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를 30%만 줄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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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를 30%만 줄여도?”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 승인 2022.05.0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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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위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서 본 포스터다. 그런데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우선 ‘30%’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가구당 15만 원이라는 것 또한 해마다 15만 원인지, 분기별로 15만 원인지, 매달 15만 원인지 포스터만 보고서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다짜고짜로 음식물 쓰레기를 30% 줄이면 식재료비를 가구당 15만 원씩 아낄 수 있다고 하니, 글쓰기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기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왜 이처럼 잘못 만든 포스터가 식당에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 있는 것일까. 이렇게 이상한 말을 보고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사람들은 이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과 같이 그나마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당장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거짓 정보로 남을 속이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의 감언이설과 거짓 공약들, 일부 언론 매체나 인터넷 등에서 흘러나오는 거짓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은데, 이것은 결국 남의 말을 비판적으로 따지는 훈련이 덜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질문을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질문하기 싫어하는 성격을 타고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어린이들은 보통 질문을 잘 하고, 또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1년 전 경기도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학생들이 필자에게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 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그때 초등학교 6학년었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면 지금쯤 갓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그때 그 초등학생들과 달리 교수에게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질문조차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학생들도 한때는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는 초등학생이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질문을 잘 하지 않는 대학생으로 성장한 것일까.

2022년 5월 5일은 제100주년 어린이날이다. 올해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필자는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간직하는 힘’을 꼭 선물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선물은 지금 어린이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사람들도 모두 함께 나누어 받았으면 한다. 사회 곳곳에서 땀 흘리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어린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한다면 대학과 사회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 비판적 성찰 능력도 시나브로 갖추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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