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록하는 소설가 이병주 타계 30주년 추모 특별기획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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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는 소설가 이병주 타계 30주년 추모 특별기획 연구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5.08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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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신화의 행적: 이병주 작가·작품론 | 김언종·김종회·김윤식·김주성·남송우 외 13명 지음 | 바이북스 | 516쪽

 

이병주 선생 타계 30주년 추모 특별기획 연구서다. 1992년에 타계한 작가 이병주는, 당대의 한국문학에 보기 드문 면모를 남긴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병주의 소설을 두고 우리 한국문학이 연구 및 비평과 평가의 지평에 있어서, 엄연히 두 눈을 뜨고도 놓친 부분이 있었다. 따라서 지난해 이병주 탄생 100주년에 이어 올해 타계 30주년을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추모 특별기획 연구서를 엮어 『역사와 신화의 행적』이란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작가에 대한 추모의 정(情)과 념(念)을 다하여 준비한 이 책에는 이병주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총론 8편, 역사 소재의 장편소설 연구 8편, 대중성을 가진 장편소설 연구 8편, 중·단편소설 연구 3편 등 모두 27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병주는 『산하』의 서문에서 ‘우리의 산하(山河)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단언했다. 문학비에도 새겨진 이 말은 낮에는 역사를 말하지만 밤에는 신화를 이야기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우리의 산하 곳곳에 스며 있는 통한의 역사와 수다한 이야기는 후대들에게는 엄밀한 텍스트와 시정 넘치는 설화로 기억된다는 의미일 터다. 또한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는 이병주의 또 다른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병주의 내면에는 작가 이전에 기록자라는 명징한 사명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발자크’ 이병주 문학정신이 오늘에도 유효한 것은, 창작자 이전에 글을 쓰는 기록자라는 명제를 안고 평생을 소설이라는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를 지배적 영웅이나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심의 공적 서사 양식으로 보는 이병주는 공적인 역사에서 은폐되고 침묵되어온 인물에 초점을 두어 역사를 다시 기술하고자 한다. 때문에 이병주 소설에서 소환된 개인적 역사체험 기억은 정전화된 공적 역사에 균열을 낸다.”

이병주의 글쓰기는 다양한 기록과 역사체험 기억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창작방법을 토대로 한국 현대사의 문제와 모순을 지적하고, 나아가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이병주 소설에서 개인적 기억은 선택과 조합의 과정을 거쳐 역사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수단이 된다. 동시에 공적인 역사에서 배제된 희생자들에 대한 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추모와 애도를 통해 그들을 역사적 공간으로 호출해낸다.

이병주가 문학을 통해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자료와 자신의 체험 기억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패배의 기록이나 체험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권력과 맞서 싸우는 행동과 작용이 좌절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결과를 낳게 된 과정에 관한 관심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표명하기도 한다.

“이병주는 ‘독특한 원근법에 의해 거시와 미시 사이로 유연하게 시점을 이동’할 수 있는 문학이야말로 인간의 실상을 기록하기에 적합한 담론 양식이며, 문학이 ‘인식과 감동으로써 엮어내는 자기 조명’인 동시에 ‘비참한 그대로, 추악한 그대로 그러나 맥맥한 생명감으로써 구원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병주는 객관적 기록이 기록할 수 없는 원한을 기록하기 위해 허구로서의 소설을 선택했고, 소설의 허구는 거짓으로서의 허구가 아닌 “진실을 인간적으로 번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인간의 진실을 해치지 않으면서 기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감’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이병주는 자신이 경험하고 인식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현실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소설가로서 자신의 책무라고 여겼던 때문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소설가라는 이병주에 대한 작가·작품론을 모은 이 책을 통해 진실을 인간적으로 번역하기 위한 소설을 쓴 대가의 품격을 떠올려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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