 것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의거였다고 한다. 중국 중심의 역사관이 정당하다고 하면서 패권주의를 찬양한다.  

자기 강역 안에 있거나, 자기 강역 안팎에 걸쳐 있는 나라는 모두 자국의 지방정권이므로 그 역사는 자국사이고, 자국이 지배력을 행사한 역사라고 하는 것이 중국만의 특권인가? 어느 나라에서든지 인정되는 보편적인 원칙인가? 이런 물음을 정면으로 제기하면, 그것은 중국만의 특권이 아닌 보편적 원칙이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가야, 백제, 고구려 등은 신라의 지방정권이고, 그 역사는 신라사인가? 월남 중부에서 월남과 오래 싸우던 참파(Champa)는 월남의 지방정권이고, 그 역사는 월남사인가? 오늘날의 터키 강역 안에 있던 비잔틴(Byzantin)제국은 터키의 지방정권이고, 그 역사는 터키사인가? 오늘날의 스페인 강역 안에 있던 이슬람왕국은 스페인의 지방정권이고, 그 역사는 스페인사인가? 월남은 중국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도, 터키나 스페인은 전연 그렇지 않다. 비잔틴이나 이슬람왕국의 독자적인 역사를 훼손하고 격하해 자국이 돋보이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편적 원칙이 자국 칭송보다 우선한다고 여기는 정상적 사고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나라나 그 역사는 각기 따로따로인 것만 아니다. 서로 관련을 가진다. 한국은 동아시아문명권의 중간부이다. 중심부인 중국과 주변부인 일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에서 하는 말과 전연 다르다. 문명사의 실상과 국가의 지리적 분포와 함께 사실 그대로 말한다. 북쪽에는 몽골이, 남쪽에도 월남이 있는 것을 살피면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것 또한 우열 평가와는 전연 무관한 사실 자체에 근거를 둔 견해이다. 
 
중심부ㆍ중간부ㆍ주변부는 차등의 관계에 있지 않다. 중간부가 일방적으로 앞서다가 중간부가 대두해 우열이 역전되고, 다시 주변부가 주도권을 잡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 모든 변화를 함께 고려하면, 중심부ㆍ중간부ㆍ주변부는 대등하다. 중간부는 중심부와 주변부에 대등한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추이를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인식에서는 앞설 수 있으나 이것이 중심부나 주변부를 낮추어보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차등론인가 대등론인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차등론에 의거해 자국을 높이려고 해서 중국은 빗나간다. 큰 나라는 빗나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여겨 차등론을 더 악성으로 만드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차등론을 버리고 대등론을 받아들이면, 진실이 보이고 평화가 이루어지는 두 가지 엄청난 축복이 찾아온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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