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테프카의 유대인, 그리고 2022년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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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테프카의 유대인, 그리고 2022년의 한국
  •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2.05.07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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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이번 시즌 공연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완료되었다(주관 서울시뮤지컬단, 총괄프로듀서 김덕희, 연출 정태영, 번역·가사 박천휘, 편곡·음악감독 김길려, 2022. 4. 22~5. 8).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국내에서 뮤지컬로도,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64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제롬 로빈스의 연출과 안무, 해롤드 프린스의 연출과 프로듀싱으로 초연되었던 뮤지컬은 극장을 두 번 바꿔가며 1970년까지 총 3,242회 공연됨으로써 ‘3,000회 이상 공연된 첫 번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년 뒤인 1971년에는 노만 주이슨 감독으로 뮤지컬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국내에는 이 영화 버전이 1974년에 수입·상영됨으로써 뮤지컬보다 영화로 먼저 알려졌다. 국내에서 뮤지컬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85년 서울시립가무단에 의해서였다. 물론 당시 서울시립가무단의 공연은 한국이 아직 국제저작권협약(UCC)에 가입(1987)하기 전의 상황에서, 공식적인 저작권 협약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종의 해적판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국내에서 걸작으로 인식되어 1980년대 KBS에서 방송되는 ‘명화’가 되었다. 그리고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서울시립가무단이 서울시뮤지컬단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7번 재공연을 거치며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아갔다.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박성훈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마을처녀들<br>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마을처녀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매력은 혼기에 찬 테비예의 세 딸들이 ‘아버지의 법’으로 상징되는 ‘전통’을 깨고 스스로 신랑감을 선택하는 과정을 아버지 테비예의 시선으로 다루는 데에서 발생한다. 대본을 쓴 조셉 스타인은 테비예를 유머러스하고 포용력 있는 캐릭터로 설정하여 결혼에 주체적인 자이틀, 호들 그리고 하바와, 대립하는 대신 이해와 축복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물론 유대인이 아닌 러시아인-이교도와 결혼한 하바는 끝까지 테비예의 직접 축복을 받지는 못하지만, 남편 피에드카와 함께 폴란드로 이주하는 딸의 뒷모습에 신의 가호를 비는 테비예의 행동은 ‘작은 새’ 하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관객은, 딸들이 (이미 남편을 결정하고) 허락을 구하는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되어있는 그의 독백에서 수호해야 할 전통의 가치와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끼면서도 결국 딸의 손을 들어주는 ‘아버지’ 테비에를 만난다. 이번 서울시뮤지컬단의 공연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것은 테비예(박성훈/양준모)가 이끌고 가는 극의 질감이었다. 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포용력 있는 모습, 딸들의 편을 들기 위해 아내 골데를 적당히 속여 넘기거나 맥락 없이 가부장의 권위를 강조하는 유머러스함, 말이 다리를 다쳐 스스로 우유 수레를 끌어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삶의 여유를 잃지 않는 낙천성이 테비예를 인간성 넘치는 캐릭터로 완성시켰다.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양준모<br>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양준모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보틀댄스

그러나 테비예 가족의 가족애, 나아가 가상의 유대인 마을 아나테프카의 ‘공동체적 결속’이라는 작품의 테마는 작품의 정치적 배경과 결합하며 심도를 더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월경(越境)’을 흥미롭게 만든다. 이 작품의 시대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러시아 혁명에서 말하는 1905년 ‘피의 일요일’, 즉 착취, 빈곤, 전쟁에 허덕이던 당시 러시아 민중들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을 확립해달라는 청원에서 시작된 사건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그리고 또 하나, 러시아 내의 유대인을 물리적으로 박해했던 ‘포그롬’ 사태가 얽혀있다. 1821년 오데사에서 처음 발생한 포그롬은, 이후 러시아 내의 유대인 수가 급격히 늘자 1881년 우크라이나 남부 전역의 포그롬으로 확산되었고 1903년 키시네프, 1905년 키예프, 1906년 비알리스토크 등에서 대형 포그롬이 벌어졌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 혁명 때까지 포그롬은 계속됐다. 이 포그롬의 여파로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서 유대인은 서유럽이나 미국으로 대대적으로 이주했으며, 이후 미국이 유대인의 새로운 고향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박성훈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양준모

테비예의 둘째 딸 호들과 결혼하는 페르칙의 서사는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극의 흐름과 정서를 예각화한다. 페르칙은 키예프에서 대학을 나온 ‘급진적인 유대인 지식인’으로 어느 날 갑자기 아나테프카에 등장한다. 그는 아나테프카 사람들이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평범한 사람들의 혁명을 설파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테비예의 딸들을 가르치는 조건으로 안식일까지 그의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페르칙은 호들과 인연을 맺는다. 테비예는 페르칙의 급진성을 알면서도 그를 받아들였는데, 이미 아나테프카에는 라잔카라는 마을에 포그롬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퍼지며 러시아 황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칙과 호들 그리고 이들을 받아들인 테비예의 서사는, 호들이 시베리아에 유배된 페르칙에게 가기 위해 아나테프카를 떠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호들의 목에 둘러주는 테비예, 불안정한 미래를 향해 떠나는 호들, 호들을 태우고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선로 위를 달리다 사라진 기차, 그리고 이 전체를 감싸는 유대인 민속 음악 특유의 깊은 정취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정서적으로 고양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주요 공연에서 주인공을 맡아 열연해왔던 허도영은 따뜻함을 지닌 반체제 인사 페르칙을 깔끔하게 연기하며 구심점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서울시뮤지컬단] 지붕위의 바이올린-양준모
[서울시뮤지컬단] KoN

맏딸 자이틀과 재단사 모틀과의 결혼식이 포그롬을 예고하는 러시아 관리의 등장으로 엉망이 되어 버리는 장면이라든지, 결국 아나테프카를 떠날 수밖에 없는 마을 주민들의 긴 행렬 역시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환기하는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특히 공연의 마지막은 또 다시 디아스포라로 살게 된 그들의 현실을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느리고 긴 행렬로 재현했는데, 행렬의 마지막이 무대 뒤로 사라진 이후 피들러(KoN) 혼자 남아 엔딩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인물들의 현재와 미래를 예감하게 함과 동시에, 테비예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고수해왔던 ‘전통’이 불안정한 그들의 삶을 지탱하던 최소한의 정신적 유산이었음을 알려준다. 

 

[서울시뮤지컬단] 피난길
[서울시뮤지컬단] KoN

이러한 맥락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한국의 그때/거기와 접속하는 방식으로 수용되었던 과거를 환기시킨다. 1974년에 영화가 수입될 때도, 1985년에 뮤지컬로 초연 될 때도 작품은 한국의 ‘내부’와 접속되는 지점을 찾았다. 영화가 수입될 당시 언론은 현실에 부딪히면서도 고유의 전통을 지키려는 아나테프카 사람들의 모습과 ‘당시 농촌의 현실’을 오버랩 시켰고, 뮤지컬 프로덕션은 아나테프카를 떠나야 했던 마을 사람들의 비극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양산된 ‘이산가족의 아픔’에 대응시키려 했다. 그러나 2022년 한국의 지금/여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외부적 맥락’으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이해한다. 작품의 이슈를 내부의 문제로 연결시키기보다, 인류의 평화를 바라는 세계 시민의 관점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정치적 배경을 연출과 무대로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관점을 확장한 이번 공연을, 주요 배우들이 대부분 코로나에 걸려 언더스터디가 자리를 채웠으나 오히려 밀도 있는 결과물을 보여준 서울시뮤지컬단의 미래로 읽어도 좋을까. 서울시뮤지컬단이 계획하고 있는 2022년 라인업은 그 새로운 미래를 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저로는 “청년 테마로 본 뮤지컬: 팬덤의 참여욕망과 수행성에 대한 고찰”,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지화에 대한 일고찰”, “확장하는 보편, 타협하는 로컬리티”,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와 음악극 실험”, “만들어진 비애와 감성의 연대”, 미국 뮤지컬과 국가정체성의 형성(공역), 멜로드라마적 상상력(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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