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정치와 중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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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정치와 중도정치
  • 홍성민 동아대·정치철학
  • 승인 2022.05.0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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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감정구조와 한국 사회: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찾아서』 (홍성민 지음, 한울아카데미, 575쪽, 2022. 03)

 

무릇 ‘서평’이라고 하면, 학식과 덕망이 높으신 분이, 후배의 책을 읽고 생각의 모자람과 논리의 유치함을 지적하며, 칭찬과 야단을 적절하게 섞어 쓰는 글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쓴 책을 두고 날더러 서평을 쓰라고 하니 무척 당혹스럽다. 그냥 내가 선배처럼 빙의되어 나의 책을 들쑤셔 놓을까? 그래도 약간의 변명은 허락되겠지! 사실 이번 책이 575쪽이나 되는 것을 보면서 별것도 아닌 얘기를 이리도 길게 주절거렸나 못내 쑥스러웠는데, 이번 기회에 내 입장을 변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우선 “통합과 상생”이라는 부제부터 설명을 해야겠다. 한국의 학계에서 정치통합을 논할 때, 의례히 등장하는 학자가 하버마스와 롤즈였다. 전자가 합리적 의사소통의 논리를 통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사람이라면, 후자는 합당한 분배의 원칙을 통해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만든 사람이다. 그런데 난 늘 의문이 든다.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더 싸우지 않나?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일들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차라리 아무 말 하지 말고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좋지 않나? 또 무지의 베일을 덮어 씌여 놓으면 오히려 황당한 선택을 하지 않나? 현실에서는 “도 아니면 모” 식의 막가파 결정이 횡행하지 않는가 ? 난 도무지 미국식 정의론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게 롤즈이건, 노직이건, 샌들이건 다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나의 의문은 시간이 갈수록 골이 깊어져 나만의 방식으로 대답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답의 한 형식이 바로 이 책이다. 우선 난 이성적인 인간을 상정하지 않고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하버마스와 롤즈의 철학적 기반이 칸트라고 판단했기에, 칸트의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했다. 그게 바로 하이데거이다. 하이데거에게 타자는 익명성이며, 그래서 두려운 존재이다. 더구나 그들이 떠던 말들은 나에게 소음처럼 들린다. 여기서 합의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다만 존재의 깨달음은 가능하다. 그뿐이다. 하이데거는 통합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물론 후기 사상에서 시적 상상력이 인간의 마음을 열어 줄거라는 얘기는 하고 있지만 합의에 대해서 운도 떼지 않는다. 여기에서 리꾀르의 해석학이 새로운 길을 터 주었다. 리꾀르는 존재의 열림을 “자기성”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켜 도덕, 책임, 배려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분할하고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난 리꾀르를 통해 얻은 지적 자양분을 의미발견의 모델이라고 이름 붙였다(1부 1장).

그리고 하나 더 있다. 타자를 받아들이는 철학형식의 세 가지를 탐색했다. 첫째는 헤겔의 인정투쟁이론, 둘째는 레비나스의 환대, 그리고 셋째는 메를로 뽕띠의 육체 현상학. 내가 보기에  인정투쟁은 하버마스에 의해서 극단적인 이성주의로 변용되었고, 환대는 레비나스에 의해서 극단적인 이타주의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난 그 두 가지 사상의 중간영역으로 메를로 뽕띠를 위치 지었고, 여기에 공감영역이라는 간판을 달아주었다. 그러니까 이성-공감- 환대는 인간본성으로부터 유래하는 세 가지 영역이며, 정치도 여기에 대응하는 각자의 논리와 적응방식이 있는 것이다. 즉 소통의 정치 - 공감의 정치 - 돌봄의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소통과 돌봄의 얘기를 주로 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공감의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공감은 소통(이성)의 정치와 돌봄(환대)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매개항이기 때문이다. 또 정책적으로 보면 그것은 중도정치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1부 2장).

한편, 의미발견과 공감영역은 인간의 내면적 각성이다. 이것이 사회적 제도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역시 사회계약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영미권의 정치사상에서 사회계약을 추동하는 동인은 이해관계이다. 홉스에게 생명의 보존, 로크에게 재산권의 보존이 바로 이해관계의 핵심이다. 즉 내가 원하는 물질적 조건을 확실히 알고 타자와 거래를 하는 것이 계약이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민사회가 성립한다. 그런데 의미발견과 공감은 감성적인 작용이다. 그래도 계약이 가능한가? 난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루소와 스피노자를 들추어내었다. 특히 스피노자는 60년대 프랑스 사상을 지배했던 진원지로서 푸코, 들뢰즈, 네그리의 사상적 원류이다. 스피노자가 현대 정치에 주는 함의를 정리해 보고자 했다(1부 3장).

시민사회가 국가로 확장되는 과정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보편적인 경로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 정치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니, 국가의 성격에 대해서 반드시 밝혀야 했다. 특히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을 두고 진보와 보수 간에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고, 그걸 두고 싸움이 거세지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관점에서 두 정권의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했다. 대단히 위험스러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존 국가론의 한계를 맑시즘과 베버주의로 규정하고, 과감하게 뒤르카임의 국가론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국가구성체를 담론국가라고 주장해 보았다. 많은 비판과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1부 4장)

마지막으로 국제정치 수준에서 세계화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내부의 계급투쟁보다는, 국제정치 변수에 의해서 국가의 성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마르크시즘의 용어를 빌면 한국은 분명 종속된 국가이다. 다만 그 종속의 내용이 군사나 경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특히 외부에서 수입된 지식이 어떻게 한국사회의 성격을 원격조정하고,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분석해 보았다(1부 5장).

이렇게 놓고 보면 감정구조라는 제목은 이성의 정치와 돌봄의 정치를 모두 가늠하고, 동시에 공유하는, 공감의 정치를 겨냥하고 선택된 제목이다. 그리고 감정이 개인 – 시민사회 – 국가 - 국제정치에서 각각 자기 나름의 생성과 변형의 법칙을 유지하면서 작동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서, 각 층위를 나누어 설명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1부에서는 정치통합의 철학적 기반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1부의 전체 제목을 이론이라고 붙였다.

2부는 한국사회에서 실제로 등장하는 감정의 특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분석의 층위는 여전히 동일하다. 개인수준에서 박정희 향수를(2부 6장), 시민사회의 수준에서 촛불집회의 분노를 (2부 7장), 국가의 수준에서 안보 담론이 만들어낸 공포를 (2부 8장), 국제정치의 수준에서는 남북관계에서 형성되는 왜곡된 아비투스를 경험적으로 분석해 보았다(2부 9장과 10장). 공감이 정치통합의 이념적 기초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왜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각 수준마다 지배적인 감정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감정이 바로 향수 – 분노 – 공포 - 왜곡된 아비투스 등이다. 이러한 감정들의 발생론을 설명할 수 있다면, 공감으로 수렴되는 과정도 처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실증적이라는 말이 좀 무색하다. 사회학의 시각에서 보면 실증이란 가설-검증을 거쳐야 하고, 이것은 꽤 복잡한 설문작업과 수리적 처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조사방법에 따라 예산이 필요한데,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  사회학이론과 필자의 해석만이 난무했다. 다행히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아 부산시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할 기회가 있어(9장), 그나마 실증적 분석이라는 제목을 달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내가 하든, 다른 전문가들이 하든, 2부에서 제시된 감정의 발생론적 구조를 추적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5년에 한 번 정도 국가수준의 대대적인 실증조사를 실시한다면, 이를 근거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정책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사회통합은 이론가들의 이념논쟁이 아니라, 실증적인 분석 자료를 토대로 정책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탈북민을 통합하는 정책과제는 더욱 중요해 질 것인데,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2부에서 내가 진행한 작업들이 작은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결론 부분의 “상생의 정치를 위하여”는 유럽정치사에서 중도정치의 역사를 추적하는 글이다. 간추려 말하자면, 17세기 자유주의와 18세기 사회주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19세기의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했고, 그 정치제제가 바로 복지국가이다. 이때 등장한 정치이념 중에서 프랑스의 연대주의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연대주의는 독일의 사민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감성적 요인을 강조하는 정치이념이다. 이것이 프랑스식 복지국가의 특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마크롱의 정치노선이 연대주의의 새로운 변형이며, 대한민국의 정치가 참고할 만한 예라고 판단하여 자세히 비교해 보았다. 또 구체적인 현안을 두고 한국정치가 참고할 만한 정책적 제안도 했다.  

이제 한국사회도 진보와 보수의 낡은 틀을 넘어, 새로운 정치를 찾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과감하게 말하면, 윤석열 정부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바로 중도정치이다. 이 책이 한국정치의 미래를 탐색하는 데 작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정부 당국자에게 보내볼까? 읽어 보기나 할까?   


홍성민 동아대·정치철학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파리 제10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를 취득했다. 일찍이 미국식 국제정치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미국의 지식 지배로부터 탈출해 진정한 한국의 (국제)정치학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그동안 부르디외를 중심으로 프랑스 포스트모던의 흐름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수용하려 노력했고, 문화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취향의 정치학’ 혹은 ‘감성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글들을 발표해 왔다. 저서로는 『포스트 모던의 국제정치학』, 『문화와 아비투스』, 『지식과 국제정치』, 『문화정치학 서설』, Culture and Politics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근대성과 육체의 정치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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