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인류세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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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인류세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0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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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세와 기후위기의 大가속 | 이별빛달빛 엮음 | 윌 스테픈·자크 그린발·파울 크뤼천·존 맥닐·파비앙 로셰 외 16명 지음 | 한울아카데미 | 320쪽

 

기후위기와 인류세는 처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면서 ‘대가속’의 궤적을 만들어 왔다. 이 저술을 편찬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동안 이 두 거대 담론을 분리한 채로 논의하다 보니, 인류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해 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적 힘, 방식, 속도로 ‘어머니 지구’를 혹사시킨다면,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기후위기와 인류세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융합 학문적인 접근과 인식을 요청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연사, 지구과학, 과학기술사, 문학, 역사학, 정치경제학, 환경사, 외교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 저술의 필자이며 번역자라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Part 1. 과거, 현재,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는 두 편의 글을 통해, 인류세와 기후위기의 개념이 무엇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서로 연관되면서 정립되었으며, 과거와 현재는 인류의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회자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던 노벨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 기후학자인 윌 스테픈, 과학사학자 자크 그린발, 환경사학자 존 맥닐이 함께 쓴 「인류세: 개념적, 역사적 관점」은 인류세가 산업혁명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 인류의 여러 문명적 장치들이 인구의 폭발, 기후위기, 생태계의 파괴를 더욱 가속시켰다고 논의했다. 약 70년간 일어났던 이러한 대가속의 결과, 어머니 지구는 더 이상 인류와 생태계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저자들은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을 지향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의해 생태환경이 전 지구적으로 훼손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랑스의 기후 역사를 전공하는 파비앙 로셰와 장바티스트 프레쏘가 쓴 「기후의 역사에 대한 성찰적 근대성」에 의하면 18~19세기 전반기에 살았던 근대인들의 자연과 기후에 대한 인식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과 사회 사이의 조화롭고 유기체적인 세계를 지향했다. 이런 기후 패러다임은 19세기 후반기에 붕괴되기 시작했다. 서구에 의한 전 지구적 열대의 식민화와 ‘오리엔탈리즘’이 이를 추동시켰던 물질적, 이념적 힘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물학과 의학, 농학, 지구과학, 지리학, 경제학, 사회학이 근대적 학문 체계로부터 ‘기후 담론’이 빠져 버린 현대적인 지식 체계로 어떻게 각각 변해 갔는지를 흥미롭게 논의했다. 이 글은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 상상력을 촉발시키는데, 바로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재귀적(再歸的) 순환관계(reflexivity)’-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성찰을 강력하게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인류세에 관해 서로 대립된 견해를 보여 주는 두 편의 글을 포함한다는 데 있다. 저명한 생태사회주의자인 안드레아스 말름과 인류생태학자인 알프 호른보리는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가 쓴 「역사의 기후: 네 가지 테제」를 논박하기 위해 「인류의 지질학? 인류세 서사 비판」을 썼다. 그리고 차크라바르티는 스웨덴의 이 두 학자가 쓴 글을 반박하기 위해 「기후변화의 정치는 자본주의의 정치를 넘어선다」를 썼다.

말름과 호른보리는 인류세 개념 자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기후위기로 인해 온 지구가 재앙적 상황을 맞게 되면,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구명보트가 없다”는 차크라바르티의 논점을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인류세를 주창하는 학자들은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사회로 무리하게 확장한다. 기후위기를 인류세의 가장 두드러진 징후로 간주하는 두 저자는 사회관계가 자연조건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차크라바르티는 “기후위기가 자본주의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말름과 호른보리의 비판에 대해 재반론을 하고 있다. 그는 인류세를 제대로 탐구하려면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범주 못지않게 생물학적 ‘종’의 범주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크라바르티에 의하면, 기후위기는 인류를 포함해서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다. 

‘Part 2. 내가 사는 지역과 지구는 하나다’는 아시아, 서구, 러시아에서 인류세와 기후위기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망하면서,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내 삶’이 결국은 전 지구적인 생명과 하나임을 보여 주는 데 의의가 있다.

고고인류학자인 마크 J. 허드슨은 「아시아를 인류세에 자리매김하기」에서 서구 중심주의적인 인류세 개념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면서, 지역학으로서의 아시아 연구가 앞으로 인류세 탐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에 의하면, 화석연료를 유럽보다 훨씬 일찍 사용했던 중국이 18세기까지는 유럽보다 문명적으로 앞선 사회였음을 고려할 때, 인류세가 유럽보다 중국에서 먼저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의 논의가 빛을 발하는 까닭은, 중국의 산업화를 전 지구적인 지평에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화석연료 사용은 서구와 아프리카 등 많은 나라들이 중국 상품의 수출을 더욱 필요로 하기에 증가하고 있다. 인류세 연구에 대한 인류학적 방법론을 강조하는 허드슨이 볼 때, 한국이 속해 있는 동아시아의 사회-생태계는 전 지구적인 사회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변동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국제 외교계에서 널리 알려진 크리스핀 티켈은 「기후위기에 대한 서구 사회의 대응: 인류세의 관점」에서 현재 세계 지도자들이 만나면 으레 언급하는 탄소중립이나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의제로는 지구가 당면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논의한다. 그가 볼 때, 기후위기와 인류세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더욱 고양되지 않으면 기후재난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소비경제의 철학’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렉 브룩스와 엘레나 프라토는 「인류세와 러시아: 문학적 지평」에서 러시아에서 인류세에 관한 개념, 방법, 이론을 발달시키는 데 앞장섰던 선구자들을 소개하면서, ‘성장 숭배’의 주술에 걸린 서구의 인류세 연구자들이 러시아의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 글은 인류세 담론의 세계적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인류세와 기후위기에 대한 서구 중심적 입장은 아시아나 러시아 지역에서 비판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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