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국 우경화의 뿌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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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 우경화의 뿌리를 찾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5.08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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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칼라 보수주의: 프랭크 리조의 필라델피아와 포퓰리즘 정치 | 티모시 J. 롬바르도 지음 | 강지영 옮김 | 회화나무 | 503쪽

 

레이건과 부시, 트럼프는 현대 미국의 보수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들의 보수주의 정치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현대 미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정치 양식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정치가 미국 대중들, 특히 블루칼라의 광범위한 지지 속에서 그러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실마리를 1960~1970년대 필라델피아에서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블루칼라와 프랭크 리조의 정치에서 찾고 있다. ‘선별적 거부와 수용’, 그리고 “우리 중 한 명”이라는 포퓰리즘. 저자는 당시 필라델피아 정치의 정체를 이 두 문구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주의 정치의 지배적인 양식은 이것이 보수주의 정치인들에 의해 변용되고 확장되어 나타난 형태라고 주장한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1972년 필라델피아는 꽤 뜻밖의 인물을 시장으로 선출한다. 프랭크 리조였다. 그는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정치는 레이건, 조지 W. 부시, 그리고 트럼프와 유사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시대에 진행된 미국의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 네 사람은 모두 블루칼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문제는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그 답은 모호하게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 속에서 미국의 블루칼라는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이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이들의 주장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은 그 이전 시대처럼 인종이나 젠더 등 자신들과 다른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었지만, 어법은 이전 시대와 달랐다. 노골적인 차별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어법을 새롭게 찾아야만 했고, 마침내 ‘근면, 희생, 자기계발’이라는 블루칼라의 정체성과 자부심에서 새로운 어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근거로 ‘자격이 있는 사람’과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구분하고 사회의 정책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에 따르면 블루칼라에게는 사회적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얻은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과 달리 사회로부터 그저 ‘거저 얻기만을 바라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당연히 사회가 제공하는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베풀고 있었다. 그들은 잘못된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이런 정책들 때문에 세상이 나빠졌다며 분개했다. 이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자신들이 정한 ‘자격’ 기준에 따라 수용해야 할 정책과 마땅히 거부해야 할 정책을 제대로 선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수용과 거부’를 위한 싸움은 자기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이기적인 싸움이 아니라 부당한 세상에 맞선 정의로운 싸움이었다.

프랭크 리조는 블루칼라 출신이었다. 그는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부유하고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 정치인들과 자신을 대비시키면서 자신은 그들과 달리 블루칼라와 똑같은 보통사람임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블루칼라의 지지 속에 “우리 중 한 명”으로서 시장이 된 리조는 시장 임기 내내 ‘근면’을 통해 자격을 획득했다는 블루칼라의 정통성과 자부심을 부추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블루칼라의 반감을 자극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유지했다. 그리고 “우리 중 한 명”인 시장을 얻게 된 블루칼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더욱 대담하게 관철시켰다. 리조는 블루칼라의 요구대로 그동안 차별을 폐지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추진되어왔던 정책들을 모조리 지연시키거나 폐기했다. 그 결과 리조 시대에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차별이 심한 도시가 되었지만,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둔 승리를 서로의 공으로 나누었고, 그들 간의 충성은 상호적이었다. 

필라델피아의 블루칼라는 두 번이나 프랭크 리조를 시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민주당 후보였기 때문에 표를 준 것이 아니었다. 당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프랭크 리조가 자신들에게 보여준 말과 행동이었다. 레이건과 부시, 트럼프 때도 그랬다. 미국의 블루칼라는 이들이 공화당 후보였기 때문에 표를 준 것이 아니었다. 리조처럼 블루칼라 출신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모두 프랭크 리조처럼 ‘근면, 희생, 자기계발’이라는 블루칼라의 정통성과 자부심을 강조하고, ‘자격 없는 사람들’에 대한 블루칼라의 불만을 자극하면서 스스로를 블루칼라의 “우리 중 한 명”으로, 위험에 처한 블루칼라를 지켜줄 ‘구원자’로 자처했다. 그리고 리조처럼 행동으로 이를 보여주었다. 레이건의 “복지 여왕”, 트럼프의 “블루칼라 백만장자”, 그리고 이 둘이 공통으로 내세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1970년대 필라델피아의 블루칼라와 리조가 보여주었던 정치의 구체화였고, 여기에 담긴 ‘수용’과 ‘배제’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블루칼라는 정치적 지지로 이에 화답했다.

정규직의 고용 보장을 위해 비정규직의 차별을 인정하는 광경, 역차별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목소리,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모습, 결은 조금 달랐지만 무조건적 퍼주기라며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에 반대했던 일, 그리고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를 시민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비난하는 어느 정치인처럼 ‘우리’를 내세워 이를 부추기는 정치까지, 태평양 건너편 저 먼 대륙을 가로질러 북동쪽에 위치한 필라델피아의 50년 전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다.

이 책은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특정 형태의 보수주의 정치가 오늘날 어떻게 지배적인 지위로 올라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국의 한 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선별적 수용과 거부”, “우리 중 한 명”이라는 포퓰리즘을 포용한 이 보수주의 정치는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나타났지만, 이들의 이야기에는 지금의 한국 사회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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