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입헌주의와 비지배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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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입헌주의와 비지배적 자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5.0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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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3강_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의 「유학에서의 자유와 공동체」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첫째 섹션 ‘자유의 이념과 지향’ 제3강 이승환 명예교수(고려대 철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유학에서의 자유와 공동체…유교 입헌주의와 비지배적 자유


이승환 교수는 “3000여 년에 걸쳐 전제 군주 1인에 의한 자의적 지배가 지속되었다고 보는 ‘동양적 전제주의’의 테제”가 “유교 조선의 실제 정치 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허위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그를 위해 “조선에서 왕도 정치를 위해 고안되고 실행되었던 다양한 정치 원리와 제도적 장치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아직 삼권분립이나 기본권 개념이 탄생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의 정치 체계에서는 통치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대한 견제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고찰”한다. 
즉 “유교 조선에서 통치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막고 백성들의 자율적 삶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 원리와 제도적 장치”, 오늘날 용어를 빌리면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라는 포괄적 원리의 차원”에서 이른바 ‘비지배적 자유’의 지향과 동일한 것으로서 “조종성헌(祖宗成憲) 및 『경국대전』·『국조오례의』·『주례』 등의 법전과 예전”에 더해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원리와 재상 제도” 그리고 “경연(經筵)과 대간(臺諫) 제도” 및 “반정(反正)에 의한 국왕 교체” 등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통치 권력의 자의성을 견제하는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시민들의 비지배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되는 만큼 이를 위하여 “법과 제도를 개선해나가려는 정치적 실천과 더불어 자유주의적 입헌주의(liberal constitutionalism)의 기풍(ethos)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정치 문화적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지난 4월 16일, 이승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3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고대 동양의 자유? 

현대 자유주의 사회를 풍미하는 자유는 이사야 벌린이 “~로부터의 자유”라고 명명한 바 있는 소극적 자유이다. 소극적 자유는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독자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간섭의 부재(non-interference) 상태를 뜻한다. 간섭의 부재는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 안에서 정부 권력의 제한, 기본권의 보장, 법의 지배 등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벌린에 의하면 소극적 자유의 개념은 전적으로 근대의 산물이다. 

아직 개인(individual)이라는 관념이 탄생하지 않았던 시절, 따라서 아직 개인의 자유가 논의의 초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근대 이전의 동양에 자유라고 부를 만한 가치나 이념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는 고대의 성왕으로 칭송받는 요 임금의 치세에 농부들이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무위가」라고도 불리며 유교에서 지향하던 무위 정치의 이상을 담고 있다. 흔히 무위는 도가의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위는 유가와 도가를 막론하고 동양에서 이상으로 여겨오던 정치 형태였다. 

백성들은 국가 권력이 지배하려 할 때보다 지배하지 않을 때 오히려 자신들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고, 통치자가 백성들의 삶을 강압하거나 간섭하지 않을 때 오히려 좋은 임금이라고 칭송받는 정치 형태가 바로 무위 정치이다. 통치 권력에 의한 자의적이고 강압적인 지배가 사라진 그 지점으로부터 백성들의 자율적인 삶이 시작된다고 보는 이러한 견해에서 우리는 “자의적 지배의 부재로서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의 이념을 발견하게 된다. 무위는 ‘통치의 부재’라기보다 ‘자의적인 지배의 부재’를 뜻한다. 

비지배적 리더십과 관련하여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일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뭇별들이 그 주위를 주선(周旋)하는 것과 같다.” 이 비유에서 북극성은 군주를 가리키고 뭇별들은 백성을 가리킨다. 군주가 강압이나 강제가 아닌 비지배적 리더십에 의한 무위의 정치를 행할 때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군주의 리더십에 순응하게 되어 조화로운 정치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통치 권력의 자의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은 역사의 전개와 더불어 유교 사회에서 만민이 지향하는 공동선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이러한 공동선에 대한 추구는 성왕에 의한 인정(benevolent government)이라는 정치 이념으로 정초되었다. 

 

2. 유교 입헌주의와 통치 권력의 제한

많은 정치사상 연구가들은 서양과 대비되는 동양 정치사상의 특징으로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를 들곤 한다.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개념은 헤겔의 『법철학』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자유 의식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고, 세계사의 진행과정은 인류 문명의 유년기인 동양 세계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와 로마 세계를 거쳐 인류 문명의 최상위 단계인 게르만 세계로 진전해가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동양 세계에서는 황제 1인만이 자유롭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적 삶을 살았으며, 그리스ㆍ로마 세계에서는 단지 몇 사람만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게르만 세계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자유를 누리는 역사발전의 최종 단계라는 것이다.

유럽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헤겔의 ‘동양적 전제주의’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으며,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후에 헤겔의 테제를 사회과학적 개념 틀로 재구성해서 내놓은 사람은 비트포겔(Karl A. Wittfogel: 1896-1988)이다. 그는 냉전의 극성기인 1957년에 출판한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저서에서, 고대 동양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군주 1인뿐이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전제 군주의 자의적이고 폭압적인 지배 아래서 노예적 삶을 살았다고 헤겔 식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동양은 변덕스러운 전제 군주 1인에 의해 지배되었던 낙후되고 정체된 사회라는 시각은 19세기 제국주의 시기이래 유럽 중심주의자들이 공유해온 믿음으로, 이들 눈에 비친 동양은 이성ㆍ문명ㆍ진보의 상징이던 유럽의 대척점에 타자(other)로 설정된 야만의 표징이었다. 

헤겔과 비트포겔의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역사인식은 정작 역사학계에서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 동조하는 일부 학자와 지식인들은 아직도 이 테제를 아무런 의심 없이 추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제 군주 1인에 의한 자의적이고 폭압적인 지배 체제를 의미하는 동양적 전제주의의 이미지는 실제 역사 속에서 구현되었던 유교 사회의 모습, 특히 조선이라는 유교 국가의 실제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 

이 글에서는 3000여 년에 걸쳐 전제 군주 1인에 의한 자의적 지배가 지속되었다고 보는 ‘동양적 전제주의’의 테제는 유교 조선의 실제 정치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허위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유교 조선에서 통치 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막고 백성들의 자율적 삶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 원리와 제도적 장치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조종성헌(祖宗成憲) 및 『경국대전』ㆍ『국조오례의』ㆍ『주례』 등의 법전과 예전
2.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원리와 재상 제도
3. 경연(經筵)과 대간(臺諫) 제도
4. 반정(反正)에 의한 국왕 교체

통치 권력의 자의적인 남용을 막고 백성들의 자율적 삶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 네 가지 장치는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라는 포괄적 원리의 차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서 입헌주의란 제한 정부, 삼권 분립, 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위헌 법률 심사 등을 골자로 하는 정치 체계를 말한다. 입헌주의는 꼭 성문법적 형식을 필수 요건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성문 헌법의 유무를 떠나 근대 이전의 시기에도 입헌주의 관념이 존재했음을 밝히는 연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스콧 고든(Scott Gordon)의 『국가에 대한 통제: 고대 아테네에서 현재까지의 입헌주의 연구』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스콧 고든을 위시하여 근대 이전의 입헌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목하는 문제는 “아직 삼권 분립과 기본권 개념이 탄생하지 않았던 시절에, 통치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들의 ‘비지배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입헌주의적 관행들(constitutional convention)이 고안되고 실행되었는가?”라는 물음이다. 통치 권력의 제한과 비지배적 자유의 확보를 위해 현대 입헌주의와 “기능적 등가성(functional equivalence)”을 가진 근대 이전의 정치 제도와 장치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들 연구자의 주된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능적 등가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면, 근대 이전/이후를 막론하고 입헌주의의 핵심 이념은 국가를 국가답게 성립시키기(constitute) 위하여 통치 권력의 무제한적 확대와 자의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고 시민들의 자율적 삶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입헌주의의 이러한 핵심 이념은 유교 사회에서 통치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고 백성들의 자율적 삶을 보장하기 위해 추구했던 ‘비지배적 자유’의 지향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양 정치사상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유교 사회에서 통치 권력의 제한에 관한 제도적 장치를 입헌주의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유교적 입헌주의” 논의가 그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치 권력의 제한과 관련된 입헌주의적 정치 규범은 꼭 성문법적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권위있는 전통과 관습에서 규범적 효력(normative power)이 연원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교 조선의 경우, 입헌주의의 규범적 원천은 조종성헌(祖宗成憲), 『경국대전』ㆍ『국조오례의』ㆍ『주례』 등과 같은 법전과 예전, 그리고 『논어』ㆍ『맹자』ㆍ『서경』ㆍ『춘추』 등의 유교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조종성헌(祖宗成憲)이란 선왕들이 세운 헌법적 규범을 말한다. ‘조종’은 미국 헌법을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처럼 조선을 건국하고 국가의 토대를 닦은 선왕들을 가리키고, 성헌(成憲)이란 헌법적 기능을 하는 규장(規章)과 관행을 말한다. 즉 ‘조종성헌’이란 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왕도 정치의 규범을 담은 헌법적 규장과 관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성헌’이라는 개념은 조선 정치사에서 군주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견제하고 왕도 정치로 인도하기 위한 입헌주의적 규범으로서 기능을 수행했다. 

‘조종성헌’이 통치권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근거로서 항상 ‘무제한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쟁점이 되는 사안에 따라 국왕은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강행하려는 정책 결정의 근거를 ‘조종성헌’에 귀속시키기도 하고, 이에 반대하는 대신들은 다시 ‘조종성헌’을 뛰어넘는 상급심으로 ‘예’(禮)를 제시하기도 했다. ‘예’는 실정법 체계인 『경국대전』의 법 조항을 개정하거나 폐지할 때도 상위법적 근거로 인용되었다. ‘예’에 의해서도 선명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을 때는 다시 『논어』ㆍ『맹자』ㆍ『대학』ㆍ『춘추』 등의 유교 경전에 실려 있는 왕도 정치의 이념과 정치철학적 원리가 입론의 최종 준거로 인용되었다.

통치권자의 권력 행사를 규율하고 그에게 왕도 정치의 이념과 국정 운영의 원리를 숙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의 원천이 되는 유교 경전의 내용을 미리 이해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군주 교육의 장이 바로 경연이다. ‘경(經)’은 왕도 정치의 핵심 이념과 역사적 사례가 담겨있는 유교 경전을 의미하고 ‘연(筵)’은 대자리로 만든 좌석을 의미한다. 즉 경연은 군주의 경전 공부를 위해 설치된 학습의 장을 의미한다.

경연은 『경국대전』에 설치 근거를 둔 법적 제도였다. 군주는 경연을 통해 선대로부터 전해지는 헌정 관행(constitutional convention)과 유교 경전에 실려 있는 왕도 정치의 이념을 이해하고 숙지하도록 강청(强請)받았다. 조선의 군주는 재위하는 동안 평생에 걸쳐 경연관으로부터 강의와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군주를 요ㆍ순과 같은 성왕으로 만들기 위한 경연 제도는 통치 권력의 자의성과 무단성을 방지하고 국왕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경연에서는 ‘사서삼경’과 더불어 『대학연의』ㆍ『근사록』ㆍ『자치통감강목』 등의 교재가 진강되었으며, 강의 교재에 실려 있는 정치철학적 원리와 역사적 사례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군주의 잘못된 언행과 판단을 바로잡는 “격군심(格君心)”의 기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유교 조선의 정치 체제가 군주의 독단과 자의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었던 전제 또는 독재 체제가 아니라 재상 및 의정부 대신들과의 협의를 통해 국정이 운영되는 군신공치(君臣共治) 체제였다는 것은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는 일반화된 상식이다. 군주 독재를 방지하고 군신공치를 지향하는 정치적 이념과 제도는 조선 건국 초부터 성리학의 도학정치 이념에 따라 설계된 것이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에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건국의 초석을 놓은 ‘왕조의 설계자’라고 불린다. 그는 『경국대전』의 원형이 되는 『조선경국전』을 지어 새로 건설할 나라의 정치 체제와 통치 규범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가 구상했던 정치 체계의 가장 큰 밑그림은 군-신 관계를 권력 분립의 관점에서 제도화하는 일이었다. 통치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견제하고 합리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국왕에게 최고 통치권자로서의 상징적 권위는 부여하되 실질적 권력은 대신들을 대표하는 재상에게 일임하고자 하였다. 그가 군주에게 부여한 유일한 실질적 권한은 한 명의 현능한 재상을 논정(論定)할 수 있는 재상 선택권뿐이었다. 

정도전이 구상하는 정치 체계는 재상 중심제 즉 오늘 말로 하면 책임총리제이다. 그가 국정 운영의 실질적 권한을 국왕이 아닌 재상에게 일임하려는 이유는 보위에 오를 군주의 자질이 현명함/우매함 또는 강인함/유약함 등으로 들쭉날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군주를 만나면 그의 뜻에 따르면 그만이지만, 우매하거나 강퍅한 군주를 만났을 때는 어리석음과 오류를 바로잡고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제어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이런 이유에서 재상에게는 국왕을 대리해서 책임 행정을 펼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필요하고, 국왕의 잘못을 규간할 수 있는 있는 강력한 견제권이 요청된다. 

정도전은 이어서 대간의 중요성에 대해 논술하고 있다. 대간이라는 직명에서 ‘대’는 사헌대(司憲臺 또는 司憲府)로서 고위 관리들을 감찰하고 탄핵하는 기구를 가리키고, ‘간’은 사간원(司諫院)으로서 국왕을 규찰하고 봉박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말한다. 규찰(糾察)이란 임금이 내린 정령을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조사하여 규명하는 일이고 봉박(封駁)이란 임금의 옳지 않은 조칙(詔勅)을 그대로 봉해서 되돌려 보내는 일을 말한다. 아무리 임금이 내린 정령과 조칙이라 해도 사실성에 입각해서 그 타당성과 정당성이 입증된 후에야 군명(君命)으로 받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헤겔과 비트포겔은 동양 세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군주 1인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적 존재에 불과했다고 보았지만, 조선에서는 연산이나 광해와 같은 소수의 폭군을 제외하고는 군주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결국 반정(反正)에 의해 국왕 직에서 파면되었다.) 군주는 보위에 재임하는 동안에는 경연에 참석하여 정치철학 강의와 도덕적 훈계를 들어야 했고, 대간으로부터 수시로 규간과 봉박에 시달려야 했던 “불행한 최고 통치자”였다.

 

3. 유교 입헌주의가 주는 시사점

미래 한국의 정치가 유교적 입헌주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정도전은 통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보상(輔相)과 대간(臺諫)이라는 두 제도를 구상했다. ‘보상’은 현능한 재상이 통치권자를 보좌해서 국정을 총괄해서 관리한다는 의미이고, ‘대간’은 통치권자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자의적 권력 행사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의미이다. 정도전이 이러한 정치 체제를 구상하게 된 이유는 새로 보위에 오를 인물이 언제나 총명하고 능력 있는 자질의 소유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조선경국전』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새로 임금이 될 인물이 (아주 드물게)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리석고 강퍅한 인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대중의 인기를 얻어 많은 득표를 했다고 해서 자유주의의 정치 이념과 민주 국가의 운영 원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숙지한 인물이라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현재처럼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경우, 정도전이 우려했던 “어리석고 강퍅한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국가적 혼란과 민주주의의 후퇴는 물론 안보의 위기와 경제적 손실까지 초래할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국무총리’라는 직명의 문자적 의미는 국가의 사무를 총괄해서 관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의 총리는 명목상의 총리일 뿐, 정도전이 구상했던 재상 제도에 비하면 아무런 실권도 없는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하다. 정도전이 염려했던 것처럼, ‘어리석고 강퍅한’ 지도자가 탄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국무총리의 실질적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통치 권력의 자의성을 상시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모색하고 갖추어나갈 필요가 있다. 

통치 권력의 자의성을 통제하기 위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권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통치 권력의 무도함이 극에 달했을 때 최후의 비상수단으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무도함이 극에 달하기 이전에 상시적으로 이를 규찰하고 제어할 수 있는 조선 시대의 ‘대간’과 같은 상설기구가 있다면 국가적 체력 소모와 국민들의 정력 낭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물론 입법부가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기능을 일정 정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아직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국회와 정당이 행정 권력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예속되어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통치 권력의 자의성을 견제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시민들의 비지배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를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해나가려는 정치적 실천과 더불어 자유주의적 입헌주의(liberal constitutionalism)의 기풍(ethos)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정치 문화적 노력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는 그 자체로써 작동하지 않는다. 법조문은 판관의 사려 깊은 법 해석을 통하여 효력이 발생하고, 제도는 관리자의 현명한 운영 능력에 의해 순기능을 발휘한다. 법과 제도가 사려 깊고 현명한 관리자를 기다리듯이, 자유주의적 입헌주의는 순기능을 배가해줄 수 있는 문화적 기풍 즉 에토스를 필요로 한다.

마세도(Stephen Macedo)는 자유주의적 입헌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동체(community)와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입헌주의의 에토스는 단시간에 배양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에토스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권위 있는 전통과 관행, 보편적 도의와 원리를 추구하려는 열정, 반복적인 실천을 통한 시민적 덕성의 함양 등을 통해 구성원 모두에게 ‘마음의 습속(habit of heart)’으로 형성될 때 비로소 공기처럼 사회 전반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유학에서의 자유와 공동체 (이승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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