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해법을 찾아 세상을 바꾸고 있는 집단지성의 원리를 알아보자
상태바
문제의 해법을 찾아 세상을 바꾸고 있는 집단지성의 원리를 알아보자
  • 권찬호 상명대·행정학
  • 승인 2022.05.07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집단지성의 원리』 (권찬호 지음, 박영사, 280쪽, 2022. 03)

 

‘소수의 엘리트보다 다수가 모인 평범한 대중들이 더 현명하다’거나 ‘누구나 조금씩은 알고 있으므로 완전한 지식은 인류 전체에 퍼져 있다’는 언명들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다. 물론 집단속에 전문가가 포함되면 더 좋을 것이지만, 다수의 범인(凡人)들이 가진 소소한 지식을 뜻하는 ‘롱테일 지성’들을 잘 합치기만 해도 원하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서양의 ‘two heads are better than one’이라는 속담도 같은 취지를 표현한 것이다. 왜 집단지성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을까?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라면 처음부터 집단지성의 기술에 기대어 생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 인터넷 시대에는 네트워크의 연결 수와 속도, 이에 따른 지식의 양의 비약적인 증가로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크게 나아진 상태다. 정보화 시대는 지식의 생산 공유 재생산이 쉽게 이루어지고, 유통 소비 저장이 자유로우며. 필요에 따라 쉽게 호출 결합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풀러(B. Fuller)는 지식의 양적 두배 증가 곡선(Doubling Curve)을 제시하며 2030년이 되면 지식총량이 3일 만에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인터넷 시대에 집단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집단지성의 원리 이해가 긴요하다. 

‘집단지성의 원리(The Principles of Collective Intelligence)’로 제목이 붙여진 이 책에서 ‘집단지성’이란 집단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COVID-19’ 등 다원화되고 복잡한 문제들은 한두 천재적인 개인의 기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국가, 지역, 회사, NPO나 학교 등에서 구성원들의 지적 역량을 합치는 원리를 잘 이해하고 전체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거버넌스와 협업, 협력의 원리, 자연계의 자기조직화와 복잡계 등을 연구하고, 국가나 사회집단의 역량과 그 영향요인을 탐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단지성이 작동되는 유형’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첫째는 통계형 또는 범주형 집단지성이라고 표현되는 형태들 중에서 A나 B중에서 선택하게 되는 이산적인 문제일 경우에 적용하는 ‘투표나 다수결(plurality) 유형’이 있고, 질량 온도 거리 등에 적용되는 ‘상태추정(state estimation) 유형’이 있다. 상태추정은 평균과 같은 대푯값으로 모집단의 상태를 추정하게 된다.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의 원리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런 유형을 모두 합하여 통계적 집단화(statistical aggregation)라고 한다.  

2) 둘째는 인지형 또는 실체형 집단지성이라고 표현되는 ‘심의(deliberation) 유형’이 있다. 심의는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주어진 문제에 대한 무지상태를 극복할 수 있고, 토론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지능력의 취합에 유리하다. 집단의 의견취합 과정에서 이뤄지는 상호간 토론과 숙의는 개인의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에서 의사결정 방식으로 즐겨 사용하는 공론조사(deliberative opinion poll)는 위의 1)과 2) 방식을 결합한 것이다. 

3) 셋째는 진화형 집단지성이라고 표현되는 동물들 특히 잎꾼개미나 꿀벌 등 사회적 곤충에게서 관찰되는 ‘군집지성(swarm intelligence) 유형’이다. 이들 고등 곤충들은 스티그머지(stigmergy)라는 흔적들, 냄새, 소리, 몸짓 등을 이용하여 이웃과 교류한다. 군집지성은 자기조직화 원리와 복잡계의 틀 내에서 작동된다. 이 모형은 인류가 알게 모르게 즐겨 활용해온 집단지성의 원형(archetyp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집단지성 유형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숫자가 능력을 이긴다(numbers trump ability theorem)’는 원리이다. 집단지성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다수의 지적 능력을 합하면 소수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선구자인 콩도르세(Condorcet)는 유명한 배심원정리(Jury Theorem)에서 개인이 옳은 선택을 할 확률이 랜덤보다 높고, 개인들은 상호 독립적으로 진지하게 투표한다면 다수가 참여할수록 바른 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둘째 원리는 집단 참여자들의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정답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콩도르세는 이것을 ‘계몽가정(enlightenment assumption)’이라고 불렀으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을 높이는 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이 조건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다. 콩도르세의 후학들은 각 개인의 능력이 51%일 때는 1,000명이 참여하여야 74%의 정확도를 보이는 반면, 능력이 60%일 때는 50명만 참여해도 92%의 정확도를 나타냄을 증명하였다. 

셋째는 다양성 원리이다. 다양성이란 인구학적, 교육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와 사람들이 문제를 표상하고 해결하는 방법의 차이를 말한다. 페이지(S. Page)는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 정리(diversity trumps ability theorem)’라고 공식화하면서 다양성의 인지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만약 다양성의 확보가 용이하지 않다면 숫자를 늘리면 될 것이다. 서로위키(J. Surowiecki)가 강조하는 독립성, 분권성, 성실성의 조건은 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조건이 미비할 경우에는 편향이 나타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능력과 다양성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코 다양성을 선택해야 한다. 다양성은 집단지성의 품질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이다. 

 

이 책은 위의 집단지성 모형과 원리들을 기반으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보태어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제1부에서는 1장, 2장, 3장에 걸쳐 집단지성이란 무엇이며, 왜 이 시대에 중요한 주제가 되었는지 검토하였다. 먼저 집단지성의 역사와 연구자들의 정의 등을 살펴본 다음, 다양한 형태의 집단지성을 어떻게 유형화할 수 있는지, 유형별 특징은 무엇인지, 구성원 개인들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집단적 지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정리하였다. 

제2부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4장, 5장, 6장에 걸쳐 집단지성의 미시적 기초와 관련된 주제들을 살펴보았다. 통계모형의 전형인 투표와 인지모형의 전형인 심의 및 진화모형의 전형인 군집지성의 개념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제7장에서는 통계적 집단지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평균의 원리, 시장의 거버넌스에 의존하고 있는 예측시장, 그리고 집단지성의 질을 가름하는 핵심적 요소인 다양성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제3부에서는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집단지성에 대해 기술하였다. 9장에서는 각양각색의 웹 기반 집단지성 실천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살폈고, 10장은 명시적 크라우드소싱의 유형인 평가, 공유, 네트워킹, 인공물생성, 과업수행 등과 묵시적 크라우드소싱의 개념과 사례를 다루었다. 

제4부 11장에서는 앞에서의 논의들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집단지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집단지성은 항상 옳은가에 대한 논의와 집단지성의 조건들, 특히 행위자 수준의 고려사항들을 검토한 후 능력, 독립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면서 편향의 유형인 집단사고, 사회적 증거, 원형선회, 집단양극화, 정보폭포에 대해 설명하였다. 집단지성을 해치는 대표적인 사례가 ‘집단사고(group think)’로 알려진 동조화 현상이다. 나아가 편향의 예방유형인 경쟁과 익명성, 조정자의 역할, 벌거벗은 임금님과 12인의 성난 사람들, 블랙스완 등을 다루었다. 그 후 집단지성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C-Factor를 설명하였다.  

사회혁신의 대가인 멀건(J. Mulgun)은 집단지성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구글과 네이버에 저장된 지식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엄청난 효과, 위키피디아의 성공 사례, 수많은 공사기관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크라우드소싱 제안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리빙랩(LivingLab)이나 커뮤니티맵핑(community mapping)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든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프로그램상의 문제를 미리 발견해 제거하는 버그 바운티(bug bounty), 병원의 여러 분야 의사들이 참여하는 통합진료, 경영분야나 정치행정 영역에서 사용하는 예측시장 시스템(prediction market system), 많은 데이터와 지식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인공지능(AI)의 발전 등 수많은 집단지성 시스템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미래사회를 이끄는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은 구성원들의 지적, 실천적 역량을 어떻게 하나로 가장 잘 합치는가가 경쟁의 요점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 간의 경쟁 역시 사회의 집단지성 창출능력에 따라 우열과 승패가 갈리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집단지성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적용 분야가 어느 특정 학문분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학, 물리학, 심리학, 공학, 생물학, 교육학, 사회학, 정치학, 행정학, 경영마케팅 등,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학문분야에서 다뤄지고 있다. 21세기 지식사회의 화두인 빅데이터, 인공지능도 집단지성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보와 지식의 취합을 바탕으로 필요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인공지능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군집지성에서 출발한 집단지성 연구는 로봇공학, 천문학, 생태학, 의학은 물론 언어학, 심리학, 철학에서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협력의 기술'을 고도로 발달시킨 존재이다. 인간이 만드는 제도는 협력의 체계이고 문화는 협력의 성과를 전승시키는 장치이다. 협력의 수준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때로는 행위자들의 의도적 노력이나 조정이 필요하다. 레비(P. Levy)는 집단지성에서 필요한 협력을 새로운 사회적 유대의 창출 가능성에서 찾았다. 특히 오늘날 인터넷 시대에는 이 같은 유대가 쉽게 맺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실제로 인터넷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정보나 지식을 독점할 수 없고, 이기심이 줄어들게 되며, 개인의 역량들이 시시각각으로 조정돼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미스(A. Smith)의 공감능력(sympathy), 루소(J. Rousseau)의 연민(pitie) 등이 작동한다는 뜻이다.

집단지성의 논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미국헌법의 기초를 제공했고, 다수의 민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 중에서 해결이 어렵고 갈등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집단지성의 원리와 결부해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집단 속의 어느 누구도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모두의 지혜를 모은다면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집단지성이 편협한 집단사고를 벗어나 국가나 사회, 직장이나 가정의 문제해결에 적극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권찬호 상명대·행정학

중앙대학교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제22회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국무총리실, 대통령비서실, 외교부 등에서의 공직생활을 거쳐 상명대학교 공공인재학부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현재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現 교학부총장). 수년간 집단지성 연구에 몰두해 이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