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럽의 설계자: 생시몽·생시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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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유럽의 설계자: 생시몽·생시몽주의자
  • 육영수 중앙대·서양지성사
  • 승인 2022.05.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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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근대유럽의 설계자: 생시몽ㆍ생시몽주의자』 (육영수 지음, 소나무, 344쪽, 202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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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Continuity and Transformation: Émile Barrault and Saint-Simonianism, 1828~1865,” University of Washington, 1995.3)을 바탕으로 삼아 새롭게 쓴 저서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수정 보완했다. 우선 시간적 범주를 프랑스혁명 이후에서 제2제정까지 공간적 범주를 이집트와 알제리로 확장했다. 또한 학위논문이 주인공 에밀 바로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이 책에서는 미셸 슈발리에 등 조연들의 분량을 늘었고 ‘유색인’ 이스마일 위르뱅을 처음으로 출연시키는 등 등장인물을 넓혔다. 그리고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생시몽주의를 재조명한 지난 30년 동안의 최신 연구성과를 참조·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오래전에 마무리했던 학위논문 주제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서양근현대 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생시몽(주의자들)에 대한 전문연구서(모노그래프)가 국내 학계에 여태까지 단 한 권도 출간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시대 한국의 선배 지식인들이 『개벽』 등과 같은 매체에서 생시몽을 처음으로 언급한 이래 1백 년이 지나도록 생시몽주의에 초점을 맞춘 학술서가 없다는 점이 나의 눈에 밟혔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옛 원고를 다시 다듬고 새로운 챕터를 쓴 사연은 이런 학문적 의무감 때문이었다. ‘과학적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연구자들이 생시몽·생시몽주의자에게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과소평가한 선행연구의 편견을 바로잡아 보려는 건방진 의도도 한몫했으리라.

두 번째 이유는 생시몽·생시몽주의자의 삶에 투영된 19세기 프랑스 지적 운동의 거울에 비춰 20세기 후반 한국사를 재성찰해 보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프랑스혁명이 낳은 ‘운동권’이었던 ‘1820년대 세대’ 생시몽주의자가 걸었던 현실참여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추적해 봄으로써,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애썼던 4.19세대와 386세대의 발자취를 ‘세계사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극단을 왕래했던 생시몽주의자의 지적 모험담을 통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려던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과 충돌했던 젊은 시절 ‘우리’의 참모습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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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첫 페이지는 두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첫 인용문에서 마르크스는 생시몽을 “노동자계급의 대변자”로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최종목표로 삼은 인물로 평가한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생시몽주의자들은 자유주의의 비판자로서 “노동과 자본을 사회의 이익을 위해 관리”함으로써 “누구나 그 능력에 따라 적당한 일을 맡고 또 자기가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사회”를 지향했다고 회고했다. 사회주의 권위자 마르크스와 고전적 자유주의 완결자인 밀이 진단한 상반된 좌·우측 잣대의 어느 지점에 생시몽과 생시몽주의자를 정확히 위치시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화두로 삼아 이 책은 2부로 구성된다. “생시몽주의 학파와 근대프랑스 역사와 사회”라는 제목을 붙인 제1부에서는 생시몽·생시몽주의자들이 자신들이 던져진 역사적 조건과 한계를 돌파하면서 ‘학파’를 형성·공고화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입헌왕정 → 제1공화국 → 반동정부 → 나폴레옹1세의 군사쿠데타 → 제1제정 → 복고왕정 → 1830년 7월 혁명 → 1848년 (민주-사회주의)혁명 → 제2공화국 →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 → 제2제정 등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통치구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이들이 선택했던 노선과 그 역사적 공과를 따져보려는 것이다. 1789혁명 이후 생시몽(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안티-자유주의’와 ‘사회주의적 지향성’은 고정되고 본질적인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에 도전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사상은 역사적 환경의 바깥에 있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그 산물이며 동시에 변화의 동력이라는 나의 방법론적인 신념이 반영되었다.

제2부는 “생시몽주의 사회사상의 스펙트럼”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각론이다.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멤버들이 주창했던 사회주의, 사회참여(앙가주망) 미학, 페미니즘, 오리엔탈리즘, 식민주의 등을 역사적 맥락에 대입하여 비평했다. 생시몽주의자들이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이라는 역사적 개념을 창안했던 공동의 지적재산권자이며, 에밀 졸라와 장 폴 사르트르를 앞지른 ‘참여문학’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눈 밝은 독자는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전 세계를 철도와 전신과 같은 테크놀로지로 연결하여 평화와 연합의 세계 시스템을 구축하려던 생시몽주의자들은 ‘지구촌 한 가족’의 초안을 그린 디자이너였다. 

일단의 생시몽주의자들이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혁명의 결과에 실망하여 활동무대를 이집트와 알제리로 확장함에 따라 그 사상적 지평도 넓고 깊어졌다. 이들이 모색한 ‘기독교 옥시덴트’ 문명과 ‘이슬람 오리엔트’ 문명의 창조적 융합과 식민지 알제리에서의 ‘프랑스-아랍 이중왕국’ 건설 등은 순진한 아마추어의 ‘몽상’이 아니라, 현지 체류 경험에서 수확한 과격하지만 실천되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었다.

덧붙이자면, 제1부와 제2부에 각 1편의 〈톺아 읽기>가 삽입되었다. “열린 생시몽주의와 그 추종자들”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앞의 글은 생시몽주의 ‘교회’에 자발적으로 합류한 사람들의 동기와 사연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보여준다. 지식인, 정치인, 종교사상가, 저널리스트, 은행가, 엔지니어, (여성) 노동자, 시인과 노래패를 포함한 문화운동가 등 다양한 부류의 집단이 제각기 다른 이유와 사명감으로 생시몽주의를 환영했음을 확인한다. 그 연장선에서 “여성 생시몽주의자들의 홀로서기”라는 뒤의 글에서는 왜 일부 여성회원들이 탈퇴하여 『여성논단』이라는 서양 최초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매체’를 출범시켰는지를 되짚어 본다. 

위 2편의 〈톺아 읽기>는 어려운 학술서적 읽기에 도전한 독자들을 잠시 즐겁게 하려는 양념거리가 아니라, 이 책의 주제를 지탱하는 일종의 미시사이며 일상생활사적인 삽화이다. 생시몽주의는 생시몽이나 앙팡탱과 같은 ‘우두머리’와 바자르와 같은 ‘먹물’들의 독점물이 아니라, 노동자 출신 ‘음유시인’ 뱅사르와 ‘민중의 딸’ 부알캥 등과 같은 ‘하층민’과의 합작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탈식민주의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다중(multitude)’이 대변하는 집단지성이야말로 생시몽주의를 ‘다시 만들고’ 생명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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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저자의 주제 의식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면, 나는 왜 생시몽·생시몽주의자에게 “근대유럽의 설계자”라는 이름표를 붙였을까? 이 물음은 ‘근대유럽 시스템’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복잡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회고적으로 근대유럽의 역사적 성격과 특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거창하고도 결코 생략할 수 없는 물음에 대해서 나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인간과 사회를 과학적으로 해부·진단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실증주의적인 믿음, 유용한 것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는 ‘산업주의’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 군림하고 지배하는 전통적인 정부는 자연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전문 관료제(technocracy)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장, 말썽 많고 위험한 노동(자)은 자본(가)에 의해 합리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이념, 유럽에서 먼저 성취한 ‘계몽적인 문명’으로 전 세계를 혁신해야 한다는 제국주의 사명감 ― 이런 근대화 프로젝트를 창안·건축·시공했던 핵심 인물이 생시몽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비틀거리다가 ‘산업주의’와 ‘능력주의’라는 19세기 말 유럽의 종착역에 도달했다. 흔히 ‘국가-법인-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따르는 이런 세계관의 첫 단추를 끼운 생시몽주의자를 ‘근대유럽의 설계자’라고 규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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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시몽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는 ’후기 자본주의와 ‘수정 사회주의‘의 기본골격을 스케치했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미 그 품 안에 갇혔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얼기설기 엮었던 근대유럽체제를 ‘이 세상에 이미 와 버린’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시스템이라고 체념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들 사상에 내포된 두 가지 치명적인 오류 때문이다.

첫째, ‘경제적인’ 성장이야말로 우선적이며 최종적인 ‘거버넌스’의 목표라는 생시몽주의자들의 국가관은 위험하다. 한 나라의 최고책임자(수상/대통령)를 최고경영자(CEO)와 동일시하여 그 정치적 합법성을 보장한다면, 그(녀)는 국민의 ‘안전’(security: 프랑스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2조에 명기된 기본권)과 같은 책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 나의 신체적 안전은 국가 수출향상이나 특정 기업의 자본축적과 절대 교환할 수 없는 천부적인 권리이다. 전 세계에서 선거철마다 “바보야, 근본 문제는 결국 경제야!”라는 천박한 구호로 수렴되는 ‘정치≒경제’라는 등식은 국민이 누려야 할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짓밟는 폭력적인 무기가 된다. 생시몽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산업주의’와 ‘경제/재정 결정주의적인 테크노크라시’가 그 괴물을 키우는 줄기세포가 되었다고 나는 비판한다.

둘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인간에 의한 자연의 착취”로 대체하려는 생시몽주의자의 야심은 반생태주의를 파종했다. 생산, 개발, 축적, 발전, 정복 등과 같은 키워드를 시대적 표어로 복창한 이들은 보존, 순환, 지속, 공생 등과 같은 자연과 생명 친화적인 가치에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생시몽주의자들은 산업혁명·프랑스혁명 이후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어제의 예언가’라고 인정하더라도, 화석연료로 시커메지고 뜨거워지는 생태계를 구원하려는 ‘내일의 설계자’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나는 아쉬워한다. 경제(산업) 성장우선주의, 능력 만능주의, 인간중심주의 등의 삼각파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 생시몽주의자들의 한계였다고 이 책은 결론짓는다. 이들이 너와 나에게 남긴 역사적 숙제이다.


육영수 중앙대·서양지성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University of Washington(시애틀)에서 근현대 서양지성사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탈-식민’post-colonial과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을 키워드 삼아 ‘우리 근대’Our Modernity의 뿌리와 갈래 및 그 역사적 특징을 탐구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출판학술대상을 수상했고,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지식의 세계사: 베이컨에서 푸코까지, 지식권력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해왔는가』,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프랑스혁명의 문화사』, 『책과 독서의 문화사: 활자인간의 탄생과 근대의 재발견』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트랜스내셔널 역사학 탐구』, 『기억은 역사를 어떻게 재현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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